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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광대의 파괴력, 대중가요의 힘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지적이고 고매하며 부유한 사람들, 그 상류계층과 그 정서가 사회생활의 영역을 관리통치할지 몰라도 결코 지배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대중음악이 그 중 하나로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중에는 학벌이든 경제력이든 고급 아닌 중하급이 널려 있다. 우아하고 잘난 계급의 정서는커녕 속물과도 같은 하류인생의 표현 정서가 흥행대박을 터뜨린 역사적 사례는 즐비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역설적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정장에다 선글라스를 끼고 잔뜩 멋을 내고 있지만 누가 봐도 품위와 격조가 없다. A급이 아니라 뭔가 낮고 부족하고 망가진 것 같은 B급이다. 광대요, 피에로다. 가슴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하다며 ‘한국의 베벌리 힐스’ .. 더보기
[별별시선]‘소녀문화’로 재해석한 90년대 회고담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요즘 가장 뜨거운 화제의 드라마는 tvN 이다. 33세의 방송작가 시원(정은지)이 고등학교 동창회를 계기로 ‘찬란했던 90년대’와 10대 시절을 돌아보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최근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 중인 1990년대 회고담에 속한다. 특히 이 작품은 당시 급부상하던 아이돌과 10대 팬덤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환함으로써 단순한 유행상품을 뛰어 넘는 독특한 개성을 획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 소위 ‘빠순이’ 문화로 폄하돼온 팬덤 문화, 더 나아가 소녀문화 중심으로 재해석한 90년대 이야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의 1997년은 외환위기, 첫 정권교체 등 정치·경제·사회적 이슈 못지않게 중요한 아이돌의 해로 호출된다. 바로 그 전 해인 1996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 더보기
[임진모칼럼]‘조립식’ 아이돌 그룹의 한계 한 사람도 제대로 버티기 힘든데 가뜩이나 여럿이 모이게 되면 더더욱 끌고나가기가 어렵다. 대중음악에서 솔로 가수보다 그룹이나 밴드는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성원 사이의 결속력 유지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한다. 무명일 때는 이 문제가 잠복해 있다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골칫거리로 불거지곤 한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도 한때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팀’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밴드의 초기 리더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브라이언 존스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그룹을 결성했고 멤버를 골랐고 그룹명도 지었으며 무슨 음악을 해야 할지도 선택했다. 하지만 몇 년이.. 더보기
[문화비평]우디 앨런의 ‘파리 홍보’ 영화 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우디 앨런 감독의 최신작 는 다층적인 텍스트다. 우선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이 소위 ‘먹물’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영화는 약혼자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난 극작가 길이 매일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의 파리로 꿈같은 시간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여정에서 길은 당시 파리의 문화계 인사들을 두루 조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술집이나 파티장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 달리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마주쳐 얘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한 평을 듣기도 한다. 길은 자신의 약혼녀 이네즈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오묘한 매력을 지닌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 더보기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구영탄과 그의 후예들 김경 | 칼럼니스트 어릴 때 내 영웅은 구영탄이었다. 또래의 다른 여자 애들이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좋아할 때 나만 홀로 구영탄을 좋아했다. 구석에 처박혀서 의기양양하게. 고행석 만화에선 늘 주인공으로 나왔지만 다른 여자 애들은 이 오빠의 매력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뭐 그럴 법도 하지. 보통 여자 애들은 만화주인공 하면 우수에 젖은 듯한 크고 부리부리한 눈에 훤칠한 키, 우월한 ‘기럭지’를 가진 귀공자 타입을 좋아하는데 이 오빠는 척 보기에 그냥 별 볼일 없는 루저처럼 보이니까. 반쯤 감은 눈에 머리카락은 한옥 처마 끝처럼 뻣뻣하게 뻗쳐있고 몸도 축 처진 듯 좀 왜소해 보이는…. 게다가 어찌나 어리바리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지 어린 나이에도 측은지심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낄 정도였다. 그.. 더보기
[문화비평]공연장 좌석의 신분적 명칭 민은기 | 서울대 음대교수·음악사 모든 공연장에는 좌석등급이라는 것이 있다. 무대가 잘 보이는지, 소리가 잘 들리는지에 따라 좌석에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를 둔다. 그런데 이 좌석등급에는 A석 위에 S석, 그 위에 R석, 다시 R석 위에는 VIP석, VVIP석, P석 같이 거창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공연장의 대부분 좌석이 R석 이상이기 때문에 R석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로열’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자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자주 지적되자, 급기야 신임 예술의전당 사장이 고가의 신종 좌석들을 없애고 R석, S석, A석, B석, C석으로 좌석을 표준화하는 운영방안까지 발표했다. 좌석 등급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기본적으로 공연 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이.. 더보기
[별별시선]‘뉴 빅브러더’ 시대의 두 추적자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거대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는 두 드라마 와 이 큰 화제다. 두 작품은 주제 외에도, 마치 연작 시리즈로 보일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누군가의 죽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는 평범한 17세 소녀의 교통사고, 은 톱 여배우의 추락사가 발단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러 겹의 진실이 은폐된 의문사임이 드러난다. 진실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도 같다. 의 백홍석(손현주)은 강력계 말단 형사이고 의 김우현(소지섭)은 사이버 수사대 경위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공통점은 그들이 진실의 ‘추적자’인 동시에 의문사의 진짜 배후인 거대권력에 의해 추적을 당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딸 사고 원인을 밝히려다 법정.. 더보기
[박영택의 전시장 가는 길]침(針)으로 이루어진 내면 풍경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주택가 풍경이다. 빈 하늘이 적조하게 놓여있고 그 아래 집과 나무, 창가에 비치는 자동차 그림자가 있을 뿐이다. 무척이나 적막하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주택가 풍경을 옮겨놓은 이미지다.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여백과 단색톤으로 조율된 형상이 수묵화에서 보는 미감을 안긴다. 단색조의 색채는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풍겨주면서 은은하고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 그림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바늘이 모여 이룬 동판화다.(이준규, 갤러리룩스, 6·20~7·3) 흑백의 면 분할로 이루어진 주택가 풍경은 반듯하고 소박한 선으로 구획된 집과 벽, 지붕과 창문틀, 그리고는 나무가 무척이나 단출하게 놓여있다. 이 허정하고 무심하며 더없이 고요한 풍경이 애틋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딘지 쓸쓸하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