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송곳’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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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송곳’이 된다는 것

<송곳>은 텔레비전 드라마로는 매우 드물게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비정규직의 애환과 부당해고 등의 불안한 노동현실을 근접해서 포착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구체적인 단면들을 상세하게 재현한 바 있다.

중간 관리자로 자신의 몫이 아닐 수 있는 과업을 추진하며 회사의 집요한 압박과 방해를 돌파하려 애쓰고 번민하는 이수인 과장, 조력자로서 그에게 조언해주고 냉정한 질책도 마다않는 구고신 소장, 극중에서 단순한 기능적인 장치 이상의 역할을 보여준 수많은 캐릭터들의 호연 등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이 텍스트는 통상적으로 TV 드라마가 보여주지 않거나 기피하는 ‘불편한’ 주제를 매우 세밀하게 다루고, 수용자들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과 현실 환기의 효과를 제공했다. 장그래라는 한 인턴 사원의 분투기를 사내의 역학을 중심으로 매우 꼼꼼하게 다루되 ‘판타지’적인 설정을 시도했던 <미생>에 비해, <송곳>은 우리 시대 노동의 불안하고 스산한 풍경에 한 발 더 다가서며, 심화된 리얼리티의 재현과 함께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내기도 했다.

매사에 진중하고 사려 깊은 원칙주의자인 이수인 과장이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순응하지 않고, 어쩌면 손쉬울 타협을 마다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리며, 휘몰아치듯 그가 겪게 되는 험난한 분투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필자도 적지 않은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필자가 저런 상황과 대면하게 된다면, 이수인이 택하게 된 행로를 과연 선뜻 선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뇌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또한 작중에서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낸 주체로, 고문후유증의 악몽과 신부전증을 앓으면서도 결기를 잃지 않고 분투하는 구고신 소장의 모습은 적지 않은 공명과 더불어 지난날의 기억들을 소환하게도 해준다.



JTBC 주말극 ‘송곳’의 현장공개가 진행된 가운데 지현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_경향DB



주지하다시피 이 드라마는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노동하는 주체들이 부당한 간섭과 압박에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깨달아가고 행동하면서 어떠한 고뇌와 걸림돌 그리고 상황적인 위기들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세밀하게 풀어냈다. 이 텍스트는 또한 상당한 사회적인 함의를 제기하는 웹툰과 드라마의 기획이, 생산자의 의지와 역량과 만나게 될 때, 어떤 대중적인 반향과 일깨움을 줄 수 있는지를 시사해준 구체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송곳>은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특정한 메시지를 앞세우며 인위적인 설정이나 희망에 찬 결말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 작품은 노동이 내몰리고,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행동이 오히려 공격받는 사안이 되기도 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행사가 위협받고 순치되는 우리의 현실 속 뒤틀린 사회적 상황들을 되새김질하게 해준다. 드라마의 프레임 밖으로 나와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을 돌아보면,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으로 이른바 노동 ‘개혁’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노동하는 주체들의 권리와 생존권이 더 불안정해지고 위태로워질 수 있는 법안을 완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공당의 대표가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는 벌써 넘었을 것이라는 식의 매우 단선적이고 자극적인 발화를 거리낌 없이 제기한 바도 있다. 다수의 제도언론은 수많은 노동하는 이들이 집합행동을 보일 때, 그러한 저항의 근인(根因)과 사회경제적 맥락성이나 승자독식의 문제점을 치밀하게 진단하기보다는, 탈법과 폭력 프레임만으로 예단하고, 부정적인 덧칠하기와 배제의 관성을 보여줄 뿐이다.

이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노동의 위태로운 현실과 그늘은 여전히 이어지고, 곳곳에서 ‘음향과 분노’를 발하고 있다.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이들의 외침을, 그리고 정당한 요구와 우려를, 서 있는 곳이 조금 다르다고 하여, 과연 남의 일이라고 관망만 할 수 있을까? 노조는 태생적으로 전투적이며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쉽게 관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돌아서도 되는 걸까? 최근의 사안들을 접하면서 <송곳>이 준 적지 않은 기억할 만한 대사들 중에 다음의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다수 언론과 정치인들의 의도된 강변과 편향된 인식을 넘어서, 노동의 구성원들이 처한 현실을 상식의 선에서 곱씹고 재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함께, 결코 적지 않은 이수인들과 구고신들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음을 기억하자. 각자의 몫과 고민이 있으되, 변화를 소망하는 꿈틀거림을 외면하지 않는 역능과 감응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곱씹어보자.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