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ㆍ따뜻한 리더십으로 치유·가족 열풍 등 ‘착한 예능’ 이끌어
ㆍ‘힐링캠프’ 최영인·‘개콘’ 서수민 등 스타 반열
지난 14일 제25회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사람은 KBS2 <개그 콘서트>의 서수민 PD(43)였다. ‘올해의 PD상’은 그동안 <PD수첩> 등 시사보도나 다큐멘터리 PD가 받아왔다. 예능 프로그램 PD가 ‘올해의 PD상’을 받은 것은 서 PD가 최초였다. 그만큼 미디어에서 예능의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요즘 잘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의 PD는 대부분 여성이다.
엠넷 <슈퍼스타 K> 시즌2~4의 김태은 PD(33)에 이어 <슈퍼스타 K5>를 맡은 이선영 PD(35), MBC <쇼! 음악중심>을 지휘하는 선혜윤 PD(35), 시험프로그램(파일럿 프로그램) MBC <남자가 혼자 살 때>를 성공시켜 정규편성된 <나 혼자 산다>의 이지선 PD(34),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황교진 PD(36)도 여성이다. 배우 김희선을 MC로 내세운 토크쇼 SBS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의 신효정 PD(32), 배우 이선균·장미란 선수 등이 국토대장정을 떠나 화제를 모은 SBS <행진>의 서혜진 PD(43)…. 치유열풍을 몰고 온 SBS <힐링캠프> 최영인 책임PD(46)는 이미 서수민 PD와 마찬가지로 스타 PD다. 이외에도 KBS2 <안녕하세요>의 이예지 PD(34), KBS2 <인간의 조건>의 신미진 PD(35) 등이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 예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SBS <힐링캠프> 최영인 PD(왼쪽)·KBS2 <개그콘서트> 서수민 PD
유독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PD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 이유는 뭘까.
감성적인 여성 PD들은 최근 예능 트렌드인 ‘힐링’ ‘공감’ ‘가족’ 등을 잘 소화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남성에 비해 더욱 발달한 여성 PD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 특유의 장점인 섬세함으로 연출에 ‘잔재미’를 불어 넣는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선영씨는 “요즘 ‘착한 예능’이 부각되고 ‘가족 예능’이 인기를 끄는 등 감성을 중요시하는 풍토이다 보니 심리를 잘 파악하는 여성 PD들이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김씨는 “출연자들이 어른, 어린이, 가족 단위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우위에 있는 여성 PD들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계에 여성 작가가 많은 것도 한몫한다. 작가와 PD는 작은 소재에서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나눠야 하는 사이다. 그러나 남성 PD와 여성 PD의 감성은 다르다. 여성들끼리는 “맞아 맞아, 그래 그래”라고 맞장구치며 수다를 떨다 보면 편안하게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다. 쌍방향 소통이 잘된다. 한 예능 작가는 “남녀 심리를 다루는 주제에 대해 회의할 때 남성 PD와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여성 PD에게는 ‘어젯밤에 어떤 남자를 만났다’와 같은 구체적인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고 했다.
SBS <화신>의 한 작가는 “리더가 어떤 말로 회의 물꼬를 트고 어떻게 물줄기를 잡아 가느냐 하는 것이 프로그램 전반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그는 “남성 PD와 여성 PD의 관심사가 다르다. 남성 PD는 문 열고 들어오면서 ‘어제 아이폰5가 나왔고, 청평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빡셌다’고 말하는 반면, 여성 PD들은 ‘어제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레몬 디톡스를 체험했는데’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김희선씨와 작가, PD들이 서로 ‘언니’라고 부른다. 그 어감이 주는 친근함이 있다”며 “여자끼리는 촬영장 밖에서 따로 연락하기도 편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같이하는 동안 서로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KBS2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MBC <우리 결혼했어요> 황교진 PD·KBS2 <안녕하세요> 이예지 PD(왼쪽부터)
‘엄마 마인드’도 도움을 준다. 촬영일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같은 날이 겹치면 출연자나 스태프들에게 카드와 함께 먹거리를 챙기는 것도 여성 PD다. 남성 PD들은 마음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시키는 정도에서 그치는데, 직접 PD가 챙기는 모습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작은 감동을 받게 되고, 이는 큰 시너지 효과를 준다.
SBS의 <스타킹> <아이돌 빅매치> <행진> 등에서 일한 유현아 작가는 “남성 PD에 비해 권위적이지 않고 허례허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데 ‘거품’이 없다”며 “서류 보고의 개념이 필요 없다. 엄마들이 집안 살림할 때 어디에 어떤 그릇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굳이 어디에 뭐가 써있다고 써서 보고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고, 스스로 알아서 자기 손으로 하는 것이 여성 PD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스타 PD의 능력이나 배짱은 웬만한 남성 PD보다 낫다. 배우 이승기는 <1박2일>의 조연출에서 SBS로 옮겨간 신효정 PD를 두고 “<1박2일>에서 가장 독한 PD였다”고 말했다. KBS의 한 남성 조연출은 “서수민 PD는 강단이 대단하다. 세심하지만 강한 추진력도 있다”고 했다.
여성들의 방송사 진출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PD 지원자의 성비가 반반쯤 되고, 심지어 기술직도 증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여성 PD들의 장점이 드러난 분야가 예능인 것으로 보인다. MBC 관계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인재들이 늘어나면서 보수적이었던 방송사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채용됐고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구색 맞추기로 1~2명만 끼워넣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여성이 대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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