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도 제대로 버티기 힘든데 가뜩이나 여럿이 모이게 되면 더더욱 끌고나가기가 어렵다. 대중음악에서 솔로 가수보다 그룹이나 밴드는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성원 사이의 결속력 유지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한다. 무명일 때는 이 문제가 잠복해 있다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골칫거리로 불거지곤 한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도 한때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팀’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밴드의 초기 리더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브라이언 존스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그룹을 결성했고 멤버를 골랐고 그룹명도 지었으며 무슨 음악을 해야 할지도 선택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뒤 약물중독, 괴팍한 자신의 성격 등에 의해 팀 내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작곡능력이 부재했던 그보다 곡을 쓸 수 있었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를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주변인들의 의도는 결정타였다. 매니지먼트 측은 경쟁관계에 있던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콤비에 맞설 수 있는 둘의 조합 즉,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라는 짝이 절실했다. 브라이언 존스는 소외됐고 결국은 버림을 받았다. 당시 동료였던 빌 와이먼에 따르면 “그가 에너지 낭비를 자초했고 스스로 꺼져버렸다”고 하지만 멤버들 간의 멀어진 심정적 거리를 봐선 요즘 말로 ‘왕따’의 요소가 틈입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룹 티아라 (출처 : 경향DB)
1969년 사실상 그룹에서 쫓겨난 그는 한 달도 채 안되어 자신의 집 풀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사인은 헤로인 과용이었다. 그룹을 뿌리째 흔들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롤링 스톤스는 이를 거뜬히 극복하고 더 위력적인 스탠딩으로 1970년대를 호령하는 데 성공한다. 브라이언 존스의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기는 해도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멤버들끼리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더 이상 브라이언 존스와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시점에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진 탈퇴 권유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브라이언 존스 스스로가 그룹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돈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매니저나 음반사 관계자들의 압박이 이 과정에서 작용했다면 롤링 스톤스는 아마도 이미지에 상당한 훼손과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전설의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도 애초 그룹의 실세는 시드 배릿이라는 인물이었지만 치유불능의 약물복용에 시달리던 그는 1970년 어느 날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퇴각했고 팬들은 그가 실종사한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고 나이 환갑을 넘긴 2006년에 사망하면서 뉴스지면을 장식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활동 당시에 시드 배릿에게 헌정하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내부의 역학이 작동했던 간에 그룹 성원들이 트러블 관리의 주체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밴드는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멤버들끼리의 충돌 때문에 역사적으로 해체가 잦다. 그래도 문제가 생겨난다면 그룹 성원들이 자주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게 안된다면 그것은 그룹이 자발적으로 모인 팀이 아니라 상업적 결과를 겨냥해 음악자본이 꾸린 조립식 팀이라서 그럴 것이다. 조립식 그룹은 성원들의 자기결정력이 없고 따라서 결속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누리꾼들을 흥분시킨 이번 걸 그룹 ‘티아라’ 문제는 K팝 세계진출을 일궈낸 아이돌 그룹의 태생적 한계를 일정부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기획사는 결속력을 위해서 음악, 스케줄, 멤버들 간의 균형 등 제반 사항 관리를 차츰 그룹에 넘기고 자신들은 조력자로 물러나는 것이 좋다. 물론 이게 우리 음악환경에서 쉽지 않기에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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