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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산 블루스의 등장, 브리티쉬 인베이전(1)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영국의 젊은이들은 로큰롤과 함께 백인의 블루스를 개발했다(그런데 사진은 별로 젊어 보이지가...) 비틀즈가 영국산 로큰롤이었다면, 영국산 블루스를 연주하는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서 잠깐, 비틀즈가 영국을 넘어 세계를 정복하는 모습을 살펴보기 전에, 영국의 다른 밴드들 - 특히 영국판 블루스의 모습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비틀즈이건 이들이건 미국에서는 로큰롤의 황금기 이전에는 그런 폭발적인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최전선에 있었던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하의 뮤지션들의 본격적인 등장보다는, 단순 시대상으로는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 먼저일.. 더보기
비틀즈의 영국산 로큰롤의 등장 캐번 클럽(Cavern Club). 비틀즈가 주로 공연하던 클럽이었던 곳으로 로큰롤의 '성지' 중 하나일 것이다 로니 도네건의 추종자였던 존 레넌(John Lennon)이 처음 밴드를 결성했던 것은 1957년이었다. 도네건이 스키플 사운드를 알린 이후(물론 스키플이 처음 나타났던 것은 미 대공황기라고 해야겠지만 - 즉, 영국에서의 스키플 열풍은 그러므로 ‘리바이벌’ 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영국에는 엄청난 수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 56년과 57년 사이, 영국에는 거의 5천 개 가량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고 하니 매우 열광적이었던 셈이다. 하긴 스키플은 거의 ‘Do It Yourself(DIY)’ 의 전형에 가까웠다. 기타 코드 세 개 정도와 리듬 섹션만 어떻게 한다면(즉, 꼭 드럼을 칠 필요는 .. 더보기
월 오브 사운드, 비틀즈의 등장이 있기까지 뉴욕 브릴 빌딩. 60년대 중반까지의 틴 팬 앨리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많은 스타일이 나타난 이 시대에 좀 더 혁신적인 음악이 존재했다. 모타운, 스택스 등과 비교하여, 흑인 음악의 전통과는 좀 더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물론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로큰롤의 전통을 버리지는 않고, 동시대 브릴 빌딩의 틴 팬 앨리 팝을 일신시켜 대중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인물은 필 스펙터(Phil Spector)였다. 틴 팬 앨리(Tin Pan Alley)는 본래 뉴욕 맨하탄 28번가와 브로드웨이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대중 음악계의 의미는 물론 백인 중산층의 음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로큰롤의 등장 이후에는 전통적인 재즈 팝과 로큰롤이 접목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미국만의 .. 더보기
소울과 훵크의 발전 - Black Power 블랙 팬터스. 60년대 흑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큰롤은 몰락했지만, 그것이 흑인 음악의 몰락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흑인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엘비스는 로큰롤의 폭발을 이끌었지만, 전술했듯이 그것은 엘비스와 같은 ‘백인’ 이 흑인 음악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힘을 얻은 바 컸다. 즉, 로큰롤은 흑인 음악에서 시작했을지언정, 순수 흑인 음악은 아닌 셈이다. 물론, 1940년대 이후 흑인 음악의 ‘수퍼 장르’ 는 누가 뭐래도 리듬 앤 블루스일 것이다(또는 그로 ‘통칭된다’). 하지만 흑인 음악을 리듬 앤 블루스가 모두 아우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로큰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스타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블루스에서 시작했던 로큰롤.. 더보기
50년대 말, 엉클 샘이 복수를 시작했다 Daily Mirror지에 실린 에디 코크란의 사망 소식 50년대 말엽, 로큰롤은 본래의 생동감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로큰롤의 창시자들이 계속하여 음악 활동에 종지부를 찍기 시작하면서 로큰롤은 위기를 맞았다. 아마 가장 황당한 것은 리틀 리처드일 것이다. 한창 활동 잘 하고 있던 1957년, 호주 투어 중에 갑자기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목사가 되기로 하면서, 1962년 다시 복귀할 때까지 복음 가수의 삶을 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복음 가수로 살면서도 그의 무대 매너나 복장은 여전히 단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리틀 리처드는 원래부터 성실한 청년의 인상도 아니었고 - 사실 좀 지저분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 오히려 인생이 파격으로 점철된 사람이었으니, 이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1958년에.. 더보기
로큰롤의 반항아들 샘 필립스(Sam Phillips)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발견한 것은 1954년 7월이었다.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레코드를 녹음하려는 트럭 운전사 청년은, 가스펠은 물론 힐빌리 스타일의 다양한 컨트리 음악이 공존하는 동네였고, 하울린 울프(Howlin' Wolf)와 같은 유명 블루스 뮤지션이 자신들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던 동네였던 멤피스 출신이었으니, 로큰롤 스타로서는 딱 들어맞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의 데뷔작은 이런 멤피스의 전통 하에서 선정된 곡들로 구성된 앨범이었다. 다만 원곡의 스타일과는 맞지도 않는 엘비스의 목소리(어머니 생일 선물로 앨범 녹음하는 청년이 프로일 리는 없다), 컨트리풍의 리듬 기타 등 많은 부분은 원곡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자유로운 느낌을 .. 더보기
로큰롤의 탄생 이상훈(팝 칼럼니스트) 록은 어떤 음악인가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쉬운가? 근래 차트에 오르는 곡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곡들을 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실, 현실적으로 접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록 음악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일부는 기타, 드럼 등의 연주자들과 보컬리스트가 있고, 공중파에서 쉽게 듣기 어려운 강렬한 음악을 하는 경우를 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록은 이미 전 지구적인 예술 형식의 하나이고, 세계화는 이러한 ‘외국 태생의’ 문화를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록 음악은 음악 자체로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양상의 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