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이 다시 떠 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외양만 보면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평범한 사랑 노래다. 그러나 ‘사랑으로’를 작사·작곡한 해바라기의 이주호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주호가 이 노래를 쓴 시기는 1987년 11월이었다.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그때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모두가 경제대국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정수라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라고 노래했던 ‘아 대한민국’(1991)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고 증권시장은 활황이었으며 강남 졸부라는 말이 유행했다. 압구정동은 유흥과 환락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주택 200만호 건설로 개발 경기가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더 깊은 법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외받는 이웃이 더 늘어났으며 빈부의 격차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분배에 대한 사회정의도 요구됐지만 정부는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늘은 되도록 천막으로 가렸다.
어느 날 이주호는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 난 기사 한 줄에 눈길이 갔다. 서울 김포공항 근처에 부모도 없이 살아가는 4자매의 이야기였다. 막내는 겨우 3살이었으며 영양실조 등으로 인해서 목숨이 위태롭다는 기사였다. 그러나 적은 보조금으로는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4자매에게 막내를 치료할 돈이 없다는 거였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한 그 저녁에 이주호는 4자매를 향한 연민과 사랑을 듬뿍 담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자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송구영신의 길목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 이웃에 소외된 이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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