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행복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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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행복 교육

지난 4월부터 이웃집에서 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나무와 개울이라고 이름 붙였다. 묶어 키우고 싶지 않은데 농약 뿌린 밭이 지척이어서 어쩔 수가 없다. 대신 데크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개 줄을 길게 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산책을 시킨다. 산책 시간이 되면 녀석들은 마당으로 쏜살같이 내려가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 열매들부터 주워 먹는다. 그렇게 나무와 개울이는 디저트부터 챙겨 먹고 산책을 시작한다. 지들끼리 찧고 까불며 걷다가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나비랑 춤도 춘다. 아주 가끔은 나비를 삼켜버리기도 한다. 그럼 파리채로 한 대 맞는다.



수시로 산책시키는 모습을 자주 본 동네 건설업자가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묻는다. “좋은 개인가 봐요?” 좋은 개? 족보 있는 비싼 개냐는 의미겠지? “아니요. 저 아래 이웃집에서 데려온 잡종이에요.” 그리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개가 아닐지 몰라도, 여하튼 행복한 개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죽도록 일하기를 종용하는 이 사회의 유능한 부속품이 아니라 시대나 환경이 아무리 불우해도 행복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스웨덴이나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말이다.



스웨덴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에겐 소유욕과 존재욕이 있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욕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욕을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인 사회라고.’ 공교육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같은 책을 읽히며 그런 교육을 시킨다는 거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스웨덴에 다녀온 학생의 얘기를 들어보니 자연을 사랑하고 스스로 관심사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그런 교육 때문에도 스웨덴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이끄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웨덴보다 환경이 훨씬 열악한 아이슬란드는 어떨까? 너무 춥고 어둡고 이렇다 할 천연자원도 일자리도 별로 없어서 매일 밤 독주가 필요할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삶의 만족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나라다. 듣자하니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들만의 풍부한 신화와 시와 음악과 함께 어둠 속에서 잘 지내는 법을 배운단다. “책 없이 사느니, 헐벗고 굶주리는 편이 낫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그 때문에 예술가와 작가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고 취미로 시를 쓰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도 많다. 그리하여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하더라도 상상력이 발달한 창조적인 사람들을 숭배하는 게 일반적인 국민 정서라고 한다.



역시 다르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파산에 이르러 국민 전체가 그 빚더미를 떠안게 됐을 때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그들은 문제를 해결했다.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벌인 대규모 시위로 ‘주방 도구’ 혁명이 일어났고, 그게 선거 혁명으로 이어져 시민들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외친 요구를 대변할 정권을 출범시켰다. 




누가 만약 ‘이 놈의 암담한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조언할 것 같다. “여름 방학을 맞아 로알드 달이 창조한 특별한 꼬마 숙녀 이야기 <마틸다>를 읽혀보세요. 참, 마틸다의 바람대로 하시면 더 좋겠네요. 여섯 살 나이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갖다 읽은 마틸다는 자기 부모도 텔레비전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지 못했던 인생관’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예를 들면 장 자크 루소의 <에밀> 같은 책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죽도록 공부하고 그 다음엔 또 죽도록 일하도록 만드는 이 잘못된 사회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이면서도 자족적인 인간으로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부모에게 힘을 주는 책이거든요. 그걸 읽고 나면 아마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싶으실 거예요. 그럼 나가서 춤추듯 쏘다니세요.”



참고로 <에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을 소개할까 한다. ‘인간이 그 자연의 상태에 가깝게 있으면 능력과 욕망의 차이는 점점 더 작아지고 행복으로부터 그만큼 덜 멀어지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때가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행이란 사물의 결핍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핍감을 느끼게 하는 욕구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