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세이브 아워 시네마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인가?” 답은 다양하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창, 협업, 종합예술, 상품 등등. 누군가는 “영화는 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컵을 감독이라고 한다면, 어떤 컵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된다는 의미다. 각자의 답이 이처럼 달라지는 건, 영화는 물론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날아간 스카프다.” 학생 N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토드 헤인즈의 (2002)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주인공 케이시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2층집 지붕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은 더글러스 서크의 (1955)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천국.. 더보기 [몸으로 말하기]물구나무 서서, 관념의 시선서 자유로워지기 2009년, 이 땅에서 무용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지쳐갈 무렵, EBS 에서 한 달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편의 큐레이터를 제안해왔다.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로 ‘상아 해안(아이보리 코스트)’을 뜻하며, ‘아프리카의 기적’ ‘아프리카의 꿈’으로 불리는 나라이다. 66개 종족의 춤과 음악 등 아프리카 최고의 예술혼과 오랜 세월 그들의 삶 속에서 깊이 숨 쉬는 정령신앙은 호기심과 매력으로 다가왔다. 코트디부아르를 미지의 세계로만 생각했기에 수도 아비장의 고층빌딩과 시원스레 뻗은 도로들을 마주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카오 생산 세계 1위의 농장, 블룰레 마을의 신성한 마스크 바 춤, 리듬감의 춤 ‘테마테’, 삶의 터전 ‘방코 빨래터’, 전통신앙인 부두교, 춤과 음악을 담아내는 사.. 더보기 [여적]저항가수 2010년 2월9일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 1960년대 민권운동을 기리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은발의 70세 가수 존 바에즈가 통기타를 메고 무대에 섰다. 한국에서도 ‘우리 승리하리라’로 번역돼 불린 대표적인 저항곡 ‘We shall overcome’이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 그날에. 참맘으로 나는 믿네. 우리 승리하리라~)” 맨 앞줄에 앉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200여명의 청중이 어느새 노래를 따라부르는 장면이 인상 .. 더보기 각자도생의 무간지옥에서 구원받는 법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일단, 오늘을 지배하는 세력과 연배는 비슷하지만 그 어떤 권력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누리지도 않았다는 다소 낭만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그다음에는 좀 더 이타적이고 더욱 정의로워지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는 알량한 자존심 덕이다. 물론 어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정의의 표본에 이른 분들과 비교하겠느냐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덧 나를 포함해 우리 세대가 ‘척결’의 대상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좋은 말로 하면 세대교체가 되겠지만, 나는 이 말로는 지금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본다. 거칠게 파고들어온 칼날은 페미니즘이었다. 권력의 상층부를 이루는 대다수가 남성이었으니, 권력에 대한 도전은 남성에 대한 단죄와 동의어였다. 다음에 몰아친 바.. 더보기 [노래의 탄생]동물원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최근 ‘뉴트로’ 바람을 타고 자주 소환되는 그룹 중 하나는 동물원이다. tvN 에서 그들의 대표곡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가 전파를 탔다. 극중 본과 실습생인 쌍둥이 남매가 동물원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고 해 99학번 교수 이익준(조정석)을 놀라게 했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 발 디딜 틈 없는 그곳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땐/ 넌 놀란 모습으로 음음음/ 너에게 다가가려 할 때에 난 누군가의 발을 밟았기에/ 커다란 웃음으로 미안하다 말해야 했었지/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 밀려오는 추억으로 우린 쉽게 지쳐갔지.” 1990년 7월 발표한 그룹 동물원의 3집 수록곡이다. 지금도 병원을 운영 중인 소아정신과 의사 김창기가.. 더보기 이해연 ‘단장의 미아리고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래는 한두 곡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단장(斷腸)’은 말 그대로 장을 끊어내는 듯한 고통을 말한다. 노랫말을 쓴 원로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 다른 예명 진방남)은 전쟁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었다. 1950년 9월 초, 피란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반야월의 처 윤경분은 어린 딸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 서울 미아리고개를 막 넘었을 때 허기를 견디지 못한 어린 딸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서 숨을 거뒀다. 정신없이 돌무더기를 만들어 딸의 시신을 묻어야 했다. 남편 반야월과 재회한 뒤 미아리고개에 와서 딸의 무덤을 찾았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눈물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 더보기 어떻게 살 것인가 何生平生問(하생평생문)何人不如此(하인불여차)어떻게 살 것인가, 평생 묻네누군들 이러하지 않겠는가 나는 거의 전통사회의 시골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전기도 없고 일상에서 화폐 유통도 드물던 시대. 이후 급속히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청년기에 도시로 나왔다. 그래서, 집 전화 신청을 하고 2년여를 기다려야 개통되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과 무선 네트워크, 다시 탈현금의 초현대에까지 왔다. 또, 강고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풍미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하나도 없는 시대에까지 왔다. 고등학교 때 나하고 가까웠던 한 친구는 고향에서 공무원이 되었고, 나이 들어 거기 면장을 했고, 퇴직을 해서 지금도 그 고향에 살고 있다. 그도 나와 같은 세상의 급속한 변화와 그 혼란을 피할 수 없었.. 더보기 [문화와 삶]흑인 음악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서 흑인 음악 비중은 절대적이다. 힙합은 그 자체로 과거 록이 차지하던 위상, 즉 10대와 20대 문화의 일부를 대변한다. K팝을 말할 때 힙합 비트를 빼놓을 수 없고, 음원 차트에서 강세인 발라드 음악도 솔과 리듬앤드블루스(R&B)를 근간으로 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록이 음악 애호가들의 주류 장르였다. 록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었으며 당시 빌보드에서 득세하던 솔과 R&B는 ‘연탄’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이렇게 배척받던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던 곳이 이태원의 전설적인 클럽 ‘문나이트’다. 남들이 록을 들을 때 최신 서구 댄스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곳이다. 애초에 내국인이 아니라 미군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였기에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이곳..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