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생존을 위한 ‘문화적 올바름’ 일상의 변화는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찾아온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어제가 천 번 쌓이면 오늘과는 다른 모습이 된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다 같은 속도로 오지는 않는다. 한쪽 주머니의 스마트폰은 2년마다 바뀌지만 다른 쪽 주머니의 지갑 모양은 20년이 지나도 변화랄 게 없다. 넥타이 모양처럼 바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잠잠하다가 불쑥 보이는 변화도 있다. 섭씨 99도까지는 여전히 물이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기화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적으로 변화하다보면 순간적으로 질적 변화를 이룬다고 해서 양질전화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모순과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가 일순간에 터져 변화하는 것 또한 양질전화의 법칙이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전이되거나 미국의 노예제가 사라진.. 더보기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오래된 소설 서울 상수동에 둥지를 텄다. 이삿짐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열두 개의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다시 읽고 싶은 책. 요놈들은 내년에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재를 수호할 것이다. 두 번째는 서재를 떠나야 하는 책. 살생부는 권력자의 수첩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아쉽지만 두 번째 친구들은 중고서점이나 인터넷 장터로 입양보낸다. 거기서도 간택받지 못한 책은 지인에게로 또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거창한 이별의식 따위는 없다. 얼빠진 사람처럼 수초간 멍하니 책표지를 바라보는 게 의식의 전부다. 고민의 시간이 늘어지면 판단이 흐려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떠나 보냈다. 작년에도 변함없이 이사를 핑계로 수십 권의 책들과 헤어졌다... 더보기 [문화와 삶]밥 딜런과 ‘세월엑스’ 올해 문화예술계의 빅뉴스 가운데 하나는 모던 포크 가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밥 딜런이 과연 이 상의 수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는 가수인가, 시인인가? 분명한 것은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이 ‘읽는 텍스트’에서 ‘듣는 텍스트’로의 문화사적 전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듣는 텍스트’란 말하듯 쓰여지는, 혹은 실제로 말을 하는 언어 텍스트를 뜻한다. 우리는 온갖 사적인 감정과 뉘앙스가 표현된 카톡 메시지와 페북 메시지를 ‘읽지’ 않고 사실상 ‘듣는다’. 같은 은유적 맥락에서 우리는 신문기사를 읽는 것보다 그 아래 어딘가에 모여서 분노하거나 빈정거리고 있는 댓글의 ‘목소리’를 더.. 더보기 [문화비평]‘문화 황금기’ 1980년대 지난 25일 영국의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53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히트곡인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이름에 어울리듯 바로 성탄절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1980년대를 풍미한 팝스타였다. 그룹 ‘왬’을 이끌었던 그는 ‘아하’ ‘컬처클럽’ ‘듀란듀란’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 사운드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였다. 조지 마이클과 함께 1980년대 팝스타 중 올해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프린스이다. 알앤비, 블루스, 록, 펑키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사운드의 이단아 프린스는 1980년대 팝의 전위에 선 인물이다. 프린스 역시 지난 4월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등 1980년대 팝의 향수를 간직한 슈퍼스타들이 하나둘씩 사망하면서 1980년대 팝문화는 서서히 .. 더보기 [지금 TV에선] 최순실 게이트 주인공들과 드라마<밀회>…우연의 일치?…다시 보는 <밀회> 2년 전 JTBC 드라마 를 보던 때가 떠오른다. 2014년 3월에 시작해 5월에 끝났으니, 세월호 참사의 한복판이었다. 그때만 해도 세월호 뉴스와 의 간극은 아주 커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 유아인의 팬 계정을 둘러보다가 의 짧은 영상을 보았고,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얼떨결에 ‘정주행’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성지 드라마’ 논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문제의 장면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다음은 예상하는 대로다. 예술대학 부정입학자로 정유라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어떤 장면에선 정유라에 이어 최태민이 호명되었으며, 정유라의 어머니는 드라마의 주무대인 서한예술재단 이사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무속인이고, 정유라는 출석도 하지 않고 큰소리치는 안하무인, 교수들은 그걸 봐주는 빌미로 한몫.. 더보기 [문화비평]막장 드라마 결말, 시민 손으로 명색이 대중문화와 영상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일련의 스토리텔링을 탐구하는 학자로서 탐사고발 프로그램이나 사극에 관한 분석을 주기적으로 수행한 바 있지만, 흔히 ‘막장 드라마’로 분류되는 장르에 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둔 적이 드물다. 아마도 각자도생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족제도 내부에 존재하는 숨겨진 비밀이나 이로 인한 첨예한 갈등이 서사를 이끌어가고, 파괴적인 감정의 충돌과 캐릭터들의 모진 대화들이 문양처럼 배어든 이런 유형의 텍스트를 감당할 자신감이나 선호도가 별로 크지 않았던 데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두 달이 넘게 온 나라를 마구 뒤흔들면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권력의 황당하고 무성찰적인 이면, 그것의 원색적이고 드라마틱한 속살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더보기 [지금 TV에선]‘디어 마이 프렌즈’와 ‘청춘시대’ 속 올해의 여성들 어김없이 결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의 키워드’를 꼽는 일이 이번 연도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진 해도 드물다. 그 어떤 말을 떠올려도 2016년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묻혀서는 안 될 ‘올해의 키워드’를 발굴하고 강조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올해 드라마계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연초 방송가를 집어삼킨 신드롬부터 현재 방영 중인 열풍까지, 2016년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로 시작해서 김은숙 작가로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그 못지않게 중요한 ‘낮은 목소리’들이 분명 존재했다. 노희경 작가의 에서 박연선 작가의 를 관통하는 .. 더보기 [문화비평]나는 요구합니다, 존중받기를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은 병으로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의료휴직수당을 신청한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복지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정부는 그를 위로하기는커녕 수치심만을 안겨준다. 관료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그에게 상황과 동떨어진 매뉴얼을 반복적으로 읊어대고, 인터넷 접수가 먼저라며 마우스를 쥐여준다. 한평생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그는 의사의 제안처럼 살기 위해 일을 쉰 것이지만 사회는 그를 휴직수당이나 신청하는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한다. 결국 화가 난 노인은 밖으로 뛰쳐나가 벽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굶어 죽기 전에 자신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외친다. 켄 로치의 영화 의 주인공 이야기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상황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 속 이야기다. 신자.. 더보기 이전 1 ··· 59 60 61 62 63 64 65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