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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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블라블라/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저 들에 불을 놓아 한 십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 공연장에서 ‘윈디시티’라는 밴드와 함께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경쾌한 레게 리듬이 나를 무대 옆으로 이끌었고 기분 좋게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 그런데, 노래 사이에 드럼 연주자가 느닷없이 “농사를 지어, 농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랐다. 그 얼마 뒤에 다시 그를 만났다. 나는 그가 정말 농사를 짓는가 물었고, 그는 충청도 어디선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놀랐고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요즘 도연명의 시를 읽고 있다. 그는 41세에 귀향하여 남은 생을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 귀향, 귀촌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다. 세상의 허명에 연연하지 않고, 시장에서 이익을 구하지 않고 흙 가까운 곳에서 소박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 더보기
어떻게 살 것인가 何生平生問(하생평생문)何人不如此(하인불여차)어떻게 살 것인가, 평생 묻네누군들 이러하지 않겠는가 나는 거의 전통사회의 시골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전기도 없고 일상에서 화폐 유통도 드물던 시대. 이후 급속히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청년기에 도시로 나왔다. 그래서, 집 전화 신청을 하고 2년여를 기다려야 개통되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과 무선 네트워크, 다시 탈현금의 초현대에까지 왔다. 또, 강고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풍미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하나도 없는 시대에까지 왔다. 고등학교 때 나하고 가까웠던 한 친구는 고향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나이 들어 거기 면장을 했고, 퇴직을 해서 지금도 그 고향에 살고 있다. 그도 나와 같은 세상의 급속한 변화와 그 혼란을 피할 수 없었.. 더보기
내 마음 어디 있을까 不求利之生(불구리지생) /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삶吾心何處在(오심하처재) 其在彼風內(기재피풍내)其風何處去(기풍하처거) 吾不欲知之(오불욕지지)내 마음 어디 있을까, 그것 저 바람 안에 있지그 바람 어디로 가나, 나 그것 알고 싶지 않다네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런데 왜 그런 삶을 살지 않지? 그건 욕망 때문이지.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내 안 그리고 바깥의 자극과 선동으로부터 오지. 어느 쪽이 강력할까? 물론, 바깥의… 산업 문명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욕망 자극과 선동으로 연명하고 확장한다. 어떤 연유로든 산업 문명이 와해되고 필수 생산과 필수 소비만 가능한 세계가 도래한다면? 이렇게 욕망이 확장된 인간들은 견디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산업의 그물망 바깥.. 더보기
아왈처왈 我曰, 半讀千字 半開心門(아왈, 반독천자 반개심문)妻曰, 讀五百字 風增二倍(처왈, 독오백자 풍증이배)내가 말하기를, 천자문 반을 읽으니 마음의 문이 반이 열리네처가 말하기를, 오백자 읽더니 뻥이 두 배로 늘었네 코로나19가 얼마간 잦아들어 골라낸 글이다. 한문 공부를 하겠다고 천자문을 펜으로 쓰기 시작했고, 붓을 잡거나 한시를 쓰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그냥 한문을 좀 써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한시가 나오게 되었다.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천자문 반쯤 쓰고 그걸로 한시를 쓰리라 작정한 바는 없었다는 말이다. 정말 그냥. 장난 삼아…. 지금의 한시도 뭐 대단히 깊어진 바 없지만 저런 농담도 할 수 있어서 그 재미로 또 주욱 써 왔다. 그런데 2020년 봄이 되어 세상이 심각하게 달.. 더보기
강촌농무…파아란 빛 코로나19와 뉴 노멀.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들 말한다. 그건, 물리적 거리 두기와 감염 위험의 상존을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나도 매사에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 수도 있다.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의 연속적인 공격 말이다. 자연계에서 인간을 특별히 의미부여하고 그들의 이제까지의 삶의 양식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인간의 삶과 문명은 생각하기 끔찍하다. 인간은 더 성찰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보다 염치없고 더 야만적이어서는 안된다. 그 성찰.. 더보기
강촌농무…숨어 버릴까 ‘뉴 노멀’이라고 한다. 이걸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코로나19 사태 70여일. 대개의 국경이 봉쇄되고 대개의 시민들이 집 안에 격리되고 그간의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사회적 교류가 중단되었다. 문화 예술, 철학…. 세계의 모든 상상력과 사변들이 깊은 침묵에 빠졌다. 언제 복구될 것인가?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보다 적은 타격으로 짧은 터널의 끝을 보는 듯하지만 어떻게 다시 악화될지 알 수 없다고 하고, 전 세계 의료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인류는 참담한 지경에 빠져들었다. 상황이 얼마간 호전될 수는 있어도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산업 문명의 분기점일까? 무슨 깊은 성찰과 대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저 지난 세기의 국경 안에 갇힌 무력한 시.. 더보기
새 벼루를 얻었네 廣硯滿充磨墨水(광연만충마묵수) 小舟解繩出何海(소주해승출하해)幼年野端其淺海(유년야단기천해) 乘舟仰天托風乎(승주앙천탁풍호) 넓은 벼루에 먹물 갈아 가득 채우고작은 배 줄 풀어 어느 바다로 나갈거나어린 시절 들판 끝 그 얕은 바다배에 올라 하늘 바라보며 바람에 의탁할거나 산업문명은 인간을 집단화하고 조직화한다. 공장, 공단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그리고 사무실들, 문화시설들…. 그게 도시다. 거기서 벗어난 인간은 산업 인력이 아니거나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다. 문명은 개인이 혼자 있을 때에도 모바일이든 컴퓨터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라고 한다. 무선 통신의 첨단 미디어와 플랫폼들을 통해 대량 소비를 위한 집단 취향을 만들어내고 끝없이 소비하고 생산하게 한다. 산업문명에서 독립적인 개인과 자유인은 없다. 집단화.. 더보기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 勿出夕江邊(물출석강변) 傷心月與風(상심월여풍)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달빛 바람에 마음 다쳐요 코로나19 사태가 한참인데 너무 한가한 얘기일까, 언젠가 광나루 건너편 물가에서 달 떠오는 강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녁 강변은 더없이 한적하고 스산한 바람이 키 큰 갈대 숲을 흔들고 있었다. 그 너머 멀리로 인간의 거처 시멘트 건축물들이 공제선을 형성하고 있고. 내가 여기에 왜 나와 있을까, 나는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사유체일까, 그 존재감은 왜 이리 쓸쓸할까…. 그 뒤, 다시는 저녁 강변에 나가지 않았다. 요즘 거리에 사람이 줄고 특히 노인들 만나기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도 가능하면 집 안에 머물고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도 미룬다. 하여, 처음 등장한 용어 ‘사회적 거리 두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