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을과 함께 가야 갑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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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을과 함께 가야 갑도 빛난다

갑을관계가 말썽이다. 라면상무로 시작해서 지갑폭행 회장, 우유회사의 대리점 횡포, 그리고 편의점 족쇄계약까지. 포문이 열린 갑을 스캔들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처럼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 오죽하면 <갑과 을의 나라>라는 책까지 나올까.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을들은 때로 분노하고 주로 절망한다. 전력부족에 더해서 갑을관계가 주는 슬픈 현실의 무게로 인해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경향DB)



역사적으로 보면 음악가들 역시 철저한 이었다. 천박한 사당패로 간주돼 온갖 설움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 예인들의 경우뿐 아니라 서양 음악가들 역시 종종 노예 같은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궁정 음악가라는 것이 겉으로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궁정의 붙박이로 군주가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하고 연주해야 하는 노동자에 불과했고 더욱이 상대가 지체 높은 왕이나 제후였으니 을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음이 착하거나 음악을 알아주는 왕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무 때나 예고 없이 쫓겨나기 일쑤였으니, 그야말로 음악가들의 처지가 오늘날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비정규직의 형편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이야 국가인권위원회도 있고 노동부도 있어서 하소연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당시 음악가들의 처지는 지금보다 더 비참하고 절박했을 것이다.


작곡가 하이든 (경향DB)



하이든은 유럽 최대의 영지를 자랑하던 에스테르하지공의 후원을 받아 수십 년간을 악장으로 근무했다. 말이 악장이지 하인과 별 차이 없는 신분이었다. 문제는 영주가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름 궁전에 머물면서 매일같이 연주를 하도록 시킨 것이다. 영주에게는 우아한 휴가였겠지만 음악가들에게는 휴가도 없는 고된 사역이었다. 그렇다고 목줄을 쥐고 있는 후원자 앞에서 파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이든은 일명 ‘고별 교향곡’을 작곡해서 음악이 끝나 가면 한 명 한 명의 연주자들이 각자의 보면대 앞에 켜 있던 촛불을 끄면서 무대에서 퇴장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자신들의 사정을 알아달라는 애절한 호소였던 셈이다. 에스테르하지공은 이것을 곧 알아차리고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휴가를 주는 것으로 미담은 끝이 난다.


작곡가 모차르트



그러나 현실이 늘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다. 후원자의 횡포에 지친 모차르트는 프리랜서 음악가의 길을 선언하지만, 그 순간부터 변덕스러운 청중을 상대해야 했고, 매일매일 먹고살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오늘날의 아이돌 스타나 유명 연주가들 역시 그 화려한 명성의 이면에는 늘 불공정한 계약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술이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예술은 자본에 비해 늘 열세다. 과거에는 권력의 간섭을 받았다면 지금은 돈의 간섭을 받는다. 대중이 원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뒤집어 보면 자본이 원하는 예술인 셈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늘 가난할 수밖에 없다.


갑과 을이라는 것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는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는 없을까. 을이 갑을 필요로 하듯이 갑도 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 역할이 다른 것일 뿐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자본을 대고 교향악단을 운영하는 주체도 있어야 하지만 연주자들도, 그리고 그것을 들으러 오는 청중들도 있어야 비로소 음악은 공유되고 공감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음악에 주선율과 반주선율이 있지만 일방이 다른 일방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주선율이 지배적이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일 뿐이다. 반주선율이 완전히 지배당하는 순간 화음은 사라진다. 오블리가토는 꼭 필요한 성부라는 뜻인데, 흥미롭게도 주선율이 아니라 그것을 보조하는 선율을 가리킨다. 음악에서 을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을이 있어야 갑도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갑에게 부탁한다. 제발 혼자 지배하고 군림하지 말고 을과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달라고.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