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희망제작소 박원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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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7) 희망제작소 박원순변호사

박원순 변호사의 다이어리는 흰바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했다. 
일과는 오전 7시30분부터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스케줄 많고 바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지만 이런 일정표는 처음이다. 가슴 포켓엔 볼펜이 한가득이고, 주머니란 주머니마다 서류뭉치와 메모쪽지로 채워진 복장은 바쁜 일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처럼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박 변호사껜 죄송하지만 그분이 더 바빴으면 좋겠다. 바쁘면 바쁠수록 세상이 희망적으로 변할 일들이 더 많을테니까. 종로구 평창동 희망제작소 내 두 평 남짓한 작업공간은 ‘희망의 헤드쿼터’였다. 

[김제동의 똑똑똑](7)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 - 신문 기사는 여기




박-방송에서 나와야 할 사람이 자꾸 신문에만 나오면 어떡해요. 뭐 그래도 좋은 세상도 오겠죠. 국민들이 다 알아주는 MC인데. 
오히려 이런 기회가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방송만 하다보면 지치고 소모되지 않던가요?

김-많이 소모됐죠.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 줄어든게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희망제작소도 탄압을 받는 바람에 오히려 회원수가 확 늘어났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5000명이 되어가요. 기업 후원이 줄어 고민했는데 자립이 되고 있어요. 더 잘 된 거지. 

김-아직 여독도 덜 풀리셨을텐데. 어제 미국 다녀오신거죠? 그런데 조찬모임까지 하시고.

박-저는 여독 못느껴요. 하도 많이 다니니까. 몸이 전자동으로 싹 바뀌더라고. 요즘은 전화기도 자동 로밍이 되던데요. 몸도 그래요. 
미국에선 어제 왔어요. 하버드 갔는데 얼마 전에 제동씨도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영국엔 사회적 기업을 보려고 갔어요. 어떻게 하면 그 사회를 새롭게 만들고 혁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보려고 했지요. 요즘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공공의 목적을 비즈니스적인 접근 방법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들어내요. 아름다운가게가 대표적인 것이죠.


 김-저도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표어라는데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박-그래요. 고용을 창출하기도 하고 자원 재활용도 하면서 다양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들이 많지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있잖아요. 이건 자본주의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김-미국엔 무슨 일로 가셨나요?


박-하버드대도 갔고 뉴욕에 아름다운 재단이 있어요. 4주년됐는데 기념모임과 모금행사가 있었어요

김-바쁘셨을 텐데 진짜 하나도 안 피곤해 보이세요. 

박-제가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이잖아요. 다이어리 한번 보세요. 오전 7시30분 조찬부터 거의 시간별로 일정이 있어요. 밤 9시나 되어야 내 시간을 좀 가질 수 있어요. 이 때 이메일하고 블로그도 정리하고 그래요. 
 
(박변호사의 작은 방은 자료와 책이 잔뜩 쌓인 책상과 테이블, 4면을 책장이 채우고 있었다.)
 

김-자료랑 책이 정말 많네요. 

박-나야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넣고 있어야 새로운  사회를 디자인할 수 있잖아요. 여기 내 명함 봐요. 소셜 디자이너라는 게 내 직업명인데, 남모르게 자료나 정보를 늘 접하고 있어야 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아야 우리가 이끄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될수 있잖아요. 자료를 모아 나중에 다 책으로 내고 정리하고 공부도 해야하니까. 

김-저만 편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박-뭐가요. 국민을 즐겁게 해주시잖아요. 각자의 역할이 누구나 있는건데요. 사람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연구하시는 거니까 얼마나 좋아요. 

김-
소셜디자인. 참 좋은 말이네요. 우리가 보통 디자인 하면 워낙 외향적인 디자인만 생가하잖아요. 패션, 인테리어 이런 쪽만. 

박-흔히 그렇죠. 그런데 그 디자인 개념이 외국에서도 바뀌고 확장되고 있어요. 마을 디자인도 있고. 이번에 갔다온 영국엔 예술대학에 디자인센터 어게인스트 크라임. 즉 범죄를 예방하는 디자인센터도 있더군요. 
허름한 도시 화장실에서 마약 주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명등을 푸른 빛이 나는 형광등으로 바꾸고 자전거 도둑을 예방하는 거치대를 만드는 식이에요. 

