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생각꺼리'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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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재난 현장에서 피는 ‘연대의 꽃’ 콧등이 시큰해지며 울컥해진다. 얼마 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대구 주민을 위해 써달라며 119만원을 기부했다는 보도를 접하며 감동했다. 대구지역에서 확진자 숫자가 급증하자 광주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의 병상 중 절반을 대구 경증환자를 치료하는 데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두 지역의 골 깊은 지역감정과 그것이 빚은 역사적 참극을 생각하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경희대 학생 세 명이 뜻을 모아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돕자는 취지로 학내 커뮤니티에서 모금활동을 펼쳤는데, 일주일 만에 4600만원 정도 모았다고 한다. 애초 목표는 50만원. 뜻이 갸륵한 데다 말만 앞세우는 어른보다 낫다 싶었다. 전쟁은 예상할 수 있다. 설혹 선전포고 없이 일어나더라도 조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연이 일.. 더보기
[몸으로 말하기]맨발의 춤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맨발로 춤춘 최초의 무용가로 알려져 있다. 돌이켜보면 태초에 원시인들은 대지를 두 발로 딛고 자신을 땅과 결합시키면서 모두 맨발로 춤을 추었다. 발은 신체 중에서 땅과 만나는 가장 가까운 부분이며 발이 온몸을 받쳐줌으로써 인간은 서고 걷고 달릴 수 있다. 어른이 되면 두 발로 서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게 획득한 큰 사건이었는지 잊어버리지만, 갓난아이가 두 발로 서게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몇 번이나 쓰러지면서도 끝내 일어서는 순간 아이는 최초로 독립하는 인간이 된다. 바닥과 접해 있던 신체의 많은 부분이 땅과 분리되고 두 발이 다른 모양으로 땅과 재결합되는 과정은 네 발 유인원이 두 발 직립인간으로 진화한 과정의 축소판으로 볼 수도 있다. 이후 발은 신체의 가장 밑바닥에.. 더보기
[직설]문학을 ‘왜소’하게 만드는 자들 문학 내외에서 ‘문학’이 왜소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문단 내부에서 문학위기론은 종종 나오던 주제였지만 이 절박함이 일상까지 만연하게 퍼진 것은 몇 년 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터질 무렵부터로 기억한다.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내가 의아했던 지점이 있다. 앞서 일련의 고발들은 문학 내부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라는 요구였고, 관습으로 눙치고 넘겼던 수많은 범죄를 직시하자는 외침이었다. 그럼 그건 ‘왜소’해지는 것이 아니라 과잉되고 비대했던 허세를 걷어내고 본질을 살펴보는 작업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소’란 단어에 집착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 없이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일 것이다. 왜소하다는 말에서 굳이 권력까지 끄집어 이야기하는 것이 거창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더보기
[문화와 삶]코로나19 모든 게 취소되고 연기됐다. 한 공연 기획자는 사재를 털어넣어 통 크게 준비했던 공연을 취소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뒤죽박죽인 그 메시지에서 그가 울분의 낮술에 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홍보사들은 일제히 언론 시사회가 취소됐다는 메일을 발송했고 매주 듣는 수업도 긴급히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남의 처지를 안타까워할 때가 아니다. 겨우내 준비했던 글쓰기 개강을 미루기로 했다. 여기저기 잡혀 있던 강연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감염의 두려움은 마스크와 세정제로 어떻게든 달랠 수 있지만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는 예방책이 없다. 정부의 긴급 지원 대책도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남의 떡에 불과하다.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노는 일상이 위협받는다는 것처럼 두려운 상황이 없음을 새삼 깨.. 더보기
[직설]문학과 돈 1월 초부터 불거진 ‘이상문학상 사태’는 2월4일 문학사상사가 올해 수상자 발표를 하지 않고 계약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낸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학사상사는 공식 입장문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출판사가 저작권 양도 조항에 대해 몰랐을 리 만무하지만, 만에 하나 몰랐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에 대한 무지는 출판사의 기본적인 자격을 위협하는 몹시 심각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구가 저작권 갈취의 고의성을 덮기 위해 공식 입장문에 쓰인다는 사실은 돈 문제에 대한 무지가 문학계에서 양해될 만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문학상 사태’와 관련해 발표된 일부 글에서 문제의 핵심이 굴절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더보기
[기자칼럼]‘윤이형 절필’이 가리키는 것 1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매년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깜짝’ 발표하는 그곳에 소설가 윤이형이 있었다. 반가웠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 당시, 윤이형은 문단의 남성중심성과 폭력성, 그 안에서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였다. 그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문단의 구조와 가해자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문학계 성폭력의 방관자로서 폭력의 확대 재생산에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자각한 여성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서사를 쓸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그가 내놓은 문학적 답변이었다. 함께 살던 고양이.. 더보기
혐오를 넘어 환대의 길로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혐오가 병원체 감염을 예방하는 심리적 적응이라 말한 바 있다. 낯선 병원체에 감염되지 않으려고 혐오 정서가 발동하도록 진화했다는 뜻이다. 새삼스럽게 이를 입증할 실험을 찾아볼 필요도 없게 되었다. “전염병이 다시 드러낸 바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지자 우리 사회에 일어난 혐오증세를 개탄한 한 칼럼의 제목이다. 그 칼럼의 내용대로 전염병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혐오와 배척의 정서가 일어나면서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현상을 보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호모사피엔스의 미덕은 스스로 진화의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유년시절에는 혐오감이 생존과 번식을 가능케 했다면, 문명사회에서는 환대가 종의 멸종을 막고 더불어 사는 세계공동체를 이.. 더보기
[몸으로 말하기]안무가는 무대 위 요리사 20세기 초에 현대무용이 나타나기 전까지 무용작품에서 관객의 관심은 안무보다는 오로지 춤을 추는 무용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요리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안무와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 요리사와 안무가가 선택한 메뉴·주제는 이전부터 가져온 그들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때로는 재료가 내용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아무런 계획 없이 요리사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어떤 재료에 의해 내리는 결정처럼 안무가도 어떤 무용수나 음악, 이야기에 끌려 충동적 결정을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재료에 집착하는 요리사처럼 안무가는 적합한 무용수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간혹 산기슭에 난 하찮게 보이는 들풀로 멋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