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행복 교육 지난 4월부터 이웃집에서 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나무와 개울이라고 이름 붙였다. 묶어 키우고 싶지 않은데 농약 뿌린 밭이 지척이어서 어쩔 수가 없다. 대신 데크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개 줄을 길게 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산책을 시킨다. 산책 시간이 되면 녀석들은 마당으로 쏜살같이 내려가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 열매들부터 주워 먹는다. 그렇게 나무와 개울이는 디저트부터 챙겨 먹고 산책을 시작한다. 지들끼리 찧고 까불며 걷다가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나비랑 춤도 춘다. 아주 가끔은 나비를 삼켜버리기도 한다. 그럼 파리채로 한 대 맞는다. 수시로 산책시키는 모습을 자주 본 동네 건설업자가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묻는다. “좋은 개인가 봐요?” 좋은 개? 족보 있는 비싼 개냐는.. 더보기 [문화와 삶]개울의 고기잡이 연례행사로 일 년에 한 번씩은 냇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통 개울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다. 물이 점점 흐려져 꺼려지기도 했지만 물고기의 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꺽지며 뚝지, 모래무지와 마자, 미유기와 퉁가리가 사라지고 피라미나 갈겨니만 득시글거리는 개울은 내가 그리던 개울이 아니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스무 종이 넘던 물고기들은 개울이 이른바 하천정비사업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후로 해마다 종수가 줄어 이제는 불과 몇 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차에 지방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 머물다 몇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고기잡이에 마음이 동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의 수초가 그럴 듯했기 때문이었다. 논물이 들어와 물은 흐렸지만 미꾸라지와 수수미꾸리쯤은 잡을 수 있겠다싶어 마을.. 더보기 [문화와 삶]‘퍼시픽 림’과 어떤 신세대 을 보았다. 동네 멀티플렉스로 향하기 전, 미지의 영화와의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외려 본방 사수를 외치는 드라마 팬의 마음에 가까웠다고 할까? 멕시코 출신의 1964년생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 영화의 제작에 참조한 일본 거대로봇 애니메이션들 때문이었다. 내가 속한 세대가 텔레비전을 통해 열광하고 프라모델로 직접 조립해보았던 그 로봇들의 세계가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으로 부활한다니, 30년의 시차를 두고 후속 방영분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개운치 못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야말로 1970년대 초중반생들에게 마지막 남은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이 세대가 로봇물에 빠져들었던 시점으로 시선을 돌려보도록 하자. 이들의 성장.. 더보기 [여적]TV의 진화 현재 TV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정화면(LCD) 패널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90년대 말이다. 브라운관 TV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화질이었다. 세계 최초로 32인치 제품을 양산한 삼성전자는 당시 “배우의 땀구멍까지 놓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배불뚝이 TV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것도 LCD TV다. TV의 세대교체는 드라마는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성형 붐도 이와 무관치 않다. LCD 등장 이후 15년여 만에 TV 시장에 또 다른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고화질을 자랑하는 초고선명 TV(울트라 HDTV)의 등장이다. 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CF를 보면 오랑우탄이 TV 화면 속 바나나를 진짜인 줄 알고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 더보기 [문화와 삶]황현산의 부정문 주위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지금 한국의 문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있는 책은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가 아닐까 싶다. 선생의 문명(文名)이 문단 바깥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단 안에서 그는 동시대 젊은 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평론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후학들의 존경을 인위적으로 불러일으키려 하고, 또 그 존경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려 하고, 급기야 그 인위적 존경을 제도화하려 하는 어른들을 더러 보았지만, 선생의 경우 후학들의 자발적인 존경은 오로지 그의 글에만 힘입은 것이다. 선생의 글이 어떤 위력을 품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하나만 말하자. 그의 글에서는 ‘~인 것은 아니다’나 ‘~라고 하기는 어렵다’와 같은 .. 더보기 [문화비평]을과 함께 가야 갑도 빛난다 갑을관계가 말썽이다. 라면상무로 시작해서 지갑폭행 회장, 우유회사의 대리점 횡포, 그리고 편의점 족쇄계약까지. 포문이 열린 갑을 스캔들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처럼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 오죽하면 라는 책까지 나올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을들은 때로 분노하고 주로 절망한다. 전력부족에 더해서 갑을관계가 주는 슬픈 현실의 무게로 인해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역사적으로 보면 음악가들 역시 철저한 을이었다. 천박한 사당패로 간주돼 온갖 설움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 예인들의 경우뿐 아니라 서양 음악가들 역시 종종 노예 같은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궁정 음악가라는 것이 겉으로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궁정의 붙박이로 군주가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하고 연주해야 하는 노동자에 불과했고.. 더보기 [문화와 삶]문화와 자연의 사막화 홍대앞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다. 초·중·고·대를 이곳에서 나왔으니 토박이라 말할 수준은 될 것이다. 화방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80년대 초반의 모습부터 강남과 임대료가 비슷한 지금의 모습까지 지켜 봐왔다. 여느 한적한 대학가와 다를 바 없던 홍대앞이 특별한 장소로 변하기 시작했던 건 90년대 초·중반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신촌의 몇몇 가게가 홍대앞으로 이전했고, 홍대 미대를 나온 사람들이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를 열었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90년대답게 레게, 펑크 등 특정 장르를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술집들이 생겨났고 나이트나 ‘록카페’와는 다른 댄스 클럽들이 문을 열었다. 굳이 그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20대 초반의 내가 보기에도 당시의 홍대앞은 참으로 굉장했다. 어쨌든 한국에선 없.. 더보기 [문화와 삶]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데… 아버지에게 노래를 들려드리려고 했다. ‘너무 짧아요’ 이것도 아니고 ‘어제, 오늘, 그리고’ 이것도 아니고 …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시니까 힘이 될까 싶어서 고르는데 영 가사들이 상황에 마땅찮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매도 심해지시고 불도저로 밀어버린 뉴타운 대상 지구의 폐허에서처럼 기억을 못 하시며 늘 배가 고프다 하신다. 그럴수록 말라가시는 아버지는 어렸을 적 등화관제 훈련하는 날이면 마루에 주욱 누운 4형제에게 6·25 전쟁통에 사람 살려낸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곤 했다. 우리 자잘한 상처까지 직접 소독해주시던 자상한 아버지, 하지만 군부독재를 옹호하시고 이사도 잦아지더니 매번 어디서 돈을 떼였다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향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사무쳐.. 더보기 이전 1 ··· 83 84 85 86 87 88 89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