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생활이 음악에 녹아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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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

[문화와 삶]생활이 음악에 녹아들 때

오랜 시간 음악인들과 어울려 살며 지키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이가 거의 없기에, 압도적으로 대다수가 다른 일을 한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한다. 가르칠 수 있는 재주가 있어 레슨이나 출강을 하면 다행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들춰내는 것이 듣는 사람이나 묻는 사람이나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굳이 묻지 않는 편이다. 어느 음악인에게 그런 질문을 한 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라는 답을 들은 이후였던 것 같다. 그게 10여년 전 일이다. 그때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을 꿈꾸는 이들이 시장에서 설 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획사에 들어가 아이돌이 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해 심사위원들의 구미에 맞는 음악을 하거나 모두 스스로를 수동형으로 만든다. ‘꿈’ 같은 고상한 단어를 실천에 옮기는 순간 그의 현실에는 고행의 길이 펼쳐진다. 그게 어디 음악인만의 문제겠냐만 아무튼 그렇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그런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되는 자리다. 상업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다른 시상식들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표결과 회의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한다. 음악적 성과가 우선 순위다. 2004년에 시작하여 15년째 개최되고 있다. 2017년 시상식은 2월28일 구로아트밸리에서 열렸다. 많은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라가 상을 받았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가수 이랑이 지난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트로피를 즉석 경매로 판매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 인사들을 들어내어도 올해는 유독 인상적인 소감들이 많았다. 심사위원 특별상을 공동 수상한 컴필레이션 앨범 <젠트리피케이션>의 프로듀서 황경하는 마포구청에 아현동 포장마차촌 철거집행정지를 요구했고, 가로수길의 곱창집을 둘러싼 건물주 리쌍과 세입자의 문제를 언급하며 리쌍에게 “평범한 우리 이웃의 삶을 짓밟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을 수상한 키라라는 “알바를 하는 편의점에 앉아서 만든 걸로 이렇게 (상을) 타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소원을 비는 걸로 마무리했다. “친구들이 자살을 안 했으면 좋겠다. 자살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원이라기엔 어쩌면 너무나 절박한 바람이자,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처해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나와 우리의 현실에 맞닿아 있는 수상소감의 백미는 이랑이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수상자로 올라갔을 때였다. 그녀는 자신의 1월, 2월 수입을 공개하며 받은 트로피를 즉석 경매에 부쳤다. 경매 시작가는 그녀의 월세 금액인 50만원. 이내 어느 관객이 50만원을 제시했고 트로피는 현금으로 교환됐다. 이랑은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가게 됐다”며 “다들 잘 먹고 잘 사세요. 저는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돈을 흔들며 퇴장했다. 돌발행동이었을까, 계획된 퍼포먼스였을까. 어느 쪽이든 이랑의 전례없는 행동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준다. 어떤 명예로도 현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음악인들은, 예술인들은 종종 곤궁한 현실을 회피하거나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활동을 지탱해나간다. ‘너희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가난은 감수해야지!’라는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맞춘다. 스스로의 현실을 드러낼 때, 듣는 이에게는 연대나 동정 같은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순간, 예술가를 둘러싼 ‘아우라’는 사라진다. 고달픈 생활인의 모습만이 남는다. 그렇기에 예술가들은 더더욱 상황을 갑갑해할 뿐, 공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과 생각을 놀라울 정도의 직설화법으로 노래해온 이랑은 ‘트로피 경매’를 통해 이런 딜레마를 극복했다. 그녀는 솔직했고 주저함이 없었다. 발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음악인의 아우라 같은 건, 트로피의 명예 같은 건, 매달 내야 하는 월세보다 소중하지 않다고. 이를 받아들이고 표현으로 승화시킬 때, 예술과 생활은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 순간 음악은 공허하고 막연한 하늘에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걸어갈 거라고. ‘신의 놀이’ 가사에서 자신이 되뇌는, 세상이 기다리는 좋은 이야기가 바로 거기에서 나올 거라고. 이랑의 짧은 시간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머문다. 나는 그녀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이랑의 세계를 곱씹고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