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음악계의 판을 주도한 신진가수들 못지않게 유난히 베테랑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 해였다. 해외만 하더라도 2012년은 비틀스가 1962년 영국에서 첫 히트곡 ‘러브 미 두’를 발표한 지 50년이 된 해이며 그들의 라이벌이었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 롤링 스톤스도 올해로 결성 반세기를 맞았다. 이 그룹은 막 50년 활동을 압축하는 명곡 50곡을 추린 베스트앨범을 출시했다.
1963년 사망한 ‘프랑스의 목소리’ 에디트 피아프도 사후 50년을 앞둔 올해 다시금 추모열풍이 일었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샹송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진 것은 순전히 대선배 에디트 피아프의 반세기를 기리는 헌정 앨범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역시 지난달 말 내한무대에 선 엘튼 존은 공연타이틀로 ‘로켓 맨의 40주년 기념 투어’를 내걸었다. 비틀스가 시작한 록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밴드 레드 제플린도 오랜만에 실황앨범을 냈다. 1968년에 결성했으니 하드 록 팬들이 레드 제플린의 이름을 안 지도 어느덧 45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40 혹은 50이란 숫자에 해당하는 캐리어의 가수들은 이밖에도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다. 그들이 근래 들어 부쩍 쓰임새가 많아진 어휘, 이른바 레전드(legend)다.
프랑스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출처;경향DB)
대중음악의 황금기라는 1960년대에 그토록 록과 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맹위를 떨쳤어도 서구 기성세대와 클래식 진영은 대중음악에 대한 전폭적인 인정에 인색했다. 무엇보다 역사가 일천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1950년대 초중반 솟아난 로큰롤은 황금기인 1970년대에 겨우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대중음악도 나이테를 쌓으면서 10과 20만해도 대단하던 숫자가 이제는 40과 50으로 불어났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역사를 축적한 것이다. 서구에 레전드들이 부지기수라면 우리는 어떠한가. 전혀 뒤질 게 없다. 이미자, 패티김, 최희준, 신중현은 활동 50년을 넘겼다. 고 임정수 지구레코드사 사장은 생전에 “1964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히트하면서 음반사를 차릴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도 1960년대에 음반산업이 개화했음을 말해준다. 이미자를 비롯해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은 트로트의 별들이며 최희준, 패티김, 정훈희는 스탠더드 팝의 전설들이다. 청춘과 손잡은 록 부문의 신중현, 조용필, 산울림, 들국화 그리고 포크 부문의 송창식, 한대수, 이장희, 정태춘, 김광석 등도 모두 레전드들이다.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능히 오를 이름들이다. 서태지를 비롯한 이후 시대의 예비 전설들도 즐비하다.
‘돌아온 세시봉’이 말해주듯 얼핏 우리도 근래 들어 레전드에 대해 대접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몇 십 주년 하는 제목의 거장 공연도 심심찮게 열린다. 며칠 전에는 ‘록의 대부’ 신중현의 공연이 개최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의 빛나는 명곡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레코드매장에선 1980년대를 주름잡던 가수들의 음반조차 구하기가 어렵다. 그 이전 가수들은 종류가 지극히 제한된 히트곡 모음집이 전부다. 그나마도 수록된 노래를 들으면 원곡이 아닌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건 MP3의 경우도 다를 게 없다. 여기서 수십 년 전의 곡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음악 강국들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정작 중요한 레전드의 음악을 젊은 세대가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출연한 TV 프로그램 덕분에 이름은 기억하더라도 그들이 남긴 전설의 명곡은 새로운 수요자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레전드의 소환시대’라는 규정이 말뿐인, 여전한 레전드에 대한 푸대접이다. 한 대학생은 “거장을 알고는 싶지만 그 음악을 일일이 듣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레전드에 대한 관심은 있어도 레전드음악에 대한 수요는 태부족이라고 할까. 그러니 가뜩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결여로 음원관리가 소홀한데 음악을 찾는 사람도 적으니 레전드시장이 확립될 리 없다. 계통 부재는 당연하다. 하긴 가수사전 하나도 없는 나라, 이게 K팝의 휘황찬란한 광채에 깔린 대한민국 음악계의 그늘진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