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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새해, TV 없이 살아보기 김경 | 칼럼니스트 TV를 박살냈다. 주로 뉴스용으로 시청하던 거실 TV. 술에 취했거니와 대선결과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랬다. 사실 평소에도 언젠가 저놈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벼르던 참이었으니 오히려 잘됐다. 누구처럼 대취해서 우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분이 안 풀릴 것 같던 우리의 눈에 불쌍한 그놈이 눈에 탁 띈 거다. “울면 뭐해? 대신 우리 저놈의 TV를 때려부수자!” 남편의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들이 방송을 주무르기 시작한 이후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이 거의 국가의 원흉 수준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함께 분노하고 절망해 왔으니까. 후보 검증 차원에서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사실들을 TV가 끊임없이 은폐·왜곡하는 바람에 오직 TV와 조·중·.. 더보기
[임진모칼럼]댄스음악에 대한 편견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1970년대 말 디스코음악 전성기 때 LA 타임스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힐번은 디스코 유행에 분통을 터트리듯 신랄하게 휘갈겨 썼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들 삶에 신념을 불어넣었고 1960년대 록뮤지션들은 사랑과 고통을 노래했던 반면 디스코는 매춘굴의 밤과 같은 일시적인 전율만을 제공할 뿐이다.” 반복적인 리듬에 의한 음악성 빈약과 과잉 상업성을 이유로 디스코를 혹평한 것이었지만 그의 독설에는 실은 댄스음악에 대한 유서 깊은 편견이 숨어있다.로버트 힐번이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존경을 표하는 위의 글을 쓰기 20년 전인 1950년대 중반에 엘비스가 데뷔했을 당시 미국 기성사회의 반응이 어땠는지 몰랐을 리 없다. 엘비스가 텔레비전에 나와 능란하게 허리 아래를 돌리며 야릇한 춤을 .. 더보기
[문화비평]‘치마’보다 중요한 ‘화음’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이제 우리나라 대통령은 여성이다. 어린 시절 대통령은 항상 남자아이들만의 꿈이었고, 남자가 반장을. 여자가 부반장을 하는 것이라고 배우고 자란 우리 세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여성이 대통령이 된 것이 놀랍지도 않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들은 여학생들한테 자기 아들이 치일까봐 남녀공학을 기피한다 하고, 시험으로 선발하는 각종 고시의 상위 합격자는 대부분 여성들이 휩쓸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할당제를 적용해서라도 일정 비율의 남성을 선발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성이 한다고 하면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지휘자이다. 여성 지휘자가 아주 드물기도 하거니와 간혹 여성이 지휘.. 더보기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에미넴과 이정희 김경 | 칼럼니스트 폭설이 내린 다음날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다. 하얀 눈이 이 세상의 모든 더럽고 어둡고 추악한 것들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소담스럽게 쌓여 있었다. 그 길 위를 자동차로 달리며 오랜 만에 에미넴(EMINEM)을 들었다. 특유의 복잡하고 록적인 라임 덕분에 섬뜩한 욕설이 시(詩)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우린 끊임없이 불평할 거야. 난 사고 수습 같은 거 안 해. 날 죽이는 게 좋을 걸. … 해서는 안될 말을 서슴없이 랩을 통해 입 밖에 내뱉은 죄로. … 난 악마의 사진을 팔기 위해 사진을 인화하는 중이지. … 일부러 널 모욕할 거다. 니들은 나한테 걸레에 지나지 않아.” 에미넴이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쉴 때마다 내 폐 속의 공기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속이 시원했다. 후련했다... 더보기
[임진모칼럼]‘전설’에 대한 푸대접 임진모|대중음악평론가 올해는 음악계의 판을 주도한 신진가수들 못지않게 유난히 베테랑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 해였다. 해외만 하더라도 2012년은 비틀스가 1962년 영국에서 첫 히트곡 ‘러브 미 두’를 발표한 지 50년이 된 해이며 그들의 라이벌이었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 롤링 스톤스도 올해로 결성 반세기를 맞았다. 이 그룹은 막 50년 활동을 압축하는 명곡 50곡을 추린 베스트앨범을 출시했다. 1963년 사망한 ‘프랑스의 목소리’ 에디트 피아프도 사후 50년을 앞둔 올해 다시금 추모열풍이 일었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샹송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진 것은 순전히 대선배 에디트 피아프의 반세기를 기리는 헌정 앨범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역시 지난달 말 내한무대에 선 .. 더보기
[문화와 세상]백년 뒤 사극의 주제는 무얼까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텔레비전 사극을 보다 보면 쉽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분 차별에서 오는 갈등.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눈물나는 싸움은 신분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과 반죽되어 시청자를 분노하게도 하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극은 대개 이런 구조를 뼈대로 삼고 거기에 밑바닥 출신 주인공의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막장 요소를 적절하게 비벼 시청자의 밤 시간을 장악한다.만일 신분 차별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극이 이만큼의 안정된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그런 굴레에서 벗어난 우리로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종놈으로, 백정으로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신분 사회에 대해 예외 없이 옳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신.. 더보기
[문화와 세상]예술대통령 임민욱 | 영상설치미술가 고흐에게 테오가 있었다면 내겐 어떤 ‘언니’가 있다. 이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가서 자식 크기 전까지는 책임을 다하겠다며 가족 ‘뒷바라지’에 전념한 사람이다. 폭력적인 환경 때문에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면 현 한국 사회 누구나의 언니, 이모, 친정 엄마와도 비슷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 언니는 내게 아주 각별하고 중요한 예술 관객이다. 돈도 없고 수줍음이 심해 어떤 종교적 공동체에도 속할 수 없었지만 내게 그녀는 감성 덩어리다. 작품과 공감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말하고자 노력할 때 그녀는 더욱 신중 모드로 변하면서 여느 아줌마의 정체성을 벗어난다. 그녀는 예술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대중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소통할 것을 요구한 적.. 더보기
[문화비평]12월, 환희의 송가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찬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벌써 12월이다. 연말이 되면 1년 내내 공연장 근처에 한번 가지 않던 사람들도 여기저기 송년음악회 정보를 뒤적이게 된다. 한 해를 아무런 이벤트 없이 그대로 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워서일 것이다. 우리나라 송년음악회의 간판은 올해도 어김없이 헨델의 ‘메시아’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차지했다.국내 음악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들도 한 해의 끝을 대부분 이 두 곡 중 한 곡으로 마무리한다. 두 작품 모두 인생의 근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인류의 구원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고, ‘환희의 송가’를 소재로 한 ‘합창’ 교향곡은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외친다. ‘메시아’는 작곡된 지 거의 300년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