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썸네일형 리스트형 봄여름가을겨울 ‘어떤 이의 꿈’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음악을 통해 꿈을 나눠주면서 살다가 안타깝게 세상과 작별한 전태관의 시작은 1986년 데뷔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였다. 보컬인 김현식(작고)을 리더로 유재하(작고), 김종진, 장기호, 전태관(작고)이 멤버였다. 그러나 김현식의 마약사건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 밑에 김종진과 전태관만 남았다. 김종진은 고려대 사학과, 전태관은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성향은 달랐지만 호흡만큼은 최고였다. 김종진은 전태관이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밴드의 온갖 잡무를 맡겨서 너무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어떤 이의 꿈’을.. 더보기 해바라기 ‘사랑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이 다시 떠 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외양만 보면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평범한 사랑 노래다. 그러나 ‘사랑으로’를 작사·작곡한 해바라기의 이주호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주호가 이 노래를 쓴 시기는 1987년 11월이었다.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그때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모두가 경제대국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정수라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더보기 김현식 ‘골목길’ 프레디 머큐리의 요절이 아쉽듯이 김현식의 죽음도 안타깝다. 우리에게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음악만을 생각했던 가수로 기억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병원에서 탈출하여 녹음을 했던 열정적인 아티스트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초 록과 블루스를 지향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아지트는 서울 동부이촌동 김현식의 자취방이었다. 이정선, 엄인호, 이광조, 한영애, 이주호 등이 매일 모여 술과 음악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어울리던 멤버 중 한 명이던 서 아무개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진 뒤 그 아픔을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에게 털어놓았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더보기 비틀스 ‘예스터데이’ 해마다 연말이면 유독 자주 들리는 노래가 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다. ‘모든 괴로움은 멀리 있는 듯 했죠(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로 시작하는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1600회 이상 리메이크됐으며 저작권 수익 또한 천문학적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지만 일부 예술가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폴 매카트니는 어느 날 여자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난 뒤 피아노 앞에 앉아 10분 만에 이 곡을 완성했다. 꿈속에서 멜로디가 떠오른 것이다. 그는 너무도 쉽게 떠오른 멜로디가 온전한 내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스크램블 에그’라고 이름 붙여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들려줬다. 표절이 아닌 것이 확인되자 곧바로 가사작업에 돌입했다. 비틀스 멤버들은 .. 더보기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1975년 12월. 싱어송라이터이자 잘나가는 라디오 DJ였던 이장희는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대마초 파동 때문이었다. 구치소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노래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출소 이후 명동에서 신사복 매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망은 대마초보다 더 질겼다. 미8군 무대에서 인상 깊게 본 밴드 ‘서울나그네’에게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 최이철, 김명곤, 이남이 등 멤버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였다. 팀명을 한글로 짓기로 하고 서로 논의한 결과 이남이가 제안한 ‘사랑과 평화’로 했다. 1978년 이장희는 자신의 아내, 아들, 친구 등의 이름으로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래를 내놨다. 활동금지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더보기 퀸, 위 윌 록 유 록그룹 퀸을 향한 당대의 열광을 단순한 복고적 문화현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들의 전성기로부터 40년이 지나서 인기가 ‘역주행’하는 현상을 보고 프레디는 뭐라고 할까. 영화 제목의 영향으로 ‘보헤미안 랩소디’가 회자되고 있지만 ‘위 윌 록 유’ 역시 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1977년 ‘위 아더 챔피언’과 함께 발표된 이 노래는 공연장과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현장에서 줄곧 사랑받아 왔다. ‘위 윌 록 유’는 브라이언 메이가 만들었고, ‘위 아 더 챔피언’은 프레디 머큐리가 만들었다. 두 노래가 늘 쌍둥이처럼 붙어다녀서 일부 팬들은 한 곡으로 여기기도 했다. 영화에서 재현된 1985년 7월 라이브에이드 공연에서도 두 곡을 연속해서 선보였다. ‘쿵쿵짝, 쿵쿵짝’의 단순 명료한 리듬.. 더보기 최백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옛일을 잊으리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갯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몇 해 전 내가 기획에 참여했던 공연에서 최백호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늦가을이었고, 낙엽은 거리를 뒹굴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러더니 봇물처럼 터져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나이 들어서 노래가 깊어지는 가수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최백호다. 젊은 최백호가 겉절이처럼 싱그럽게 노래를 했다면 지금의 최백호는 묵은지처럼 웅숭깊게 노래한다. 그는 이 노래를 가장 몰입해서 부르는 노래로 꼽는다. 1950년 부산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최백호는 29세 약관의 나이로 부.. 더보기 빌리 조엘 ‘피아노맨’ 지금부터 40여년 전 무명의 피아노맨이 LA 윌셔가와 웨스턴 애비뉴 교차로에 있는 술집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예명은 빌 마틴. 토요일 9시 단골손님이 하나둘 모여들고 옆자리 중년은 진토닉을 음미한다. 그는 말한다. 추억은 조금 슬프지만 달콤하니 추억을 연주해 달라고. 피아노맨, 오늘 밤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바텐더는 피아노맨에게 공짜술을 가져다 주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르며 모두들 조금씩 취해간다. 피아노맨의 여자 친구인 웨이트리스는 손님들의 추파를 잘도 피한다. 그들은 그곳에 모여 외로움이라는 술을 나눠 마신다. 술 취한 그들이 바에 앉아 노래를 듣다가 팁을 주면서 말한다. “여보게, 자네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Man, what are you doing here?)” 그는 ‘피아.. 더보기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