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한국교육의 초상 ‘여왕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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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한국교육의 초상 ‘여왕의 교실’

지난주, 영훈국제중학교 교감이 학교에서 목을 맸다. 입학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훈중학교 교문에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영훈국제중 사태는 교육양극화의 심화, 사학재단의 비리, 입시와 경쟁 위주라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총체적 모순의 끝을 보여준다.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은 이러한 시점에 마치 저 현수막의 부고처럼 우울하게 도착했다. 시종일관 상복 같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독재 교사 마여진(고현정)은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꿈과 희망을 억압하며 교실을 지배한다. 부임 첫날부터 성적 순으로 교실의 계급을 나누고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성적우수자에겐 특권을”, 꼴찌에게는 잡일을 부여하는 그녀의 폭력적 교육과 그 아래서 “좀비”처럼 생기를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어두운 초상과도 같다.

 

일본 NTV 화제작 드디어 국내 상륙 SBS Plus '여왕의 교실' / 사진제공: SBS Plus



2005년 일본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준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부조리한 사회를 닮은 권력이 되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교사의 이야기다. 독설을 넘어 아동학대에 가까운 교사의 언행은 방영 당시 일본에서도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잔혹 학원물이라는 점에서 <여왕의 교실>은 KBS <공부의 신>과도 비교된다. <공부의 신>은 “꼴통 학교”를 명문고로 재건하기 위해 부임한 열혈 교사 강석호(김수로)가 학생들에게 ‘일류대 못 가면 루저’로 취급당하는 냉정한 현실의 규칙을 알려주고, 그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2010년 <공부의 신>과 2013년 <여왕의 교실> 사이의 시차에는 영훈국제중 설립 당시부터 오늘의 사태에 이르기까지 더욱 심화된 한국 교육현실의 모순이 반영돼 있다. 가령 2009년 영훈국제중 설립 배경에는 자율경쟁을 핵심으로 하면서 ‘글로벌 인재 양성’을 추구하던 당시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과 그에 부응한 시대의 욕망이 존재한다. <공부의 신>은 바로 그런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루저들의 난’을 주 내용으로 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무한경쟁을 통해 ‘강한 자로 살아남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식 성공신화를 재연하고 있다.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



2013년 <여왕의 교실>에는 부조리한 교육현실이 더욱 심화돼 나타난다. 시작부터 6학년의 의미를 “인 서울 대학입시의 첫 승부처”로 정의하고, 로스쿨을 위한 “스펙 관리”를 강조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입시경쟁이 이미 초등학교 단계로까지 심화된 현실이 드러나 있다. 국제중은 그 시스템 안에서 모든 성공에의 욕망이 압축된 대상으로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인 산들초등학교의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요”라는 현수막 구호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내세운 이번 정권의 교육정책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교문을 거쳐 ‘여왕의 교실’에 들어서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의견은 실종되고 모든 것이 성적 경쟁으로 획일화된 현실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마여진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군무를 추는 아이들의 어두운 표정처럼. 드라마는 “오늘의 지옥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 비극의 무게를 더 강화한다. 다만 이 지옥에도 출구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공부의 신>과 <여왕의 교실>의 결정적 차이점도 거기에 있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을 인식한 뒤의 대처 방식이다. 전자의 교훈이 결국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해 성공하라는 자기계발서사에 포섭된다면, 후자는 “행복한 특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99%”에게 분노하고 힘을 합쳐 부조리에 맞서라고 말한다. 마여진의 억압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당신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반전에 이르러서야 <여왕의 교실>은 비로소 단순한 학원물을 넘어, 억압 사회와 축소된 존재들에 대한 우화로 확대된다.




김선영 | 드라마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