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어떤 이는 꿈을 잊은 채로 살고/ 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음악을 통해 꿈을 나눠주면서 살다가 안타깝게 세상과 작별한 전태관의 시작은 1986년 데뷔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였다. 보컬인 김현식(작고)을 리더로 유재하(작고), 김종진, 장기호, 전태관(작고)이 멤버였다. 그러나 김현식의 마약사건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 밑에 김종진과 전태관만 남았다. 김종진은 고려대 사학과, 전태관은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성향은 달랐지만 호흡만큼은 최고였다. 김종진은 전태관이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밴드의 온갖 잡무를 맡겨서 너무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어떤 이의 꿈’을 발표한 건 1989년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을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조용필처럼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유명해지길 원했다. 그들의 선배 송홍섭은 “너희들이 원하는 음악을 해라. 유명해지는 건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충고해줬다. 재킷은 전태관의 친구인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맡았다. 이 앨범이 수십만장 팔리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김종진은 ‘어떤 이의 꿈’을 두고 여러 생명을 구한 노래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라디오 DJ 시절에 ‘자살하러 가는 길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를 듣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라는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한 바 있다. 또 직간접적으로 이 노래로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음악에 책임의식을 갖게 됐다. 당시 밴드의 주 수입원인 나이트클럽 출연을 지양하고 대신 공연에 집중했다.
1990년대 초에 내놓은 그들의 라이브앨범은 100만장 이상 나가면서 선풍을 일으켰다. 여전히 봄여름가을겨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덕분이다.
이제 곧 새해다. 이떤 이들은 새로운 꿈을 꿀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꿈이 어디 있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꿈꾸는 것도 자유다.
<오광수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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