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우디 앨런 감독의 최신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다층적인 텍스트다. 우선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이 소위 ‘먹물’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영화는 약혼자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난 극작가 길이 매일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의 파리로 꿈같은 시간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여정에서 길은 당시 파리의 문화계 인사들을 두루 조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술집이나 파티장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 달리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마주쳐 얘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한 평을 듣기도 한다.
길은 자신의 약혼녀 이네즈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오묘한 매력을 지닌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현실로 돌아와서는 파리의 앤티크 숍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과 교감을 하게 되면서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속으로 사라져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미국 문학이나 근현대미술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나 상식이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오프닝 시퀀스부터 우디 앨런이 대놓고 보여주는 프랑스와 파리의 유명 관광지들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감독이 안내하는 풍물기행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요즘 국내외 대중문화계의 지배적 코드 중 하나인 타임 슬립(time slip)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1920년대와 2010년대는 물론 ‘벨 에포크’라 명명된 시대인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또 무엇을 갈구하며 살고 있는지, 그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환상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인 길은 진정한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이미 30년 전에도 우디 앨런은 <젤릭>이라는 영화를 통해 탈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코믹하게 다룬 바 있다.
美 영화감독 우디 앨런 ㅣ 출처:경향 DB
<젤릭>은 흑인들과 있을 때는 흑인으로, 유태인들과 있을 때는 유태인으로 모습이 바뀌는 한 남자의 카멜레온적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어쩌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은 시간을 거스르는 유명 작가, 화가, 감독과의 교제를 통해 본격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영화가 파리라는 도시와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도시성, 역사, 문화를 아주 노골적인 톤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샹송과 함께 마치 기록영화처럼 프랑스의 관광 명소를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파리는 비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계속 강조하는 엔딩 신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도시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채 실은 파리의 가볼 만한 관광 명소와 프랑스의 문화예술에 대한 환상을 파는 한 편의 홍보 필름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유럽의 특정 도시와 관광산업을 연결시키는 노골적인 시도는 그의 최신작인 <투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업적 이니셔티브가 유럽에서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다. 아니 그가 대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업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에 개의치 않고 초연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영화의 경우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거닐던 1920~30년대의 경성이나 식민지 조선을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작 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본격 도시 영화는 없었다. 뉴욕, 런던, 파리 등의 ‘전통적인’ 글로벌 시티 못지않게 혼종적이면서도 뜨거운 대중문화와 공연예술을 거침없이 생산해내고 소비하는 거대 도시 서울에 대한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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