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대중문화블로그TV POP!
본문 바로가기

[숨]서로 외롭지 않은 출판의 방식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그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데 있어 작가의 역할은 적극적, 독자의 역할은 수동적이다. 출판사와 인쇄소와 도매상과 서점과 물류사의 손길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전해지면, 독자는 그때부터 리뷰를 쓴다든가 작가를 만나 독서모임을 한다든가 하고, 그 이전까지는 그저 ‘이 작가의 다음 책은 어떤 것이고 언제쯤 나올까’ 궁금해할 뿐이다. 몇 개월 전 모 작가에게 “저, 우리가 독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메일링 서비스 같은 것을요” 하는 제안을 받았다. 구독자를 모으고 그들에게 직접 글을 보내주는 구독서비스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어, 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하고는 왠지 둘이서만 하기엔 민망해서 주변 몇몇 작가들에게 “저…” 하고 연.. 더보기
[몸으로 말하기]공간이 주는 진실의 시간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은 저마다 묵직한 매력을 품고 있다. 쉽게 안을 보여주지 않고 방문객의 애를 태우기도 한다. 가끔은 외부와 내부 공간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겉은 돌로 지어져 고풍스럽고 비라도 촉촉이 내리면 감성을 한껏 돋워주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을 감춘 채 현대식으로 개조한 건물들이 적지 않다. 역사와 전통을 내세운 고색창연한 공연장도 예외는 아니다. 개·보수된 현대감각의 조우는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손색이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200여개의 국공립 공연장이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언택트 사회를 살다보니, 유학 시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공간들과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요즘들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1994년 당시 파.. 더보기
러시아 민요 ‘스텐카 라친’ 유월은 덩굴장미의 계절이지만 우리에겐 전쟁과 혁명으로 더 익숙하다. 오래전 최루가스로 가득한 도시를 찾았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그때도 6월이었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강 물 위에/ 스텐카 라친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페르시아 영화의 꿈/ 다시 찾은 공주의/ 웃음 띤 그 입술에/ 노랫소리 드높다/ 동편 저쪽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우리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에/ 볼가강물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 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스텐카 라친(1630~1671)은 러시아 남동쪽 국경지방에서 부유한 카자크 출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수탈을 일삼는 러시아 군주와 영주들에게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전봉준이 그랬듯이 1만여명의 농민군을 규합하여 볼가강을 따라.. 더보기
우리가 닮아야 할 진정한 지도자 “흔히 말하듯, 지도자란 타인을 돕기 위해 안전지대를 벗어난 사람이다.” 죽음을 앞두고 쓴, 성공한 한 과학자의 파란만장한 자서전에서 만난 인상 깊은 구절이다. 이 한마디에 지은이 바레스의 삶이 오롯이 응축되어 있었다. 가난했다.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었으나 아버지는 일보다 친구와 도박을 하거나 카드 게임하는 걸 더 즐겼다. 어머니는 4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어머니한테서 공부머리를 물려받아 학업성적은 늘 우수했다. 아버지는 중독성향을 물려주었으나, 도박이 아니라 ‘과학과 연구’에 대한 중독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특징을 일러 연구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열정과 인내와 끈기, 그리고 회복력과 탄력성이라 했다. 갖은 난관을 이겨내고 MIT에 들어갔다. 당시 MIT 전체 학생 .. 더보기
신형원 ‘개똥벌레’ 개똥벌레는 흔히 반딧불이로 더 잘 알려진 곤충이다. 6월이면 성충이 되어 주로 밤에 활동한다. 어린 시절에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한자어를 배우면서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책을 볼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도 했다. 신형원이 부른 ‘개똥벌레’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차고 넘친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 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1984년 발표된 이 노래는 ‘홀로 아리랑’의 작가 한돌이 어린이를 위한 연극에 쓰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제작에 차질이 생겨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마치 한 편의 단편동화를 읽는 듯한.. 더보기
[숨]‘소리’를 잃은 음악 서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올해는 ‘베토벤의 해’가 될 예정이었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연초부터 베토벤을 기념하려는 공연 일정들이 쏟아져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상반기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취소됐고, 많은 이들이 지난 과거보다는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태가 조금 진정세를 타자 잠시 사그라들었던 베토벤 250주년이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베토벤이라니. 애초에 서구 클래식이 대단히 오래된 음악이긴 하지만 요즘은 특히 더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베토벤의 음악은 서양음악의 핵심적인 ‘정전’(canon)으로 여겨지며 서구 음악인들에게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물론 대단히 상징적인 위치에 자리한 만큼 냉정한 비판의 대상.. 더보기
[여적]디즈니 성소수자 애니 백설공주, 피노키오, 인어공주, 겨울왕국, 주토피아. 누구나 줄거리를 아는 디즈니의 대표 애니메이션들이다. 디즈니는 1937년 첫 장편 를 시작으로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기발한 상상력,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화려한 그림체는 전 세계 어린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티 디즈니’ 운동도 힘을 얻었다. 시대를 좇아가지 못하는 낡은 가치관이 문제였다. 비현실적 몸매의 여린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 이야기’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디즈니도 결국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인기를 유지하려면 캐릭터의 다양화를 통해 시대에 맞는 가치관을 반영하는 노력이 불가피했다.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인종적 편견을 허무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1992년 에서 처.. 더보기
[기자칼럼]컨트리 뮤직과 트로트 미국의 컨트리 뮤직은 흔히 한국의 트로트와 비교된다. 한국교원대 손민정 교수는 에서 “미국의 촌뜨기 음악 컨트리 뮤직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의 심장을 상징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정서, 가장 애국적인 노래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에는 ‘컨트리 뮤직 LP판을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떠나간 애인, 잃어버린 트럭, 일자리, 개가 모두 돌아온다는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고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트로트와 컨트리는 닮은 점이 많다. 최근 몇년 사이 컨트리 뮤직계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이가 있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다. 이 32세 여성 컨트리 가수는 한국에선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미어워드 컨트리 부문에서 수차례 수상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실력 이외의 것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