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연속극 <워킹맘 육아대디>는 근래 보기 드문 이상적 계몽드라마다. 계몽의 대상은 사회 전체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같이 키우려고 하지 않는 세상”을 겨냥해, 제도적 모순에서부터 일상에 뿌리 깊이 자리한 성차별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을 극화하고 있다. 워킹맘의 애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았어도, 육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이렇게까지 다층적 관점에서 그려낸 사례는 흔치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여러 관점 중에서도 남성 계몽극으로 바라볼 때 가장 흥미롭다. 남주인공 김재민(박건형)은 이른바 ‘벤츠 남편’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직업적 성취를 존중하며,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엄마와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고부갈등을 중재한다.
여주인공 이미소(홍은희)는 여성혐오와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꼰대’ 상사와 직장 내 ‘유리천장’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안으로는 딸에게 소홀한 엄마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남편 재민의 전폭적 지원 속에 겨우 버텨나간다.
그런데 드라마는 한 걸음 더 나가 이처럼 ‘좋은 남편’에게도 한층 진보적인 각성의 서사를 마련한다. 재민은 미소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육아와 가사에 있어서는 남성중심적 인식의 한계를 미처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배우 박건형_경향DB
가령 첫 회의 요리실력 질문에 ‘못해서 안 한다’는 재민에게 ‘안 해서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어느 셰프의 모습이나, ‘아내를 돕는다’는 표현에 숨은 수동성을 지적하는 선배의 모습은 이후 재민의 진화를 위한 기초 질문 같은 것이었다.
재민이 ‘애처가’를 넘어 진정한 동반자로 성장하게 되는 것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본격적인 ‘육아대디’로서의 삶을 살게 되면서부터다.
애초 재민의 선택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다 못해 퇴사 압박까지 받는 미소에 대한 연민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내심 휴직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재충전의 시간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마저 갖는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아내가 말없이 감내해온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삶을 직접 감당하면서 무참하게 깨진다. 육아휴직을 신청하자마자 그 역시 희망퇴직 권고에 시달리고,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학부모로서 해결할 과제들도 만만치 않다. 이런 재민에게 ‘전업주부’ 선배인 아래층 남자 일목(한지상)이 전수하는 살림의 기술은 그 자체로 훌륭한 남편 교육서다. 재민은 비로소 ‘육아는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체화한다.
<워킹맘 육아대디>가 그리는 남편의 각성은 그동안 남자들의 육아 예능이나 요리 예능이 지녔던 근본적 문제점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여성의 가사와 돌봄 노동은 다큐인 데 반해, 남자들의 육아와 요리는 예능으로 소비된다는 것 자체가 성차별적 현실을 드러낸다. 예능 속 남성들의 육아와 가사분담은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태도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극복해야 할 한계는 존재한다. 무엇보다 재민의 ‘아내바보’, ‘딸바보’라는 표현부터 버릴 필요가 있다. 여성이 남편과 자녀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당연하게 인식되는데 유독 남편의 애정과 헌신을 달리 부르는 데에는 이미 ‘특수하고 부자연스러운 사례’라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바보’가 아니어도, ‘슈퍼맨’이 아니더라도, 남성들의 가사와 육아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김선영 | TV평론가
'TV 블라블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TV에선]미디어는 여배우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0) | 2016.07.04 |
---|---|
[지금 TV에선]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0) | 2016.06.27 |
[지금 TV에선]‘딴청’의 공동체와 여성 예능인 (0) | 2016.06.13 |
[지금 TV에선]‘휴먼다큐 사랑 2016’과 ‘나쁜 엄마’ (0) | 2016.06.06 |
[지금 TV에선]오해영의 투쟁 (0) | 201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