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를 보았다. 대한민국 서민을 상대로 한 금융다단계 사기범 때려잡기가 큰 줄거리. <마스터>는 선악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기존 흥행공식을 답습하는 영화다. 여기에 조미료가 살짝 뿌려진다. 좋거나(김재명) 나쁜(진 회장) 놈 사이로 애매한 놈(박 장군)이 끼어든다. 온 네트워크 대표 진 회장(이병헌 역)의 아바타로 등장하는 박 장군(김우빈 역)의 변신과정이 영화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이는 직선적인 선악논리만으로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한 설정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애매하거나 착한 놈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박 장군의 역할은 다양한 의미를 시사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선 아니면 악이라는 편가르기의 역사를 되풀이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어진 남북분단의 흑역사는 좌익과 우익이라는 호칭으로 간판을 바꾼다.
미·소 냉전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에서 태어난 민초는 군사강대국들의 콧바람에 휩쓸려 불안한 일상을 영위해야만 했다. 여기에 이분법적 논리가 가세하여 역사는 좋은 놈과 나쁜 놈만이 득세하는 기이한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으로 돌변한다.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극단적 가치관을 양산한다. 세상에는 그들 말고도 황인종,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지배자 또는 피지배자임을 모두 거부하는 인간형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는 진영논리만이 날뛰는 권력의 투전판과 다를 바 없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단세포적 사고는 인식의 동맥경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역사란 선악과만을 취하려는 권력중독자의 의중대로 조작할 수 없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지능범죄 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 역)은 이런 대사를 던진다. 처칠을 태운 자동차가 신호위반을 하자 이를 제지한 교통경찰관이 등장한다고.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에 감명받은 처칠은 경시총감에게 교통경찰의 특진을 요청한다고. 하지만 경시총감은 당연한 업무처리를 한 해당 경찰의 특진은 불가하다고 처칠에게 말한다고.
영국 경찰의 사례를 통해서 한국의 현실을 비꼬는 김재명의 모습은 분명 애매한 놈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착한 놈이라는 일관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탄생한 가상의 인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복잡다단한 현실은 김재명이나 진 회장처럼 좋은 놈, 나쁜 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지난 주말,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에 다시 모였다. 3개월째 이어지는 촛불열기의 반대편에 자리 잡은 일부 위정자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외곽지대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관객이 존재한다. 이들은 불의에 승복하거나, 불의를 모른 척하거나, 불의와 갈등하거나, 불의 앞에서 촛불을 움켜쥐고 광장에 등장하기도 한다.
어느 누가 대한민국의 관객을 좋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으랴. 이제는 변화를 향한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이다. 정치란 냉정한 이성의 도마질과 타자를 향한 감성의 다독거림이 동시에 요구되는 공론장이다. 깨끗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모호한 변명만을 늘어놓는 내부자를 찾아내 바로잡기 위해서 긴장의 끈을 내려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봉호 문화평론가 <음악을 읽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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