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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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우울한 날엔 복권을 사지요 복권이 당첨되면 뭘 할 거죠? 그건 비밀이에요오. 왜냐면, 쫌…부끄럽거든요. 그런데 왜 사세요? 으음…희망이 필요하지요오. 무슨 희망요? 으음…부자가 되는… 저런 복권 한 장으로 부자가 되나요, 3만달러 시대에? 아니죠, 부족하지요, 계속 사야겠지요오. 당첨될 거라고 믿으시나요? 아니죠오, 사서 버리기 전까지가 겨우 그 유효기간이지요오 뭐… 아아 행운을 기다리는 거군요? 에에이, 행운은 아무한테나 오나요, 그냥 희망을 사는 거지요오 뭐…. 더보기
깃발만 보면 흔들고 싶어진다 “깃발만 보면 흔들고 싶어진다, 여기 패잔의 유배지에서라도 말이다.” 언젠가, 한강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거기 강변 공사장에서 노을 속에 홀로 초라하게 나부끼는, 흙이 묻어 낡고 찢어진 붉은 깃발을 보았다. 전시장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왜 ‘패잔’이죠?” “예, 그야, 난 한때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한 적이 있고, 졌지요. 그래서 패잔이지요. 끝까지 동의할 수 없는 패배….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자의…. 내가 바란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그런 눈치도 헤아릴 줄 모르고…. 더보기
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강촌농무 “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먼 데서 와서 고작 한두 마디 울고 가는 새” 궁벽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내 보면 안다. 사람의 거리를. 너무 멀구나, 멀구나… 할 수도 있고, 참 호젓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번잡한 도회지에서 그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외진 산골 외롭고도 호젓한 사람의 거처를 이따금씩 들여다봐주는 작은 산짐승들과 조우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일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여기 도회지에서들 살고 있다. 물론, 저 호젓한 시골마을들에도 유무선 통신은 촘촘히 깔려 있다. 더보기
때로 우울하지 않고 어찌 성찰…있겠는가 우울함이야말로 자기 성찰의 어머니다 우울해야 눈알을 내리깔게 되고 눈알을 내리깔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 성찰이 있단 말인가 당신네 세상 요즘 너무 명랑하다 내 시의 일부분. 우울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건 고통이니까. 나도 언제나 명랑하고 싶다.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 모두. 그 어떤 까칠한 성찰도 필요 없는 그런 순수 인간, 그런 순수한 나의 사회. 때로 우울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더보기
나무여, 풀들이여 나무여, 풀들이여 이제 떠나라 옛 오아시스 목마르다 메마른 바람에 작은 꽃씨 되어 새로운 오아시스 또는, 신선한 대초원의 별을 찾아 이제 여길 떠나라 도시의 아스팔트 포장 도로 갈라진 틈 사이로도 풀들은 억세게 초록의 잎사귀들을 밀고 올라온다. 그 도저한 생명력을 찬미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 문명에 관한 자책을 해야 할까. 애처롭다. 존재하기의 고군분투. 저 풀들이나, 인간들이나. 더보기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5·18’(정태춘 작사·곡) 1절. 1995년에 ‘광주 안티 비엔날레’에서. 더보기
유년 나는 나의 기억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지만, 더군다나 유년의 기억은 더욱 아득하지만, 그래도 자꾸 그때 기억 몇 자락이라도 끌어내고 싶은 이유가 있다. 다른 문명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만들어낸 기억은 아닐까 아니면, 전생의 기억? 나의 유년. 거긴 기계 문명이 아니었다. 기술과 자본의 문명이 아니었다. 현금이 아니라 대체로 물물교환이었고 그러니 은행과 주식시장도, 청년실업이나 노동의 차별도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가 있었으니 지금 이 산업문명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하여, 진화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또 다른 문명을 꿈꾼다. 아무튼, 내 유년의 이야기. 어린아이 같은 글씨에 성냥불 같은 횃불을 그리고…. 더보기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苦路長途共來此 言謝不足故折腰(고로장도공래차 언사부족고절요) “힘든 길 긴 여정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로 감사하는 것으론 부족하니 허리를 꺾습니다.” 지난주, 여러 미술가들과의 전시에 나의 붓글들 30여점을 걸게 됐다. 나는 거대한 전시장의 가장 안쪽 구석방을 골랐다. 그리고 그 방 들머리에 이 글을 걸었다. 지난 40년, 늘 나의 이름 뒤에 붙여졌던 아내의 이름을 내 앞으로 모신 글. 은색으로 극진한 감사의 토막 한시까지 한 편 올려서.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물었다. 그는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순서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했다. 거어 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