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상상력 결핍증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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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와 삶]상상력 결핍증 환자들

상상은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 발생한다. 상상력이란 상상의 영역 반대편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현실의 영역이 절대적인 질서의 부조리로 가득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벌어지는 적극적인 내면의 일탈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보편성과 어긋나는 순간 회의와 갈등이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그 보편성을 자신의 사유로 대체하려는 욕망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 상상이 시작된다. 그는 ‘만일 … 라면’이라는 수많은 가정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시작하고 그 생각들을 연결하고 상상의 전개를 통해 자신의 논리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게 상상력의 핵심이다.



상상은 회의와 의심, 게으름과 호기심, 슬픔과 외로움 등 한 개인이 결핍을 느끼는 모든 상황에서 시작된다. 모든 게 충만한 삶 속에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결핍을 인식하지 않으면 상상은 시작되지 않는다. 기억과 경험이 자신의 존재와 일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내면적 괴리감, 사회적인 가치를 거부하려는 스스로의 태도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이나 심심함을 채워주기 위한 유희와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한 내적 소통의 연대감 등이 상상의 원천일 수 있다. 기존의 학문적 체계와 내용이 자신의 학문적 내용과 아무런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 학자가 새로운 논문을 쓰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표절은 대개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상상을 발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주변적이거나 변방에 놓여 있는(또는 그렇게 인식한) 사람들이 상상력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나 업적을 낳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걸리버 여행기'



어느 한 개인의 생각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보편적인 원칙과 일치되는 사회는 완벽한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상상력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있을까?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이성’과 ‘사랑’의 지배를 받으며 거의 모든 사회적 주제에 대해 만장일치의 합의를 보이는 그런 사회를 지적이고 덕스러운 말인(馬人) ‘후이넘’인들의 사회로 그려냈다. 스위프트로서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상상을 통해 구현한 셈인데, 이것은 그의 뛰어난 상상력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조지 오웰은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비평을 통해 후이넘이 지배하는 그런 사회가 바로 이성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성이 지배하는 완전한 사회는 다른 어떤 상상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런 사회에서 진리에 대한 물음도 없다는 것이다.(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다행스럽게 혹은 불행하게도 그런 완전한 사회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어느 한편에서는 마치 이 사회가 자신들이 제시한 질서와 이성으로 통제되고 있다는(또는 있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이 사회의 주류란 그들 자신의 생각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부조리는 대개 그들에서 시작된다. 그게 4대강이든 국정원 사태이든 터무니없이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사회의 모순과 결핍은 상상의 원천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빠져나갈 구멍일 뿐이다. 그들은 상상력이 타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걸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심각한 상상력 결핍증 환자들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