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영화관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해 번화가와 관광지가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모든 게 취소되고 연기됐다. 한 공연 기획자는 사재를 털어넣어 통 크게 준비했던 공연을 취소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뒤죽박죽인 그 메시지에서 그가 울분의 낮술에 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홍보사들은 일제히 언론 시사회가 취소됐다는 메일을 발송했고 매주 듣는 수업도 긴급히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남의 처지를 안타까워할 때가 아니다. 겨우내 준비했던 글쓰기 개강을 미루기로 했다. 여기저기 잡혀 있던 강연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감염의 두려움은 마스크와 세정제로 어떻게든 달랠 수 있지만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는 예방책이 없다. 정부의 긴급 지원 대책도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남의 떡에 불과하다.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노는 일상이 위협받는다는 것처럼 두려운 상황이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일상이 위협받았던 작은 순간을 기억한다. 두렵기보다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해 여름, 태풍 볼라벤이 한국을 강타했다. 볼라벤이 직격하던 그날 밤, 나는 제주의 바닷가에 있었다. 글쓰는 사람에게는 좋은 경험이라고 허세를 떨면서 부둣가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우산이 뒤집혔고 우비도 산산조각이 났다. 조금만 더 가면 글을 쓰기 위한 경험은커녕 사망 체험을 할 것 같아 바로 들어왔다. 과연 자연의 힘은 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밤사이 숙소 지붕이 뜯겨나가고 사람 몸뚱이만 한 바위가 도로로 날아들었다. 전기는 물론 각종 시설 또한 무사할 리 없었다. 아침이 되자 통신도 끊겼다. 숙소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눈빛은 불안했고 호흡은 무거웠다. 완전한 고립이 주는 두려움의 공기 비슷한 것이 공간을 채웠다.
뭘 할 수 있을까 하다 전기가 끊기기 전까지 충전해뒀던 블루투스 스피커 생각이 났다. 여행 갈 때 스피커를 챙기는 게 일상적이지 않았던 때다. 마침 휴대폰 배터리도 충분했다. 전화와 스피커를 연결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기 전인지라, 휴대전화에 꽤 많은 음악이 저장돼 있었다. 음악을 틀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경쾌한 전주에 이어 김광석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타고 몸속으로 흘렀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순간 누그러지던 중압감을. 생기가 돌아오던 눈빛을. 비로소 활기를 찾던 호흡을. 그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 속 음식을 모두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그나마 잦아든 바람을 뚫고 슈퍼마켓으로 가 막걸리도 잔뜩 사 왔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그렇게 아침부터 술판을 벌였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낮 내내 취했다. 단절된 일상이 음악 한 줄기로 말미암아 다시 연결됐다. 암울할 뻔했던 여행의 하루를,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좀 다르게 추억하리라.
경제적·문화적으로 일상에 빗금이 간 지금, 다시 한번 그때 그 따뜻한 선율 같은 힘을 갈구하게 된다. 넘쳐나는 증오와 혐오에 지친 멘털을 추슬러줄 무언가를 찾게 된다. 아웃브레이크를 몰고 온 사교(邪敎)집단에 대한 증오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힘은 역으로 이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하루하루 초췌해지는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역병의 현장에서 방역복을 입은 채 앉아 쪽잠을 자는 보건당국 실무자들, 감염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구로 몰려드는 의료인들 말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드림즈 단장처럼 “할 일을 할 뿐”인 사람들의 사투에서 나는 한 줄기의 멜로디를 느낀다. 혐오와 아사리판에서 바람처럼 솟아나는 선율을 느낀다. 그들의 고된 얼굴에, 생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분투에 나는 지친 마음속 한 자리를 내주려 한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낙관으로 위기의 일상에 미약한 활기나마 새기려 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듣지 못했다. 이 글을 마친 후, 나는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얹을 생각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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