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새해, TV 없이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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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새해, TV 없이 살아보기

김경 | 칼럼니스트



 

TV를 박살냈다. 주로 뉴스용으로 시청하던 거실 TV. 술에 취했거니와 대선결과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랬다. 사실 평소에도 언젠가 저놈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벼르던 참이었으니 오히려 잘됐다. 누구처럼 대취해서 우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분이 안 풀릴 것 같던 우리의 눈에 불쌍한 그놈이 눈에 탁 띈 거다. “울면 뭐해? 대신 우리 저놈의 TV를 때려부수자!” 남편의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들이 방송을 주무르기 시작한 이후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이 거의 국가의 원흉 수준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함께 분노하고 절망해 왔으니까. 후보 검증 차원에서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사실들을 TV가 끊임없이 은폐·왜곡하는 바람에 오직 TV와 조·중·동만 보고 사는 50%의 유권자들이 그런 무시무시한 퇴행적인 선택을 했다고 우리는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TV를 신나게 때려 부쉈다. 마당에 가져 나와 장작 패는 도끼로 아주 아작을 내버렸다. 5년 전 재활용센터에서 산 싸구려 중고 텔레비전이었지만 그런대로 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곤 지쳐서 쥐 죽은 듯이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다 TV가 있던 자리를 보니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았다. 날 노려보는 것도 같고, 간밤의 경박하고 무정한 행동에 대한 질책 같은 어둠이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허전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늘 하던 대로 채널을 이리저리 바쁘게 돌리던 오른손이 오늘은 그냥 놀고 있다. 이 손, 왜 이리 낯선가?


궁금했다. 과연 TV를 안 보고 견딜 수 있을까? 해비 스모커가 담배를 끊는 것보다 더 어려울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조용한 아침이다. 귀가 심심하고 눈 둘 곳 없는 적막 속에 모종의 불안감이 스며든다. 하지만 패배감이나 무력감에 젖어 있고 싶지 않은 일종의 전투력 때문이었을까? 책장 근처를 서성이며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리모컨 돌리듯 이리저리 재가며 평가하고, 음미한다.


마침내 채널고정. TV를 보듯 책을 본다. 놀랍게도 TV를 박살 낸 그날 이후 지난 열흘 동안 무려 7권의 책을 읽었다.오기로 우리나라 성인이 1년 평균 읽는다는 9.9권보다 더 많이 읽으려고 미련하게 다소 악착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자존감이 조금씩 상승하면서 대선 이후 머리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조금씩 메워지고 심지어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다시 솟아오르는 느낌도 들었다.


특히 박노자의 공이 컸다. 대선이 끝나고 밑도 끝도 없는 좌절감과 분노심에 치를 떨며 이렇게 마음먹으려고도 했다.“좋다. 나도 이제 앞으로는 좀 더 이기적으로, 내 안위를 돌보며 적당히 무관심하게 살 테다. 언론의 자유고 정의고 복지고 나발이고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런 걸 열망해 봤자 내 속만 탄다.” 하지만 좀 더 전투적인 시민사회로 가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책, 박노자의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를 읽으며 잠시나마 그런 못난 생각에 빠져 있던 나 자신이 금방 부끄러워졌다. 몰랐다. 고려대학교에 호화롭기 그지없는 ‘100주년 기념 삼성관’이 들어서 있고 심지어 ‘포스코 관’에는 ‘이명박 라운지’까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대학이 이렇게까지 대기업과 거대 정치인에게 매수되어 타락해 있으니 오늘날의 20대들이 자신들의 암담한 미래에 대해 사회적 분노조차 할 수 없게 된 게 아닌가 싶어서 식은땀이 났다. 분노는커녕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자살하는 길을 택하는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에게 무한경쟁의 고통을 주고, 얼마 안되는 휴식 시간에는 바보상자로 위무하며, 주말이면 고작 돈 쓰는 기쁨을 안겨주는 우리의 주인들, 곧 재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들을 비판할 시간이란 우리에게 거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박노자도 지적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의 절망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의, 이명박의, 박근혜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무지와 무관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의 중심에 바로 텔레비전이 있었다는 거다.


나날이 새록새록 나의 일상에서 텔레비전을 처형시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을 없애고 나니 자연히 음악을 듣게 되고 책을 보게 되고 밤에는 영화를 보게 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과 분노를 물리치는 효력이 있는 음악 안에서 매일매일 헤엄치는 듯한 일상이다. 게다가 이 음악은 나의 독서를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 난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 많은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에 대한 전망을 얻고,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서도 더욱 더 부지런히 읽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밤까지는 아니다. 내게도 유흥이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한지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주로 지나간 명작 영화들을 본다. 그제는 <레인맨>을 봤고 어제는 <뜨거운 오후>를 봤고 오늘은 <동경 이야기>나 <꽁치의 맛>을 볼 거다.


(경향신문DB)


텔레비전을 없애니 참 좋다. 음악과 책과 영화라는 삶의 유익한 동반자를 함께하는 나의 새해는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희망찰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