김-그 중심은 사람을 위한 것이네요. 

박-그렇죠. 억지로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문화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무언가를 바꾸고 상황을 업그레이드하는 거죠. 
이번에 영국에 선거가 5월6일에 있었잖아요. 어느 누구도 절대 다수당이 되지 못한 상태인데 1당이 된 보수당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보니까 굉장히 친 시민사회적인 주장을 펼친 것이 눈길을 끌었어요. 작은 정부, 큰 사회라는 것을 모토로, 정부의 사업인 공공서비스를 민간단체가 생산하도록 한 거에요. 

퍼블릭 서비스 프로바이더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가 공급하는거죠. 예를 들어 홈리스를 어떻게 정부가 다 감당하겠어요. 그럼 시민단체들이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수리기술을 가르쳐 자전거포를 열도록 하고 음식을 가르쳐 음식점을 내도록 하는 등 자활을 돕는거에요. 
정부가 하는 것보다 훨씬 열정과 헌신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확산되고 있어요. 시민사회가 지역에 훨씬 가까이 있으니 뭘 해도 더 잘 알고 소망과 바램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직접 모든 것을 다 간섭하려고 하니. 벙커에서 비상회의하면 세상이 바뀌는줄 알아요. 시민들의 조직이 시민들을 위해 스스로 일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우리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죠.


김-그렇다면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뭐라고 할수 있을까요. 

박-지금 상황을 보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게 아니잖아요. 국민 대신 대통령이라는 말을 대입하면 딱 들어맞아요. 국민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김-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복지는 민간이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설명이시네요. 

박-홈리스뿐 아니라 심지어 교도소까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사례도 많아요. 제동씨 혹시 교도소 가봤어요?

김-고등학교때 견학 가봤는데요. 촌에서 오토바이 훔쳐서 한번 타보다가 저하고 어머니하고 경찰서에 갔지요. 아직 어릴 때라서 그랬는지 경찰서에서 저를 데리고 교도소 구경을 시켜주셨어요. 한 번만 더 이런일 하면 이런데 와야 한다, 지금은 학생이니까 봐준다면서요. 





박-나는 대학 1학년때 소년방에서 복역해봤어요. 미성년이었지. 조그만 방에 20명이 있었는데 갔더니 순서대로 자기가 지었던 범죄를 다 설명하는 청문회가 열려요. 중간중간에 한마디씩 걸치면서 지도가 따르죠. 그래서 교도소를 학교라고 하는 거겠죠. 
범죄 짓고 교도소 가서 더 많은 범죄를 배우고 구상하고 공범조직을 짜게 만드는 식이잖아요. 지금은 세금을 내서 범죄자를 키우는 식인데 북유럽쪽에는 나라 대신 민간이 교도소를 운영하는 곳도 많더군요.

피트보로라는 지역을 가보니 12개월 이내의 형을 선고받고 12개월 내에 재범확률이 50%래요. 그래서 지역의 시민단체가 이같은 비율을 30%로 낮추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이런 데에 투자하는 자금을 받아 이 지역의 범죄를 낮추겠다며 계약을 맺었어요. 이 지역에 들어가서 범죄를 낮추기 위한 가능성을 만들도록 도와주는거죠.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이런 돈을 소셜 캐피탈(소셜 임팩트 본드)라고 해요. 


김-말씀 들어보면 사회적 기업 연장선상 같기도 하네요. 
미국 갔다오면서 봤는데 장애인, 청소년 범죄자들이 잘 취업할 수 있도록  창업할 수 있도록 체인점 형식의 기업, 커피전문점 등 이런것 열고 대기업도 연계해 지원해 주는 사례가 많았어요. 그걸 보면서 민간이 할 수 있는 범위와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 같네요. 


 박-우리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왔는데 이에 대해 많은 나라는 한계를 느낍니다. 민간, 지역단체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월하고 잘합니다. 
그들은 현장에 뿌리박고 지역주민과 늘 소통. 그 해결방법도 잘 알고 있어요. 정부는 그것을 하게 하고 돈 지원하면 되죠. 기업도 지원하고. 정부, 기업, 민간의 세 섹터가 연합해 세상문제를 함께 나누가 다스려가는 협치가 필요한거죠. 

