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출신인 내게 TV나 라디오를 넘어서는 유년 시절의 문화적 체험은 영화관을 가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지하철이 사방에 깔려 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버스 노선이 어디든 데려다 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역촌동 거쳐, 무악재 넘어 종로 쪽에나 가야 개봉관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꿍쳐둔 세뱃돈을 끄집어내든, 아버지 구두를 닦아 돈을 타내든 수를 내서 입장료를 마련하면 단성사, 서울극장, 명보극장 같은 개봉관에 갈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영화이면 줄을 서서 표를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겨우 영화관에 들어가면서 운이 좋기를 기대했다. 내 앞에 앉을 아저씨의 머리가 높지 않기를. 옆의 연인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기를. 앞뒤 좌우가 다 좁고 불편했던 극장의 환경 때문에 누가 주변에 앉아서 보는지가 영화 관람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옆자리 숙녀의 향수 냄새를 영화의 여주인공이 뿌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 4D 설비를 갖춘 영화관에서 바람을 맞고 냄새를 맡으면서 바닥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주변의 사람들과 옹색한 자리가 영화에 녹아들었다. 그 시절 영화의 기억은 영화를 보러가기로 마음을 먹는 시점부터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땀내까지 같이 버무려져 저 아래 묻혀 있다. 개봉관까지 걸음을 하기 어려우면 갈 수 있는 곳은 집에서 버스 네 정거장 거리에 있던 재개봉관 신양극장과 열 정거장 거리의 재개봉관 도원극장이 있었다. 반복해서 틀었던 낡은 프린트 덕에 화면엔 비가 줄줄 내렸고 소리도 형편없었다. 담배를 물고 영화를 보던 배짱 좋은 친구 곁에서 가슴 졸이며 영화를 봤는데 값도 쌌고 두 편씩 동시상영은 기본이었다. 연령제한에 대해서도 개봉관보다 훨씬 관대했던 터라 약간의 일탈을 하는 기분에 어린 시절의 마음은 늘 두근거렸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인터넷을 통해서 제공되는 온갖 서비스들이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보여주는데 수십년 된 추억 속의 영화관 타령은 많은 사람들에겐 철지난 회고담일 뿐이리라. 하지만, 나는 단순히 영화를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를 하기 위해서 하는 절차들, 그리고 그 절차를 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한 사건들을 포함해서 즐겨야 한다고 믿기에 오늘도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선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같은 거대 체인점밖에는 찾을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비슷비슷한 모듈과 디자인의 공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영화관을 고르는 재미가 줄었고,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확률도 별로 없다. 영화관 몇 개 이외에 갈 곳이 없었던 시절의 영화가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공간과 관객 구성 속에서 그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볼 수 있는 영화의 개수나 장소의 개수를 생각하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와 그것의 관람을 둘러싼 총체적인 경험의 폭은 좁아지고 가짓수는 더 줄어든 것은 아닐까?
요즈음의 문화와 문화 정책에 대해서 고민하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소비가 영화에 편중되어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을 들었다. 어려운 경제적인 형편을 생각하면 영화관 갈 엄두라도 내보는 것이 다행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영화관에서 얻은 경험의 덩어리들이 그나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통해 획일성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오페라를 찍은 영상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도 표값이 3만원씩 하고 그나마 대중적이라는 뮤지컬도 입장료가 1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콘서트나 연극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것을 즐기려면 단단히 마음먹고 용기를 좀 내야 하는 것이 장삼이사의 처지. 사람들이 직접 출연하는 공연을 헐값에 진행할 수도 없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연명할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받은 인건비 이야기를 할 때는 농담이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 이런 표값쯤은 누구나 부담 없이 지출할 수 있을 때,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비가 줄어들어 문화 활동에 여윳돈을 쓸 여지가 생겨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르바이트 없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예술가들이 더 수준 높은 성취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책 읽기를 권한다. 적은 비용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 주는 경험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좀 더 나은 미래와 사회에 대한 꿈을 접지 않도록 든든히 받쳐 줄 것이라 믿는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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