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의 전제조건은 ‘역사’다. 그러나 학교 국사교육은 갈수록 허술해지는 듯하다. 얼마 전 TV뉴스에서 10~30대 학생·일반인 82명을 대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과 관련된 조사를 한 결과 어떤 학생은 ‘야스쿠니 신사’를 ‘젠틀맨(신사)’이라 답했고, ‘3·1절’을 모르는 학생이 응답자의 절반에 달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대입 수능필수과목이던 국사가 2005년 수능선택과목으로 편입된 후 더욱 심해졌다. 고교생들은 달달 외워야 하는 국사과목을 피한다. 그나마 국사를 선택한 학생도 2005년 27.7%에서 매년 줄어 지난해는 6.9%에 그쳤다.
지난 11일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하 무도)>이 내보낸 한국사 특강은 웃음과 눈물의 방송이었다. 유재석 하하 길 등 6명의 <무도> 멤버들은 ‘TV특강’에 앞서 저명한 강사들에게 역사강의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 30명에게 한국사 일부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었다. 유재석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남긴 편지를 낭독할 때는 출연진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가슴도 찡했을 터이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죽으라. 대의에 따라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며 아들을 격려한 어머니의 비장한 편지는 그 자체가 사료였다. 예능프로그램이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1880~1946)의 철학을 실천한 셈이다.
MBC 무한도전
그동안 국내에선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등이 불거질 때마다 부실한 국사교육을 우려하는 여론이 일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현장에선 이를 외면해온 게 사실이다. 정부가 고교 선택과목이던 한국사를 지난해에 필수과목으로 되돌렸지만 집중이수제이고, 서울대만 빼곤 수능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국사교육의 실효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 고교는 주 5시간 미국사를 가르치며, 대입시의 필수과목이다. 독일은 하루 3시간씩 주 3일을 국사교육에 할애한다고 한다. 일본도 실제로는 모든 고교에서 필수과목이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독립투사들이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나 매국노 이완용을 모르는 청소년이 국가의 주역으로 나설 미래는 걱정스럽다. TV 예능프로의 한국사 특강을 보며 고사(枯死)하는 역사교육이 생각나 착잡해진다.
유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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