김-그게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닌가요. 

박-그럼요.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자는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해요. 

김-공공의 이익을 실현하자는건데 고소당하셨네요. 

박-예수님도 고소당해 처형까지 당하지 않으셨나요. 난 차라리 감옥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이렇게 복잡한 일정들도 없고 규칙적으로 책읽고 글쓰면서 살 수 있는데. 오히려 감옥 보내주면 좋은데 돈도 없는 나한테 2억원이나 청구했잖아요. 

김-아.. 그래도 전 감옥 가보고 싶지 않습니다.하하.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창 틈 사이로 비춘 햇빛이 당신의 몸을 비추던 그 시간이 자신을 살렸다고. 그 햇빛이 없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요. 여하튼 고소를 당했을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박-뭐, 기분이 안 좋죠. 일반인도 아니고 국정원인데. 우리 희망제작소는 특별히 정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것보다는 늘 창조적인 것을 위해 노력하는 곳인데 느닷없이 고소를 하더라고요.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요즘 정말 고초 겪는 분들이 많잖아요. 촛불시위로 수난을 당하거나 과거정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그 정부를 지지하거나 어떤 의사 표명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어요. 
이런 정부 하에서 내가 잘나가면 그것도 너무 이상한거죠. 오히려 잘됐고, 마음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종적으로 그렇게 정리했어요. 


김-변호사님. 잘 모르겠습니다만 국가가 개인을 고소하는 일이 흔합니까? 

박-저도 사실 이젠 변호사가 아니에요. 안 한 지가 워낙 오래되어서. 
그런데 어쨌든 이런 식의 고소는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비판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정부는 늘 권력을 가진 입장이고. 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 받고 비판 당하고 소송 당하는 것은 정부여야하죠.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전반부는 국민의 인권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는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 나와있어요. 전자는 국민의 인권은 존엄하고 이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대통령이 헌법수호의 의무가 있다고 말하죠. 결국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라는 이야기에요. 
이런 헌법 구조에서 오히려 정부가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는 상황이 너무 웃기는 거에요. 





김-그런데 변호사님. 전 잘 못느껴왔는데 일각에서는 변호사님에게서 정치적인 색깔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아름다운재단이나 지금이나 난 전혀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데 어느 순간 이 정부가 자꾸 나를 정치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같아요. 정치와 상관없는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인데 그걸 못하게 하니까 이상한 거죠. 
난 본의아니게 그전부터 정치권이나 공직 물망에 오르내린 적이  있어요. 물론 내 뜻과는 다르게. 그런 것 때문에 그분들이 저를 잠재적으로 정치적 인물이고 잠재적인 정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에게 물어봐야겠죠? 
그런데 정치를 편협되게만 볼 것도 아니에요. 정치가 하도 국민들을 신물나게 하니까 지레 나쁜 것으로 규정지워버린 거죠. 우리 공동체의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저 역시 특정 정파를 편들거나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좋은 방향과 정책을 비판하고 칭찬하는 일은 계속 해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정부 들어서서, 저에게 강한 발언을 하게 만드네요. 이 정부가 70년대 80년대로 가니까 정치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던 거죠. 예전에도 선비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외세의 침입에 총칼을 들기도하고 의병을 이끌기도 했잖아요. 전 칼까지 든것도 아니고 소리 좀 친건데.

김-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이런 활동은 활발한 유권자 활동인 건데요. 선관위에서도 투표로 말하라는 슬로건이 있는 것 같던데... 그런 뜻에서 이번 커피당도 그런 유권자 활동으로 보면 될까요? 

