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카테고리의 글 목록 (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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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봄이에요, 힘내세요 철모르는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땅속에서 움터 나오는 새싹을 막을 순 없지요. 개나리 철쭉 꽃봉오리 터지는 거 막을 수 있나요. 봄이 어찌 이리 대견한지요. 그건 모든 핑계나 나쁜 조건들이 다 그 앞에서는 아무 힘도 못 쓰기 때문이지요.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어쩌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 견디면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모든 자포자기와 절망도 그 앞에서는 밀려나고 맙니다. 모든 난관도 나약함도, 유혹도 코웃음치지요. 그게 바로 봄이에요. 힘내세요. 모두들. 더보기
바람이 분다, 일어나라 바람이 분다/ 사월 거리에 봄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오월 초록의 더운 바람이 분다. ‘바람’은 내게 ‘선동’과 동의어이다. 우리는 그 선동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에너지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어떤 공적 분노에도 소심하게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그것이 너 혼자만의 분노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바람이 불어올 때, 아니, 외침 소리 같은 뜨거운 광풍이 몰아칠 때, 사람들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은 집단이 된다.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리 시대에. 아니, 모든 세대들에게 크게 작게 그런 시대가 있다. 그런 바람이 있다. 바람은 꼭 그것만은 아니다. ‘쓸쓸함’과도 동의어이다. 그것은 서정을 자극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라, 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보기
경쟁과 차별의 뜨거운 채찍 1950, 1960년대 나의 유년은 거의 전통사회였다. 성장하면서 또는 어른이 되면서 근대화, 즉 초기 산업 시대의 물결을 보았다. 그러곤, 곧 그 가파른 산업화 과정 속에 나도 휩쓸려 들어가 있었고 체제가 몰아치는 속도는 감당 불능이었다. 물론 문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윤리적인가이다. 체제는 인간을 도구화해서 경쟁력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한 보상하고 그 반대 것들은 무자비하게 소외한다. 또 산업의 힘은 막강해서 국가마저 하위구조로 배치했고 얼핏 순진한 이름 ‘국민’이란 말도 사라져가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와 광고, 유통자들뿐, 모든 걸 투자자들이 제어 통제한다. 사회·문화·예술·학술·철학뿐인가, 담론까지 ‘시장성’이란 도구로 통제한다. 시장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보기
‘강촌농무’ 강마을 짙은 안개 몇 년 전, 강원도 부론의 남한강 강변에 내 작업실을 마련했었다. 서울 작업실을 옮겨 거기서 고요히 지내면서 그저 이대로 소진되면 참으로 최고의 여생이겠다 싶었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 이라고 내게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거기서 오래 그러질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오게 되었다. 는 거기서 며칠씩 지내면서 쓴 글들의 시리즈이다. 환절기 아침 안개가 참 좋았다. 글로 쓰고 싶은 좋은 말들도 툭툭 튀어나오고. 설사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의 말에 마음 닦을 시간도 조금씩 생겼더랬다. 깊이야 어떠하든 존재 자체에 관한 생각, 존재의 근간인 집착의 문제, 부끄럽다 아니다 뭐 날 평가할 것도 없이 그냥 나를 놓아버리는 그런 시간. 인적도 드물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내게 온전히 보여지는 시간들. 돌이켜보면 소.. 더보기
귀어부촌 歸於富村豪奢街(귀어부촌호사가) 尋非常口於陋巷(심비상구어루항) “부자 동네 호사한 거리에서 돌아와 누추한 뒷골목에서 비상구를 찾네” 아파트 후미진 담벼락 아래에 누가 버렸을까, 약간은 때가 낀 흰 페인트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걸 사진 찍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사진을 보며 짧은 한시 짓는다. 그리고 큼지마악하게 출력해서 그 뒷골목 풍경에 어울릴 글씨를 쓴다. 그리고, 반(反)과 산(産)을 새긴 스탬프와 내 이름을 새긴 낙관을 찍는다. “반산업”의 내 붓글 시리즈라는 뜻이다. 거기다 사채 업체 명함을 한 장 붙여 내 얘기를 끝낸다. (난 저런 명함을 수십 장이나 가지고 있다. 대개, 요즈음 우리집 현관 앞이나 동네 길거리에서 주운 것들이다. 흔하다.) 몇 년 전에 ‘비상구’라는 사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