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하면 무조건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아니다. 살다 보면 심신이 그런 영화를 요구해올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나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기분으로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몇 달 전 <아이언맨 3>를 보면서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화법 때문이었다. 캐릭터 자체가 그렇게 설정돼 있기도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많이, 지나치게 빨리 말했다. 처음에는 피로감이, 나중에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영화 <아이언맨3>
주인공의 화법은 신호를 무시한 과속운전처럼 보였다. 그 주인공은 관객이 그의 대사를 행여나 단 1~2초라도 곱씹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듯이 신속하게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말의 속도는 영화의 속도와 잘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비해 유난히 빨랐다. 내게 이 과도한 속도는 이 영화가 관객을 대하는 태도의 반영처럼 보였다. ‘지갑을 열어라, 당신에게 뇌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라, 내 얘기를 듣기만 해라, 그게 우리가 원하는 관객이다.’ 나는 뭔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빠른 것들은 우리를 윽박지른다. 스마트폰 광고를 보면서도 느꼈다. 스마트폰들의 속도 경쟁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젠 좀 병리적인 단계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다트에 핀이 꽂히기도 전에 책을 여덟 권이나 다운받는 시간, 1초. 점프했다 착지하기도 전에 뮤직비디오 한 편을 다운받는 시간, 1초. 팔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이미지 열일곱 장을 다운받는 시간, 1초. 은하수 S-LTE-A의 1초,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죠?” ‘1초’라는 단어를 네 번씩 들으면서 나는 숨이 좀 막혔는데, 그러고는 어떤 허망함 같은 것을 느꼈다.
뭐든 빨리 된다는 데 나쁠 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시간을 아껴서 뭘 하자는 것일까. 테크놀로지의 은총 덕분에 과거에는 한 시간이 걸렸던 일을 이제는 1초 만에 할 수 있게 됐다. 무려 59분59초를 절약한 셈이다.
그 59분59초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를테면, 1초 만에 내려받은 책과 영화를 보는 데 그 59분59초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다 보기도 전에 또 다른 책과 영화를 내려받는 데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을 줄여서 얻은 시간을, 시간을 더 줄이는 데 다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LG유플러스의 LTE 광고
게다가 정작 소중히 지켜야 할 시간들을 오히려 빼앗기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나는 얼마 전에 부자(父子)로 짐작되는 두 사람이 식당에 와서 밥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풍경을 목격했다. 단 한마디도! 아들은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아버지는 상황을 개선해보겠다는 의지조차 상실한 듯 텔레비전만 내내 쳐다볼 뿐이었다. 커피숍에서 마주 앉은 커플이 각자의 스마트폰만 쳐다보다 일어나는 풍경은 이제 딱히 놀랍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진부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새삼스레 느림의 가치를 역설한들 얼마나 힘이 실리겠는가. 빠름은 너무 빠른데 느림은 너무 느리다. 게다가 속도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간과한다면 그건 공정한 처사가 아니다. 예컨대 분노와 저항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 세계 시민들이 성취한 것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이지 궁금하다. 우리의 이 놀라운 기술을 반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기계다. 이를테면, 당신과 함께하는 1초를 한 시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런 기계.
신형철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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