-커피당도 마찬가지에요. 특정 정당을 지지하자 어쩌자 이런 게 아니라 우리 지역에 누가 나왔는지, 왜 찍어야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보자는 거에요. 
지방선거는 유권자가 절반도 채 투표하지 않아요. 결국 정치가 필요악이라면 국민의 무관심때문에 정치가 망하는것이거든요.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지금 우리 지자체장이나 의회의 20%가 형사피의자로 입건돼 있어요 4분의 1이나 되는 선출직 공직자가 형사입건된 창피한 상황이죠. 커피당은 선거에 관심갖고 이야기 해보자는 거예요. 당수 당조직도 강령도 없어요. 그저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선거에 입후보하는 인물들에 대해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고 사진을 찍어서 사이트에 인증샷 올릴 수 있게 해 놓은 정도예요.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게 중요한 거지. 우리도 지금 커피 하면서 커피당 모임 할 수 있고. 

김-그런데 변호사님. 정부에 비판적인 말씀들을 많이 하시니 자칫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박-희망제작소는 한나라당 자치단체장과도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초당파적인거죠. 선입견 필요 없어요. 또 커피당도 선관위가 주장하는 것을 충실히 실행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선관위가 자금도 지원해주고 우리한테 표창도 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의 정치구도에서 한나라당은 너무 강하고 압도적이에요. 늘 균형이 맞아야 하거든요. 그건 사회의 균형이지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안들지만 이런 세월도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도 그렇고 정권이 왔다갔다 하면서 바뀌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더 좋은 경험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우리는 그 역사가 짧고 사례가 충분치 않아서 헷갈리고 있지만 권력의 교체가 자주,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이뤄지면 국민이 좋은 경험을 더 많이 할 수 있죠.


김-커피당은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믿고 시민을 믿는다는 거네요. 유권자들이 알아서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판단하라는.

박-김제동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착한 사람이라는 건 많은 국민들이 알잖아요.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이 조금만 관심갖고 보면 판단할 수 있잖아요. 

김-아이고, 전 좋은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표를 포기하지 말자는 뜻도 되는 거죠? 

박-결과로서의 표 행사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거에요. 당일날 나와서 표를 찍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서로 의견교환도 하고 검색도 하고 후보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소통과 토론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표를 찍으러 올 리도 없거니와 정당한 표를 행사하지도 못해요. 
인폼드 데모크러시, 즉 정보가 주어지는 민주주의라는 거죠. 
이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자는건데 지금 우리 선관위는 그런걸 막고 있어 안타깝죠. 트위터가 대표적이잖아요. 트위터는 누구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쓰자는 건데, 그리고 그렇게 서로 정보 나누고 말하면 다 알아서 판단하는 건데. 
요즘 선관위의 모습을 보면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선관위가 내 트위터에 팔로(follow)를 신청했는데 난 언팔로(unfollow)하고 있어요. (웃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건 아니잖아요. 누구나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줘야지. 그래야 올바른 투표를 할 수 있어요.





(희망제작소 내부를 잠시 구경했다. 연구원들이 김제동씨에게 “잘생겼다”면서 환호를 보냈다. 한 연구원은 “우리 사무실 방문자 중 이렇게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처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제동은 “오전이라서 잠시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른 오전이라 제대로 못 알아보신 것 같다”고 응수했다.)

박-결국 중요한 것은 소통이에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거죠. 영국에서 관료적인 병원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환자들의 이야기를 분석해 본 적이 있는데 결론은 소통이고 남의 말을 잘 듣는 거였답니다. 핵심은 듣는 거에요. 귀가 커야 한다는 이야기죠. 

김-눈은 작아도 상관없죠? (마주보며 웃음)

김-저도 학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데 말 잘 하려면 어떡하느냐고 물어봐요. 결국 잘 듣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데 끝까지 듣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말싸움에서도 질 수가 없더라고요. 

박-나도 어디가나 말을 많이 했는데 늘 반성하고 살아요. 핵심은 겸손하게 듣는 건데... 인간이 그렇게 안되니까. 

김-평생 사회운동 해오신건데 항상 뵐 때마다 궁금해요. 집에서는 뭐라고 안하시나요

박-집에 일찍가면 내가 환영받겠어요? 물론 젊은 시절에야 그런 이야기도 좀 들었지만 일찍부터 이렇게 살았으니까. 30대부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으니. 돈도 안 갖다 주지, 늦게 가지. 또 1년에 3분의 1은 외국에 있지. 심지어 사무실에서 자기도 해요. 
여기 봐요. 침낭, 간이침대도 있잖아요. 지금은 집에서 안 들어오는 걸 더 편해 하더라고. 하하. 일찍 오면 뭐 잘못된 일 있나 생각하던데요.

