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제 이름은 미스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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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제 이름은 미스김입니다”

그녀의 호칭은 여러 가지다. 김양, 김씨, 때때로 아줌마. 하나같이 무명과 다름없는 호칭들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응답한다. “제 이름은 미스김입니다!” 일본드라마 <파견의 품격>이 한국으로 건너와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으로 다시 만들어지면서, 주인공 ‘만능사원 오오마에’가 그냥 ‘미스김’(김혜수)으로 바뀐 것은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점이 되었다.


한국에서 ‘미스김’은 그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산업화시대의 ‘김양’처럼 여성 노동자의 무명성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직장의 신>은 이 문제적 호칭을 통해, 비정규직의 차별적 현실이라는 원작의 주제 가운데서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비가시성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직장의 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젠더위계가 그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위계로 연결되는 현실이다. 극중 남성들은 모두 정규직원이며, 여성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녀들은 회사의 중요한 일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그녀들의 주업무는 “쓸데없는 잡무”로 폄하된다. 그녀들 노동의 비가시성은 ‘식당의 이모 혹은 지나가는 아줌마’처럼 “언니”로 뭉뚱그려지는 호칭에 압축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김이 스스로의 이름을 ‘미스김’이라 명명한 것은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역으로 가시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실제로 극중에서 미스김이 제일 큰 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한 지점이 바로 이 호칭에 내재된 차별적 현실이었다. 청소를 하다가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는 직원에게 자신은 “아줌마가 아니라 미스김”이라 외치고, 마초 장규직 팀장(오지호)에게 “계약직 이름 제대로” 부르라며 항의한 순간부터, 미스김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변자가 된다.



미스김의 활약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들의 “잡무”와 남성들의 ‘중요한 업무’의 위계를 전복시킴으로써, 주변화된 여성 노동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데 있다. 극중에서 회사 위기는 늘 여성들 “잡무”의 구멍으로부터 발생하고, 미스김은 그때마다 슈퍼히로인처럼 나타나 다양한 ‘잡기’로 회사를 구원해낸다. 특히 그녀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을 “언제나 대체 가능”한 “허드렛일”로 폄하하는 장규직에게 “그런 잡일 하나 못해서 계약직들에게 기대 기둥서방질이냐”며 일갈하는 장면은 대표적인 가치 전복을 보여준다.



이처럼 <직장의 신>이 원작에 비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 더 중점을 둔 것은 사실 필연적인 결과다. 남녀 성별 임금격차가 OECD 1위일 정도로 성차별이 심화된 한국 노동현실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건은 더욱 열악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53.4%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전체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61.8%로 남성의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정규직 중에서도 임금이 낮은 임시일용직 비율이 49.7%,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2%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KBS2 드라마 <직장의 신>



요컨대 <직장의 신> 첫 회에서 비정규직의 차별적 현실에 대한 내레이션,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월급은 정규직의 반”이라는 설명은 곧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또한 국내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첫날의 진통을 다룬 ‘이랜드 사태’ 자료 화면에서 전경들에게 끌려가는 노동자가 여성이었듯이, 여성 비정규직은 늘 우선 해고 대상이 되어왔다.



이 드라마가 미스김이 주로 활약하는 직업을 대형마트 캐셔, 판매원, 청소노동자, 단순사무직 등 비정규직화가 극심화된 여성 직업군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그런 열악한 현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전지전능한 ‘직장의 신’은 없다. 다만 이 작품은 신이 사라진 시대에 가장 소외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치를 익명의 슈퍼히로인 ‘미스김’을 통해 재조명한다.




김선영 | 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