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대중문화블로그TV POP!
본문 바로가기

[문화와 삶]세상에 뿌려지는 광고만큼 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밥을 먹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우리 집은 암 보험 들었어?” 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멍하니 할 말을 잃었지만, 아내는 그런 질문에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답했다. 사실 아이가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했다. 매일 특정 시간대에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던 아이는 케이블 방송의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을 선호했는데, 그 채널의 광고가 발단이었다. 편성표상에는 30분을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실제 분량은 20분이 채 안 됐고,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광고의 몫이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차지한 것이 장난감 광고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부업체와 보험업체의 광고가 어김없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광고들을 무.. 더보기
[문화비평]가족 예능의 두 얼굴 불황기 TV의 해법은 가족코드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최후의 보루로써 가족의 가치도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TV 장르별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분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부녀의 화해를 다룬 KBS 가족극 였고, 교양분야에서 흔치 않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프로그램은 의 가정의달 특집 다큐멘터리다. 또 광고부문에서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상 수상작도 가족코드를 내세운 캠페인이었다. 가족코드의 강세 현상은 특히 예능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상반기 최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MBC 를 비롯해 올해만 해도 MBC , KBS 와 등 다양한 가족예능이 신설됐다. 케이블과 종편 채널을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하지만 최근의 가족예능 열풍.. 더보기
[낮은 목소리로]포악한 글쓰기 인터넷을 떠돌다가 우연히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는 글을 읽고 ‘울컥’ 했다. “국정원 댓글 알바가 되면 Ctrl+X, Ctrl+V만 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 모진 가난 속에서도 좋은 문장 하나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고뇌하는 이 땅의 모든 작가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글쓰기는 애초에 ‘필패(必敗)’의 작업인지라, 고통은 필수요 그 고통에 대한 외로움도 필수다. 다만 오롯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엄살을 떨 수 없기에 비명이나 신음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어금니를 악물고 버틸 뿐이다. 그러다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때아닌 위로를 건네받으니 고맙고도 씁쓸한 마음을 가누기 어렵다. 하긴 꽤 오랫동안 궁금했다. 인터넷 기사나 게시판에 댓글로 달리는 끔찍하고 저급.. 더보기
[정동에세이]내가 커피숍을 사랑하는 사연 ‘Family is not a word. Family is a sentence.’ 어느 할리우드 영화의 광고 문구입니다. ‘family는 단어가 아닙니다. family는 문장입니다’라는 뜻이지요. “아니, ‘family’는 분명 단어인데 단어가 아니라니?! 게다가 문장이라니?!” 단박에 그런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지요? 가족이 문장이라는 은유는, 여러 개의 단어가 모여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등 식구가 다 모여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가족은 완전한 문장처럼 완성된다는 뜻이지요. ‘family 은유’로 글을 여는 이유는 올해로 20년째 영화 번역을, 그리고 10년째 책 쓰기를 하고 있는 제가 아직은 문장이 아니고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가정.. 더보기
[문화와 삶]상상력 결핍증 환자들 상상은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 발생한다. 상상력이란 상상의 영역 반대편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현실의 영역이 절대적인 질서의 부조리로 가득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벌어지는 적극적인 내면의 일탈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보편성과 어긋나는 순간 회의와 갈등이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그 보편성을 자신의 사유로 대체하려는 욕망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 상상이 시작된다. 그는 ‘만일 … 라면’이라는 수많은 가정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시작하고 그 생각들을 연결하고 상상의 전개를 통해 자신의 논리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게 상상력의 핵심이다. 상상은 회의와 의심, 게으름과 호기심, 슬픔과 외로움 등 한 개인이.. 더보기
[기자 칼럼]‘황금의 제국’ 가족 신화의 해체 요즘 오랜만에 TV 시청이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SBS에서 방송하는 이다. 제목만 보고 뻔한 기업 드라마라고 생각했지만 중간 회차 즈음 우연히 이 작품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우선 한국의 드라마 지형에 비춰 독특한 극 전개를 하고 있다. 1980~1990년대 급성장한 부동산 재벌을 배경으로 재벌의 부도덕한 행태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이 복수를 다짐한 후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기업 드라마의 공식을 따른다. 양념처럼 주인공의 로맨스도 섞여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얼개를 빼놓고는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거부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여느 주인공처럼 정의롭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하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더보기
[문화비평]해방의 기분 지난 8월15일은 68번째 광복절이었다. 말하고 나니 맥이 풀린다. 큰 감응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70번째 광복절이 돼도 그런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 착잡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는다. 마침 어젯밤 친구와 술을 마시며, 광복절을 두고 객쩍은 얘기를 나눈 차였다. 화제에 오른 것은 광복의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광복이 현재적 순간이라고 가정할 때, 말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로 지금 광복을 접했다 할 때, 기분은 어땠을까, 하는 것. 물론 짐작할 수야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결국 불가해한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데, 둘은 생각을 같이했다. 이는 같은 해 세계 곳곳에서 마주했을 ‘해방’의 기분을 되짚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해방의 기분,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가 그토록 주억대는 감정 목록 가운데, .. 더보기
[문화와 삶]1초를 한 시간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하면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아니다. 살다 보면 심신이 그런 영화를 요구해올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나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기분으로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몇 달 전 를 보면서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화법 때문이었다. 캐릭터 자체가 그렇게 설정돼 있기도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많이, 지나치게 빨리 말했다. 처음에는 피로감이, 나중에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주인공의 화법은 신호를 무시한 과속운전처럼 보였다. 그 주인공은 관객이 그의 대사를 행여나 단 1~2초라도 곱씹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듯이 신속하게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말의 속도는 영화의 속도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