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 싱어송라이터이자 잘나가는 라디오 DJ였던 이장희는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대마초 파동 때문이었다. 구치소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노래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출소 이후 명동에서 신사복 매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망은 대마초보다 더 질겼다. 미8군 무대에서 인상 깊게 본 밴드 ‘서울나그네’에게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 최이철, 김명곤, 이남이 등 멤버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였다. 팀명을 한글로 짓기로 하고 서로 논의한 결과 이남이가 제안한 ‘사랑과 평화’로 했다. 1978년 이장희는 자신의 아내, 아들, 친구 등의 이름으로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래를 내놨다. 활동금지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했었지/ 한동안 못 만났지/ 서먹서먹 이상했었지/ 혹시 밤에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대겠지’에 이어 ‘대겠지’라고 합창하는 펑크록 풍의 ‘한동안 뜸했었지’는 발표와 동시에 ‘대박’이 났다. 그러나 이장희가 이 노래를 들고 퇴계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멤버들을 찾아갔을 때 대부분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녹음하면서도 이 노래를 빼자고 했다. 그러나 이장희는 “딴 거는 다 하자는 대로 하겠는데 이 노래만큼은 꼭 넣자”고 했다. ‘사랑과 평화’의 멤버들은 당대 미8군 무대에서도 가장 수준급의 연주실력을 뽐내던 팀이었다. 그들의 실력과 수년 동안 음악에 대한 갈증을 참아왔던 이장희의 작곡 실력이 어우러져 수준급의 히트작이 탄생한 것이다.
‘사랑과 평화’의 1집은 요즘도 여전히 명반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거나 교체되면서 활동을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또 이장희마저도 1980년대 초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가 LA에 터를 잡고 라디오방송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들의 빈자리를 ‘산울림’이 치고 들어왔다면 다소 과장일까.
<오광수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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