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밥을 먹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우리 집은 암 보험 들었어?” 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멍하니 할 말을 잃었지만, 아내는 그런 질문에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답했다.
사실 아이가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했다. 매일 특정 시간대에만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던 아이는 케이블 방송의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을 선호했는데, 그 채널의 광고가 발단이었다. 편성표상에는 30분을 차지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실제 분량은 20분이 채 안 됐고,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광고의 몫이었다. 문제는 그 시간을 차지한 것이 장난감 광고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부업체와 보험업체의 광고가 어김없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 광고들을 무한 반복 시청하다가 어느 순간,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나 믿음이 가게 생긴 아저씨가 보험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귀가 솔깃했던 모양이다. 가족의 미래에 대한 근심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광고 캡처
장기화된 경제 침체기에 유년기를 보내는 터라 이런 유의 광고에 쉬이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런데 이 광고들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에 걸린 가시처럼 뇌리에 박혀 마음의 풍경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아이의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보니, 문득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던 2000년대 초중반의 광고들이 떠올랐다.
이른 새벽의 출근길, 고급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 아직 인적이 없는 도심 한복판을 소리 없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화면 바깥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잠들어 있는 자 99%, 이미 깨어있는 자 1%, 무리들이여 안녕.”
이번에는 학생들의 등굣길이다. 구도심의 고궁 담벼락 곁으로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고, 불량기가 다분해 보이는 한 학생이 제기를 차며 놀고 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 우주복 차림으로 나타난다. 우주로 소풍을 가기 위해서다. 그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고등학생들은 학교를 마친 뒤 놀이동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낡은 놀이 기구에 몸을 구겨 넣은 채 한탄조로 외친다. “야, 전학 가자, 전학 가, 아휴.”
다음 차례는 오페라하우스 로비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두 명의 여성이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때마침 도착한 여성이 관람권을 꺼내드는데 그녀의 손가락에는 아파트 브랜드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키홀더가 끼워져 있다. 유난히 반짝이는 브랜드 로고. 친구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이 광고들의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선망의 대상을 소유해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존재로 거듭나라는 것이었다. 이런 메시지를 단박에 요약한 것은 카드사 광고였다. 빨간색 코트를 입은 여자 탤런트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소비자의 상승 욕구를 자극하는 이런 유형의 광고는 2001년 하반기부터 등장해 카드 대란, 펀드 열풍, 아파트 가격 폭등 등 당시의 투기적인 경제 상황과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광고 시장을 잠식해 갔다. 아마도 2004년, “그녀의 프리미엄”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아파트 광고가 정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유행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끝난 것일까? 유소년기에 이 광고들의 융단폭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이제 성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이 광고들은 그들의 마음 속 풍경에 어떤 흔적을 남겨놓았을까? 누군가 21세기 첫 십년의 심성사(心性史)를 연구한다면 유튜브 검색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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