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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생활이 음악에 녹아들 때 오랜 시간 음악인들과 어울려 살며 지키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이가 거의 없기에, 압도적으로 대다수가 다른 일을 한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한다. 가르칠 수 있는 재주가 있어 레슨이나 출강을 하면 다행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들춰내는 것이 듣는 사람이나 묻는 사람이나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굳이 묻지 않는 편이다. 어느 음악인에게 그런 질문을 한 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라는 답을 들은 이후였던 것 같다. 그게 10여년 전 일이다. 그때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을 꿈꾸는 이들이 시장에서 설 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획사에 들어가 아이돌이 되거나, 오디션.. 더보기
[산책자]문화적 다양성의 조건 서울 변두리 출신인 내게 TV나 라디오를 넘어서는 유년 시절의 문화적 체험은 영화관을 가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사방에 깔려 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버스 노선이 어디든 데려다 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역촌동 거쳐, 무악재 넘어 종로 쪽에나 가야 개봉관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꿍쳐둔 세뱃돈을 끄집어내든, 아버지 구두를 닦아 돈을 타내든 수를 내서 입장료를 마련하면 단성사, 서울극장, 명보극장 같은 개봉관에 갈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영화이면 줄을 서서 표를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겨우 영화관에 들어가면서 운이 좋기를 기대했다. 내 앞에 앉을 아저씨의 머리가 높지 않기를. 옆의 연인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기를. 앞뒤 좌우가 다 좁고 불편했던 극장의 환경 때문에.. 더보기
[아침을 열며]학봉의 초상화가 궁금한 까닭은 가짜가 넘쳐나는 세상에 얼마 전 들은 학봉 선생의 초상화 얘기가 예사롭지 않다.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학봉 김성일(1538~1593)의 후손들은 지난해 여름 화가 김호석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학봉은 서애 류성룡과 함께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은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초유사로 순절했다. 왕실의 권력이나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백성을 위한 직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의성김씨 문충공파 후손들은 학봉 선생의 초상화 없이 제를 지내다가 모습을 재현한 초상화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후대에 길이 남을 진영을 두고 누가 그리는 것이 좋을까 고심하며 오랜 시간 물색하던 후손들은 투표까지 거쳐 초상화에 일가를 이룬 수묵화가 김호석 화가에게 초상화를 맡기기로 결정지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화가는 깐깐하게 굴었다... 더보기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산으로 간 북한 콘텐츠의 상업화 남북한 형사들의 협력 수사를 다룬 가 6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새해 첫 흥행 대박영화로 떠올랐다. 영화계에선 벌써부터 올해 극장가 최대 흥행 키워드로 ‘북한’을 지목한다. 톱스타와 유명 감독을 내세운 기대작들 가운데 유독 북한 소재가 많아서다. 양우석 감독과 정우성, 곽도원이 뭉친 , 박훈정 감독에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이 합류한 , 윤종빈 감독과 황정민, 조진웅, 주지훈 등이 협력한 등 참여명단만 봐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핵심요인으로 분단의 긴장이 액션 블록버스터의 매력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2013년 , , 등 이른바 ‘꽃미남 북한 용병 3부작’의 흥행을 지나 2015년 , 지난해 을 거쳐 올해의 분단 블록버스터 러시 현상까지, 북한 소재가 점점 본격 오락물.. 더보기
[백승찬의 우회도로]청룽은 어디에 있나 10년을 넘게 썼지만 ‘청룽’(成龍)이란 표기는 여전히 낯설다. 우리에게 청룽은 언제나 ‘성룡’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앞 세대인 유하 감독의 속 청춘들은 비장한 리샤오룽의 시대에서 코믹한 청룽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성장했다. 아마 그 시대 청룽의 대표작은 이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무술 동작은 영화 속 적과 관객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내게 청룽의 대표작은 다. 이 영화에서 청룽은 마약왕을 잡으려는 홍콩 경찰이었다. 가끔 실수를 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무리한 수사도 벌이지만, 그래도 청룽은 좋은 경찰이었다. 악을 응징하겠다는 정의감, 약자를 돕겠다는 의협심,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승진이나 출세에 목을 매지 않으며, 강자에게 아부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국가.. 더보기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문화전쟁의 종착역 여기는 미국 워싱턴. 국회 사무실로 우편물이 날아든다. 그 속에는 도널드 와일드먼(Donald Wildmon)이라는 근본주의 목사의 분노에 찬 글이 실려 있었다. 때는 1989년 4월5일.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 불리는 극우 정치가와 예술가의 한판승부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발 예술인 블랙리스트 파동이 한창인 지금, 미국발 문화전쟁 사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전쟁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뇨(Andres Serrano)란 사진작가다. 그는 1965년 출범한 미국 문화예술지원기관(NEA)에서 책정한 예산 지원하에 전시회를 열던 중이었다. 시비의 근원은 종교, 죽음, 섹스를 주제로 다루는 안드레 세라뇨의 작가정신이었다. ‘오줌 속의 예수(Piss Christ)’.. 더보기
[청춘직설]영화계 ‘남성 카르텔’을 부숴라 얼마 전 영화계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15세 관람가로 알고 출연을 결정한 여배우 ㄱ은 부부강간 장면을 촬영하면서 상대역인 남배우 ㄴ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남배우 ㄴ은 “표정연기 등을 통해 강간상황을 암시한다”는 합의된 수위를 넘어 여배우 ㄱ의 상의와 속옷을 찢고 어깨를 주먹으로 가격했으며, 여러 신체 부위를 더듬었다. 여배우 ㄱ은 이를 신고했고, 검찰은 남배우 ㄴ을 강제추행치상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그가 연기에 “과몰입”한 것뿐이라며 무죄를 선고한다. 더 문제적인 것은 감독이 여배우 ㄱ 몰래 남배우 ㄴ에게 “미친놈 같은” 강간 연기를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배우가 영화 현장에서 어떻게 대상화되고 도구화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등장한 “과몰입”이라는 표현은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한국.. 더보기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좋은 놈, 나쁜 놈, 애매한 놈 영화 를 보았다. 대한민국 서민을 상대로 한 금융다단계 사기범 때려잡기가 큰 줄거리. 는 선악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기존 흥행공식을 답습하는 영화다. 여기에 조미료가 살짝 뿌려진다. 좋거나(김재명) 나쁜(진 회장) 놈 사이로 애매한 놈(박 장군)이 끼어든다. 온 네트워크 대표 진 회장(이병헌 역)의 아바타로 등장하는 박 장군(김우빈 역)의 변신과정이 영화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이는 직선적인 선악논리만으로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한 설정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애매하거나 착한 놈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박 장군의 역할은 다양한 의미를 시사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선 아니면 악이라는 편가르기의 역사를 되풀이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어진 남북분단의 흑역사는 좌익과 우익이라는 호칭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