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잘 먹는 소녀들’과 인권감수성의 실종 가학성과 관음증 논란으로 2회 만에 폐지 결정된 JTBC 을 보면,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포맷 자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방청객은 온통 남자다. 곧 등장할 걸그룹 소녀들의 이름을 외치며 우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회자는 ‘먹방 요정들의 대결’을 예고하고, 앳된 소녀들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대기실에 앉아 있다. 이윽고 소녀들이 한 명씩 스튜디오에 등장해 자신이 속한 그룹의 곡에 맞춰 짧은 재롱을 펼친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먹는다’. 빨아 먹고 뜯어 먹고 핥아 먹고 슬로모션으로 먹고 아무튼 먹는다. 사회자는 그것을 중계한다. 패널과 방청객은 침을 흘리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거나,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는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제작진은 왜 애당초 .. 더보기 [지금 TV에선]미디어는 여배우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정혜인(김아중)은 국내 최고의 여배우다. 10대에 데뷔한 이후 20년 동안 톱스타로 큰 인기를 누려온 그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급작스러운 발표에 대중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곧이어 혜인의 아들 현우(박민수)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유괴범은 혜인에게 아들의 생환을 대가로 기괴한 조건을 내건다. 매회 범인의 미션을 수행하는 생방송 리얼리티쇼를 제작하라는 요구였다. 흔한 모성 스릴러처럼 시작한 SBS 수목극 는 납치범의 조건이 드러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방송은, 곧 쇼를 이용해 재정난을 타개하려는 방송국 사장, 재기를 노리는 연출자, 화제성에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연예 매체, 자극적인 내용을 좇는 대중 등 다양한 욕망이 충돌하는 노골적인 서바이벌 .. 더보기 [지금 TV에선]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본격적인 대량 소녀 성장서사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 에 이어 대규모 보이그룹 데뷔 서바이벌 가 지난 18일 방송을 시작했다. 49명의 소년들은 가슴팍에 ‘소년 OOO’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나와 자신의 불확실한 성장서사의 서문을 열었다. 그들은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의 불안한 미래와 “뭐 먹고 살 거냐”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오직 자신의 꿈을 향해 땀흘리며 달려갈 것이다.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몇 뼘쯤 성장해 있을 것이며, 지금의 어설픈 무대는 후일 자기 역사의 자료화면으로 남을 것을 예고한다. 시즌5째 승승장구하고 있는 래퍼 서바이벌 역시 비슷한 성장서사를 안고 간다. 힙합/랩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래퍼 개개인의 고유한 성장담의 성격을 띤다. 마이크 하나로.. 더보기 ‘워킹맘 육아대디’ ‘아내바보’라는 표현부터 버리자 MBC 일일연속극 는 근래 보기 드문 이상적 계몽드라마다. 계몽의 대상은 사회 전체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같이 키우려고 하지 않는 세상”을 겨냥해, 제도적 모순에서부터 일상에 뿌리 깊이 자리한 성차별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극화하고 있다. 워킹맘의 애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았어도, 육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이렇게까지 다층적 관점에서 그려낸 사례는 흔치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여러 관점 중에서도 남성 계몽극으로 바라볼 때 가장 흥미롭다. 남주인공 김재민(박건형)은 이른바 ‘벤츠 남편’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직업적 성취를 존중하며,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엄마와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고부갈등을 중재한다. 여주인공 이미소(홍은희)는 여성혐오와 권위의식으로 똘똘.. 더보기 가수의 인성교육 세계 음악시장에 깃발을 휘날리는 K팝 퍼레이드의 펀치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K팝 가수들의 공연열기를 보면 아직 기세가 꺾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배우 엠마 스톤이 ‘훌륭함을 넘어선 중독’이라고 표현할 만큼 서구도 인정하는 한류 대중음악은 그들에게 도대체 뭐가 매혹적일까. 흔히 K팝의 성공 요인으로 역동적인 군무, 가창 역량, 빼어난 비주얼 그리고 기획사의 프로듀싱 기술 등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음악관계자들은 요즘 들어 이것들에 ‘가수의 인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해외에서도 두꺼운 팬 층을 보유한 톱스타들에게 사회적 물의와 추문이 잇따르면서 인성교육이란 화두가 동시 부상하고 있다. 연예계에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유행의 변화나 창의의 후퇴가 아니라 ‘사고 한방’.. 더보기 [지금 TV에선]‘딴청’의 공동체와 여성 예능인 배우 이영진은 지난 9일 KBS 에 출연해 “왜 이렇게 멀쩡한 분들이 시집을 안 가느냐”고 묻는 박명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 안 한 사람이 안 멀쩡한 건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이 한국사회의 일반 기준과 ‘좀 다른’ 말일 수는 있다. 그러나 불편할 정도로 급진적인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진행자들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기껏해야 “지금 주먹 쥐셨다”며 웃을 뿐이다. KBS 왜 그들은 진지하게 이 말을 받아치지 않는가. 왜 오히려 박명수의 편견을 웃음거리로 삼지 못하나. ‘노잼’일까봐? 유재석, 전현무도 똑같이 편협해서? 아니다. 한국 예능에는 그런 식의 맥락이 아예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쇼비즈니스라는 TV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어떤 맥락은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한.. 더보기 [지금 TV에선]‘휴먼다큐 사랑 2016’과 ‘나쁜 엄마’ MBC 2016년 방송분이 지난주 종영했다. 올해로 11년째, 가정의 달 5월이면 어김없이 안방 문을 두드린 이 장수 시리즈는 인간 내면의 상처에 밀착하면서도 비극성에 함몰되지 않는 담담한 연출로 호평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문제가 많아 보인다. 엄앵란, 신성일의 굴곡진 부부 역사를 사랑의 해피엔딩으로 봉합한 1부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엔딩과 함께 봉합된 것은 부부의 갈등만이 아니라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억압적 현실이었다. 이런 시선은 이후 편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두 차례나 소재로 선택한 ‘입양’ 이야기에서 두드러졌다. 3부 ‘내 딸 미향이’ 편은 딸의 청각장애 치료를 위해 스위스로 입양을 결정한 탈북여성의 사연, 5부 ‘사랑하는 엄마에게’ 편은 28년 전 각각 다른 나라로.. 더보기 [지금 TV에선]오해영의 투쟁 tvN 드라마 의 오해영(‘그냥 오해영’)은 ‘대처’에 능하다. 결혼식이 하루 전날 취소된 이유에 대해 자꾸 묻는 동창회 친구들에게 “나, 남자가 너무 좋아. 한 남자랑 평생은 힘들 거 같아” 눙칠 줄 알고, 동명이인인 ‘예쁜 오해영’과 자신을 비교하는 남자들의 노골적인 언행에 대해서도 “미안하다. 나라서”라고 털털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선 능청스럽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변기에 앉아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외적인 조건으로 인간을 등급 매기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폭력적인 세상과 마주하며, 나름대로 자신을 지키는 법을 터득해온 베테랑 ‘흙수저’다. 이 드라마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외모나 학벌, 집안의 경제력.. 더보기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