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무간지옥에서 구원받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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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

각자도생의 무간지옥에서 구원받는 법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일단, 오늘을 지배하는 세력과 연배는 비슷하지만 그 어떤 권력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누리지도 않았다는 다소 낭만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그다음에는 좀 더 이타적이고 더욱 정의로워지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는 알량한 자존심 덕이다. 물론 어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정의의 표본에 이른 분들과 비교하겠느냐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덧 나를 포함해 우리 세대가 ‘척결’의 대상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좋은 말로 하면 세대교체가 되겠지만, 나는 이 말로는 지금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본다. 거칠게 파고들어온 칼날은 페미니즘이었다. 권력의 상층부를 이루는 대다수가 남성이었으니, 권력에 대한 도전은 남성에 대한 단죄와 동의어였다. 다음에 몰아친 바람은 공정성이었다. 민주와 정의를 외친 세대가 과연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공정했느냐고 매섭게 질타했다.

 

이 거친 공세를 지켜보면서 나 정도면 괜찮다는 말을 더는 할 수 없겠구나 자인하는데, 권석천이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쐐기를 박았다.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다.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욕망의 관성에 따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려 한다. 소심할 뿐인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함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하지 않았느냐 묻는다. 젊은 날 품었던 패기와 이상대로 살아온 듯이 너스레를 떠는 기성세대의 민낯을 까발렸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 저널리스트는 동년배에게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의 자리에 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동의한다.

 

불편할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과거의 화려한 이력이 오늘의 빛나는 삶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영화 <시크릿 세탁소>의 대사대로 분명히 처음에는 세상을 구원하려 했으나, 나중에는 그냥 나를 구원하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지은이가 너무 결벽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시비 걸지 말자. 그 자신이 기자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부끄러운 일도 솔직히 고백하고 반성하고 있으니까.

 

권석천은 다음세대가 겪는 고민과 이율배반적 사고를 잘 이해한다. 사회는 벽을 높이 쌓아놓고 이를 넘어서는 사람만 ‘간택’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왜 그 자리에 벽이 서 있는지 문제 삼지 않는다. 벽을 넘어선 이는 넘지 못한 이를 타박한다. 게을러서, 신념이 약해서, 능력이 없어서 못 넘은 것 아니냐고. 벽을 에둘러 새로운 길을 뚫으려면 공정성을 내세워 막는다. 여러 잣대를 내세워 구별하고 차별한다. 혐오가 넘쳐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권석천의 말대로 “개인적 자아는 과잉발달하지만 사회적 자아는 증발”했다. 이 놀라운 이중성은 “울타리 안 평등에는 민감하지만 울타리 밖 비참에는 무관심”하다는 박권일의 통렬한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권석천이 다음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절절하다. “너 자신을 착취하라고 요구하는 시대에 함께 연대해 맞서”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이 정신이 없다면 오늘 벌어지고 있는 세대착취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에 합류한 다음세대의 고민도 만만찮다. 이제 안온한 삶이 가능한 터전을 확보했는데, 구조악과 마주칠 때 과연 싸우겠다고 결단 내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들을 가장 강력한 유혹의 말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일 터다. 기득권의 펜타곤을 지켜주는 힘은 작은 악이다. 일상에서 이것들과 맞서 싸울 때 그 견고한 성채에 금이 가는 법이다. 권석천은 패배하지 않을 거라 말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이 싸움에 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패배와 실패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단다. 패배가 상대에게 진 것이라면, 실패는 나한테 진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졌다면 실패한 게 아니다. 패배한 것”일 뿐이다. 다음세대가 동의해주길 바랄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굳이 황금률을 정하자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면 될 성싶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태도만으로 이 천박한 각자도생의 무간지옥에서 우리는 구원될지도 모른다. 권석천의 말대로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겠지만 말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