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도 눈치챈 독자들이 많겠지만, 이윤석, 장동민 두 명은 올해 꽤 큰 설화(舌禍)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다. 올해 대중문화계에서는 유독 ‘말’과 ‘글’로 인해 일어났던 논란이 많았다. 연초의 이태임과 예원의 욕설 파문, 송민호와 유희열의 여성 비하 발언들, 아이유의 ‘제제’ 가사 논란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세밑을 보내면서 유독 이윤석과 장동민을 떠올린 것은 이 둘의 발언이야말로 2015년을 잘 대변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의 발언은 유빙 한 조각을 건드렸을 뿐이지만 여기서 시작된 논쟁들은 수면 아래에 있던 거대한 빙산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윤석의 발언은 지난 9일 TV조선의 <강적들>에서 나왔다. 여기서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을 가리키면서 ‘전라도당’ ‘친노당’ 느낌이 있다고 발언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장동민은 지난 4월 MBC의 <무한도전> 식스맨 후보에 올라 경쟁을 벌이던 와중에 과거 팟캐스트에서 했던 과격한 발언들이 재조명되어 충격을 줬다. 여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들은 물론 글로 옮기기 어려운 여성 대상 욕설들이 있었고, 삼풍백화점 생존자에 대한 희화화와 군대 폭력의 미화도 포함되어 있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윤석의 발언 내용 자체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전후 맥락상 야당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변호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논쟁거리가 된 것은 표현의 자유 문제였다. 과연 이 발언이 발화자의 방송 하차까지 요구할 만큼 금도를 벗어난 발언인가에 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반면 장동민 발언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지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꽤 지나간 과거의 일이었다는 점, 팟캐스트 방송 속 발언이었다는 점, 개그의 일부로 튀어나온 발언이었다는 점 등이 옹호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의견들은 여성 혐오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다시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두 발언에 이어진 논쟁들은 모두 ‘표현의 자유’ 담론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이런 표현을 허용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자체를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형식적 차원에서 당위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나치즘을 표현의 자유 영역 밖으로 밀어내고 미국에서 공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금기시하듯, 이 권리가 시공간적 맥락을 초월하는 보편적 권리일 수는 없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연약한 권리일 수밖에 없고, 무엇이 ‘약한 고리’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는 표현의 자유 논쟁을 늘 미궁으로 몰아넣기 마련이다.
장동민_경향DB
비유하자면, 이윤석의 발언에는 ‘정파성’이라는 고리가, 장동민의 발언에는 ‘혐오’라는 고리가 걸려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파성(의 과잉)’과 ‘(약자에 대한) 혐오’는 2015년 대한민국을 잘 요약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치인 팬덤, 나아가 정파·정치인에 대한 종교적 신격화를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해였다. 타 정파에 대한 증오와 경멸은 사이비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과 겹쳐졌다. 여성, 노동자,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과 경멸은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불황의 여파이든 세계적 보수화의 결과이든, 올해만큼 혐오가 거침없이 표현되었던 시기도 없었던 듯하다. 이윤석과 장동민의 발언이 논쟁적이었던 이유는 각각 이 고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리는 표현의 자유의 정당성을 테스트한다.
감히 판정하건대, 과잉 정파성이 표현의 자유를 압도할 수는 없다. 정치 자체가 논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약자에 대한 혐오는 표현의 자유를 흔들 수 있는 약한 고리이다. 안 그래도 대항무기가 없는 소수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권리의 범주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이윤석과 장동민 모두 적절치 않은 발언을 했고 둘 다 공개사과를 했다. 하지만 구별하자면, 장동민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도 보호될 수 없다는 뜻이다. 팟캐스트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하면 안 되는 발언이었고, 개그로 정당화될 수도 없는 표현이었다. 이윤석의 발언이 공론을 통해 비판받고 퇴출되어야 할 발언이라면, 장동민의 발언은 제도적으로 금지되어야 할 발언이다. 약자 혐오는 유희가 아니라 폭력이고 선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흑인 유학생의 얼굴을 연탄에 비유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무례한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이런 말들, 웃자고 하는 얘기라며 적당히 넘어가다보니 표현의 자유는 필요한 경계를 자꾸 잃는다. 하지만 혐오 신드롬이 워낙 강했던 2015년의 끄트머리였기 때문이었을까? 기이하게도 김무성 발언은 이윤석, 장동민의 발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잊혀졌다. 그러고보니 2015년은 정치인의 발언이 개그맨의 발언보다 더 가벼이 여겨진 해이기도 했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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