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기]안무가는 무대 위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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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몸으로 말하기]안무가는 무대 위 요리사

1988년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자화상’.


20세기 초에 현대무용이 나타나기 전까지 무용작품에서 관객의 관심은 안무보다는 오로지 춤을 추는 무용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요리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안무와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


요리사와 안무가가 선택한 메뉴·주제는 이전부터 가져온 그들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때로는 재료가 내용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아무런 계획 없이 요리사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어떤 재료에 의해 내리는 결정처럼 안무가도 어떤 무용수나 음악, 이야기에 끌려 충동적 결정을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재료에 집착하는 요리사처럼 안무가는 적합한 무용수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간혹 산기슭에 난 하찮게 보이는 들풀로 멋진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있듯이 어떤 안무가는 훈련 된 무용수가 아닌 일반인과 작업을 하여 기존의 개념을 무너뜨리는 작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재료를 다 갖추고 나면 다듬는다. 자신의 작품을 위한 무용수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안무가는 곳곳에서 모인 무용수들과 함께 신체를 단련하거나 즉흥을 나누면서 전체 멤버가 공통언어를 구사하게 될 때까지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함께 나눈다. 이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본의 부토는 집단생활을 하기도 한다.  


다음은 재료를 삶거나 데치거나 굽거나 또는 날것의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조리 과정이다. 안무가는 즉흥과 동작탐구를 통해 나온 움직임을 연결, 해체, 재배치해 무용수가 가진 개성을 더 강화시키는 동시에 무용수들의 몸에 그 새로운 움직임들의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프랑스어로 레페티시옹이라 불리는 반복적 훈련과정을 거친다.


요리는 어울리는 그릇을 만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스펙터클보다 퍼포먼스의 개념을 공유하는 대다수의 현대 안무가들은 자신의 안무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시각효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지만 피나 바우슈 같은 경우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데 압도적인 무대미술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요리는 먹는 이의 입으로 들어가서 미각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들과 만나 그 참맛을 느끼게 한다. 안무 또한 공연을 통해 관객의 지성과 감각으로 흡수된다. 물론 어떤 요리는 소화에 시간이 걸리듯이 안무 또한 납득이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비평에는 관심이 없다고? 요리사가 주방 뒤에서 먹는 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듯 99.9%의 안무가도 객석 구석에 앉아 관객들의 반응에 마음을 졸인다.


<남정호 | 현대무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