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인(김아중)은 국내 최고의 여배우다. 10대에 데뷔한 이후 20년 동안 톱스타로 큰 인기를 누려온 그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급작스러운 발표에 대중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곧이어 혜인의 아들 현우(박민수)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유괴범은 혜인에게 아들의 생환을 대가로 기괴한 조건을 내건다. 매회 범인의 미션을 수행하는 생방송 리얼리티쇼를 제작하라는 요구였다.
배우 엄태웅,김아중,지현우가 출연하는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 포스터. ㅣSBS
흔한 모성 스릴러처럼 시작한 SBS 수목극 <원티드>는 납치범의 조건이 드러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방송은, 곧 쇼를 이용해 재정난을 타개하려는 방송국 사장, 재기를 노리는 연출자, 화제성에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연예 매체, 자극적인 내용을 좇는 대중 등 다양한 욕망이 충돌하는 노골적인 서바이벌 게임장이 된다. 이를 통해 타인의 비극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시대와 미디어의 속성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데 이 드라마의 탁월함이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의 여배우 활용에 대한 거울효과다. 드라마 내용의 예고편 격인 도입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혜인은 <엄마>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으로 처음 드라마에 등장해 ‘아이 잃은 엄마’의 처절함을 연기한다. 마지막 촬영을 끝낸 혜인 앞에 깜짝 선물처럼 아들 현우가 나타나고, 취재기자들은 그런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혜인의 모습에 연신 플래시를 터트린다. 혜인은 영화 밖으로 나와서도 여전히 ‘엄마’다.
이 짧은 도입부는 한국의 미디어 안에서 기혼 여배우가 차지하는 위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흥행 보증수표”라는 수사를 지닌 최고의 여배우일지라도,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엄마’에 갇혀 있다. 혜인은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수상에 대한 기대까지 모으는데 실제 한국 최초 “칸의 여왕” 전도연도 수상작 <밀양>에서 아이의 유괴로 고통받는 엄마를 연기했다. 혜인이 <엄마>를 끝으로 “평범한 엄마”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장면 역시 작품 속 역할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풍자 효과가 일어난다.
<원티드>가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지는 시점은 은퇴한 혜인이 납치범의 요구대로 카메라 앞에 다시 돌아온 뒤다. 범인은 혜인에게 쇼의 각본을 보내고 그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쇼의 연출을 맡은 신동욱(엄태웅) 또한 혜인에게 ‘자신이 정한 프레임’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한다. 쇼를 보는 대중에게도 아이 잃은 여배우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가장 큰 볼거리다.
혜인은 이 억압적 상황에서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연출하는 배우로서 범인, 연출자, 대중과의 주도권 싸움을 벌여 나간다. 자신의 결정으로 생방송 토크쇼에 나가 전 국민의 협조를 부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카메라 앞에 선 혜인의 절박하고 애절한 모습은 진심이지만, 동시에 미디어가 여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간파한 정교한 롤플레잉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원티드>의 풍자성은 드라마 바깥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비판 기사 상당수가 배우 김아중의 ‘부족한 모성애 연기’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미혼 여배우의 한계’라는 기사도 있다. 제작진은 “너무 큰일을 당하면 오히려 정적이 오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는 해명까지 내놓았다.<원티드>가 묘사하는 세상과 현실은 불이 꺼지면 거울로 변하는 카메라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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