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공연장 좌석의 신분적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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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공연장 좌석의 신분적 명칭

민은기 | 서울대 음대교수·음악사

 

 

 

모든 공연장에는 좌석등급이라는 것이 있다. 무대가 잘 보이는지, 소리가 잘 들리는지에 따라 좌석에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를 둔다. 그런데 이 좌석등급에는 A석 위에 S석, 그 위에 R석, 다시 R석 위에는 VIP석, VVIP석, P석 같이 거창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공연장의 대부분 좌석이 R석 이상이기 때문에 R석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로열’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자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자주 지적되자, 급기야 신임 예술의전당 사장이 고가의 신종 좌석들을 없애고 R석, S석, A석, B석, C석으로 좌석을 표준화하는 운영방안까지 발표했다.

 

좌석 등급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기본적으로 공연 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이 원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좌석등급이 청중들의 신분 상승 욕구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몇 평 아파트에 사는지에 따라 사회적인 신분을 평가받는다. 음악회에서는 그것이 자리이다. S(스페셜)석, R(로열)석, VIP(베리 임포턴트 펄슨)석, VVIP(베리 베리 임포턴트 펄슨)석, P(프레지던트)석 등 좌석등급의 이름들은 모두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종문화회관 ㅣ 출처:경향DB

역사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18세기 서양에서 공연장이 처음 생겼을 때 좌석은 철저히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어디에 앉는가가 곧 그 사람의 신분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로열 박스는 말 그대로 왕족들이 앉았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 공연장들을 보면 자리가 신분에 따라 정해졌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경우 카테고리 1, 2, 3, 4, 또는 A, B, C, D, E로 좌석이 표시되어 있거나, 발코니, 스톨스, 어퍼 서클 하는 식으로 공연장 안에서의 장소적 특징을 나타낸다. 아마도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신분차별적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간혹 오래된 공연장은 아직도 과거에 불리던 이름대로 1층 관람석을 오케스트라 또는 파르 테르, 2층 발코니를 드레스 서클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름들은 과거 공연장 문화를 보여준다. 지금은 어느 공연장이나 1층 앞좌석이 가장 비싸지만 과거에는 2층에서만 관람을 했고, 1층은 땅바닥(파르 테르)이라고 해서 비워 두었다. 오페라나 발레 공연 때 성악가들과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라갔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밑 1층에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1층을 오케스트라 자리라고 했다. 드레스 서클은 당시 2층 발코니에 앉아서 관람하던 여성관객들의 드레스 코드가 이브닝 드레스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정작 서양 공연장의 좌석등급 명칭에서는 신분적 의미가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신분적 명칭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것을 가지고 지금 문제를 삼거나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돈이 신분이 돼버린 것이 현실인데 이름이 무엇이든 어떠랴! 단지 VIP가 아닌 사람들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된다.

 

서양의 유명 오페라극장에는 입석표라는 것이 있다. 입석표는 공연당일만 판매하는데 가격이 싸기 때문에 공연 몇 시간 전부터 매표소 앞은 이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 사람들은 오페라 공연 3시간 내내 서서라도 그 작품을 보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공연장에 과시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진정 음악을 듣고 싶어서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음악가들은 이 단골 입석 청중들이 어정쩡한 음악비평가들보다 귀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학시절 나는 대부분의 오페라를 이렇게 서서 관람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던 것은 젊기도 했었지만 거기 같이 서있던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전염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도 돈 없는 사람들이 기죽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연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이야말로 누구나 향유해야 할 인류의 공동유산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