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TV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정화면(LCD) 패널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90년대 말이다. 브라운관 TV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화질이었다. 세계 최초로 32인치 제품을 양산한 삼성전자는 당시 “배우의 땀구멍까지 놓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배불뚝이 TV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것도 LCD TV다. TV의 세대교체는 드라마는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성형 붐도 이와 무관치 않다.
텔레비전 조립 공정의 여성 근로자들(1970년대)
LCD 등장 이후 15년여 만에 TV 시장에 또 다른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고화질을 자랑하는 초고선명 TV(울트라 HDTV)의 등장이다. 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CF를 보면 오랑우탄이 TV 화면 속 바나나를 진짜인 줄 알고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눈으로 자연물을 직접 볼 때와 같은 느낌을 구현했다는 얘기다. 과거 배우의 땀구멍을 앞세운 것과 비교해도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삼성 전자 와이드 텔레비전(1990년대)
TV의 생명은 선명도다. 화질은 패널에 들어 있는 화소(畵素) 수에 따라 결정된다. 화소 숫자가 많을수록 더 선명하고 가격도 비싸다. 현재 대부분 가정에 보급된 고화질(풀 HD급) TV는 200만화소 급이다. 새로 나온 초고선명 TV는 800만화소다. 4배가량 더 밝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초기 제품인 만큼 65인치가 1000만원을 웃돈다. 지금은 화질에 걸맞은 콘텐츠가 없어 TV에 포함된 업그레이드 기능을 통해 맛만 즐기는 수준이다.
초고선명 TV의 등장은 TV 수상기뿐 아니라 방송시장 전체에 일대 변혁을 몰고 온다. 달라진 화질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방송장비는 물론 송출 방식도 모두 바뀐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화장술도 달라져야 할 판이다. 지상파TV는 물론 케이블TV 업체들도 세대교체에 맞춰 내년 하반기부터 시험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다. 미국·일본도 내년부터 초고선명 TV 방송을 시작한다.
TV의 진화 속도는 소비자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고화질 화면에 3D TV까지 가세하면서 소비자들의 고민은 더욱 크다. TV 화질 경쟁은 더 좋은 화면을 즐기려는 인간의 욕망 못지않게 거실 속 TV를 밀어내려는 업체들의 상술과 무관치 않다. 3D 화면을 초고화질로 즐길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전세계 3D TV 시장 전망 (단위:대, 자료:인스탯)
박문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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