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다양한 캐릭터 필요해진 예능 프로의 변화에 맞춰
ㆍ‘능력자’ 캐릭터 대척점서 존재감 발하며 인기
지난달 21일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런닝맨)에 출연한 배우 이광수(28)는 먹거리로 빙고게임을 하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어야 하는 순간 쫄면을 먹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멤버들을 화나게 했다. 같은 날 방송된 MBC <일밤-진짜 사나이>(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샘 해밍턴(36)은 사격 훈련 도중 탄피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해 사색이 됐다. 화요일에 방송되는 KBS2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 중인 조달환(32)은 시청자들과의 탁구대결을 위해 섭외된 후 “초레이 하!”라는 독특한 파이팅 구호로 시선을 붙잡았다. 탁구는 잘하지만 어딘지 엉뚱한 구석이 있다. 배우 김광규(46)는 금요일에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결혼 못한 싱글남의 비애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단숨에 예능 유망주로 떠올랐다.
원래 ‘패배자’였으나 요즘은 순화돼 ‘어딘가 어수룩한 구석이 있지만 정감이 가는 사람’을 뜻하는 ‘루저(Loser)’ 캐릭터가 최근 예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예능이 잘 짜여진 각본을 바탕으로 그 위에 현실감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 버라이어티로 발전하면서 각 프로그램은 다양한 캐릭터를 원하게 됐다. 등장인물 한 사람이 명쾌한 캐릭터를 가지면 그의 행동에 대해 시청자가 기대감을 갖게 되고 다른 캐릭터를 가진 인물과 부딪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재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이광수(왼쪽)·MBC <무한도전> 정준하
‘루저 캐릭터’는 이런 흐름에서 탄생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각종 규칙을 정확하게 숙지하며 과제를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는 다른 캐릭터와의 대척점에서 이들은 존재감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처음 루저 캐릭터를 입은 대표적인 인물은 MBC <무한도전>의 정준하(42)와 KBS2 <해피선데이-1박2일>(1박2일)의 김종민(34)이었다.
정준하는 각종 과제를 통해 눈치 없고 먹성 좋으며 힘은 세지만 두뇌회전은 빠르지 않은 인물이 됐다. 결국 이 캐릭터는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 ‘무한상사’ 에피소드의 정과장 캐릭터로 극대화됐다. 김종민도 비슷했다. 방송 초반 재치 있는 언변으로 MC 강호동도 꼼짝 못하게 만들던 그는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 후 눈치 없는 행동을 거듭하는 어리보기 캐릭터가 됐다.
<무한도전> 정준하는 정반대 캐릭터인 박명수에게 구박당하고, <1박2일> 김종민은 이수근에게 꼼짝 못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단면적인 루저 캐릭터가 최근 들어 더욱 다변화됐다.
이광수는 <런닝맨> 내에서는 가장 구박덩어리지만 대외적인 인기는 1인자 유재석에 버금간다. 지난 2월 진행된 마카오와 베트남 촬영에서는 새로운 한류스타를 예감하게 하는 반응이 나왔다. 멤버들은 수시로 키가 큰 그를 “기린”이라 놀리며 상황극을 진행한다. 이광수는 유순하고 어리숙해 사람들에게 늘 놀림을 당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KBS2 <해피선데이-1박2일> 김종민·MBC <나 혼자 산다> 김광규·MBC <일밤-진짜 사나이> 샘 해밍턴
비교적 일찍 벗겨진 머리에 싱글남인 김광규는 최근 출연한 <무한도전>에서 머리숱 때문에 멤버들의 놀림을 받았다. <나 혼자 산다>에서도 녹화 도중 생리현상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 ‘흠결’을 노출했다. 외국인인 샘 해밍턴은 한국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말도 어눌했다. 군대 용어로는 고문관인데,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인물로 비친다.
조달환은 조금 더 발전한 캐릭터다. 그는 때로는 번뜩이는 재치로 좌중을 웃기는 예능감을 갖고 있다. 거기다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꼭 필요한 운동실력도 갖췄다. 최근 출연한 드라마 KBS2 <천명>의 타이틀 로고를 직접 디자인하는 등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독특한 파이팅 구호에 과거 연애사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는 등 거침없는 예능감을 뽐냈다. 굳이 구분하자면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때 없지만 허당 기질이 있는 <1박2일>의 이승기 캐릭터와 닮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웃음은 기본적으로 그 타깃을 서민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잘난 사람들보다는 여러 가지로 모자란 사람들에게 연민이나 동정,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라며 “개그 프로그램에 늘 있던 바보 캐릭터가 현실에 맞춰 변화하며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어리보기 캐릭터의 존재는 인물들 간의 설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많은 부분이 실제 연기자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들은 실제로는 똑똑한 캐릭터를 가진 이들보다 훨씬 영리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TV 블라블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별시선]나는 아빠다 (0) | 2013.05.21 |
---|---|
TV 예능프로와 한국사 (0) | 2013.05.13 |
[문화비평]“제 이름은 미스김입니다” (0) | 2013.05.06 |
엄마 감성으로 버무린 예능… 방송계 여성PD 전성시대 (0) | 2013.03.21 |
어색하고 서툰 아빠와 아이들이 시청자 마음 잡았다 (0) | 201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