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주택가 풍경이다. 빈 하늘이 적조하게 놓여있고 그 아래 집과 나무, 창가에 비치는 자동차 그림자가 있을 뿐이다. 무척이나 적막하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주택가 풍경을 옮겨놓은 이미지다.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여백과 단색톤으로 조율된 형상이 수묵화에서 보는 미감을 안긴다. 단색조의 색채는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풍겨주면서 은은하고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 그림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바늘이 모여 이룬 동판화다.(이준규, 갤러리룩스, 6·20~7·3) 흑백의 면 분할로 이루어진 주택가 풍경은 반듯하고 소박한 선으로 구획된 집과 벽, 지붕과 창문틀, 그리고는 나무가 무척이나 단출하게 놓여있다. 이 허정하고 무심하며 더없이 고요한 풍경이 애틋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딘지 쓸쓸하고 호젓하다고나 할까. 나는 이준규의 동판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에서 그의 마음 한 자락을 들여다본다. 평범해 보이는 주택가 풍경이 실은 이 작가의 내면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선방을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세속의 이 흔한 풍경 안에서도 그는 차분한 분위기를 잡아내고 있다. 선(禪)적인 정갈함을 문질러내고 있는 것이다.
풍경화란 작가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을 외부세계에 덧씌워 구현한 것을 일컫는다. 그러니 이 비근한 주택가 풍경이 기실 마음의 풍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속의 도시에서도 허정하고 무심한 분위기를 잡아채는 눈이고 마음이다.
그는 동판을 스크래퍼로 깎고 로커(침)를 이용해 무수한 점을 찍었다. 이 집요하고 무모한 노동은 동판이란 화면, 물질을 자신이 원하는 표면·물성으로 다듬어놓는 지난한 일이자 동시에 깊이 있는 흑백의 톤이 가능한 공간, 피부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화면을 새까맣게 만드는 방법이다.
어떤 깊음을 갈망하는 색조이고 자신만의 분위기, 느낌, 내면의 빛을 표면에 방사하는 그런 색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그림이다. 그는 동판화만이 지닌 부드러운 톤과 촉각적인 질감의 맛을 살려내 자신의 삶의 환경을 소재 삼아 그만의 내면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은 침을 이용해 무수한 구멍을 찍고 그것들로 인해 가능해질 어둠과 밝음의 대비, 부재와 현존, 현실계와 상상계가 공존하는 이 적막함과 여운이 감도는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뾰족한 침으로 상처를 내서 이토록 부드럽고 여운이 감도는 풍경을 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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