김-에휴, 전 장가가야 하는데.. 

박-중매해드릴까요?

김-해주십시오. 진짜루.

(벽에 걸린 패러디 사진들. 영화 300을 패러디한 박변호사의 포스터를 본 뒤)

김-실제로도 근육 좋으시죠?

박-그건 회원 300명 확보하라고 만들어준 거에요. 배 나오고 그렇지 뭐

김-저도 하하랑 다른 친구랑 저랑 셋이서 패러디를 하나 만들려고 해요. 몸 안 좋은 세 명이 300이 아닌 3. 스파르타가 아닌 스파. 이 컨셉으로 상반신 벗고 온천에서 사진 찍으려고요. 
근육이 좋은 사람이 워낙 각광받는 세상이다 보니 근육 없고 몸 안 좋은 남자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잖아요. 늘어진 뱃살이 죄인가요.


박-하하. 안그래도 자원봉사자들이 저보고 벗으라고 한 적 있어요.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 살아계실 때 영화 풀 몬티처럼 완전히 벗어서 달력 만들자고.


김-그거 만들어졌으면 대박이었을 텐데요. 같이 한번 벗으실래요?

박-에이, 나보다 훨씬 몸이 좋을 텐데. 
김-저는 운동하고 있습니다. 야구하고 있는데 코치님도 그러시고 승엽이도 저더러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이 완성됐는데 근력 수준은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 수준이라고... 에효. 
그나저나 말씀 들으면서 좀 재미있는 시민운동을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짝이는 아이디어 내고 놀고 웃고 떠들수 있는 여건들이 녹아들었으면 하죠. 웬지 시민운동하면 딱딱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박-맞아요. 머리에 띠 두르고 데모하는 느낌을 막연히 받을 때도 있는데 사회운동은 재미있어야죠. 집회나 시위도 경찰과 부딪히는 것 말고 축제처럼 신나게 즐기고 플래카드도 방패연, 오징어연처럼 재미있는 모양에 다양한 색을 섞어서 만드는 거에요. 
얼마 전엔 이런 것도 생겼죠. 시내 한가운데서 파란불이 켜지면 펼침막을 내보이고 빨간 불이 켜질 땐 거두고. 1인 시위도 처음 참여연대가 창안하면서 재미있는 시위문화를 만든 거죠. 뭔가 신선하고 창의적인 것을 개발해야 해요. 

희망제작소는 그런면에서 재미있는게 많아요. 인생 후반전을 설계하자는 행복설계 아카데미도 있고 모금전문가 학교, 대학생을 위한 소셜 디자인 스쿨 등 많아요. 뭐든 재미있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하거든요. 
그래서 제동씨같은 연예인들이 이런 다양한 사회활동에 많이 함께 해주시면 참 좋은 일이죠. 외국에도 명사들이 사회적 주장을 하면서 각종 사회활동에 많이 함께 하잖아요.


김-저의 가장 큰 가치는 웃음입니다. 사람들이 웃으면 가장 좋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웃으실때 가장 큰 힘이 나고요. 

박-당장의 방송 공간은 좀 잃었을지 몰라도 국민의 마음은 훨씬 얻으셨죠. 단순히 웃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셨거든요. 본의 아니게 그런 존재가 되셨습니다 하하. 

김-저도 토크콘서트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새 힘과 경험이 많이 축적된 게 느껴집니다. 

박-누구든 뭘하든 상식적인 자리에 있어야죠. 저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활동하는 건데, 이 정부와 그럴 관계도 아닌데.... 굳이 따져 보자면 저도 이대통령과 친한 사람 100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관계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기업이 일체 이쪽에 지원을 안 하다 보니 쪼그라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뜻있는 분들이 더 늘어나면서 행복합니다. 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다는 그 느낌이 훨씬 행복함과 안도감을 주는거죠. 맞고 들어오면 발뻗고 잔다잖아요. 가난하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습니다. 

김-변호사님 그 표정 안 잊혀질 것 같습니다. 애기처럼 천진난만하고 웃는 부처님 얼굴인데 그 말씀 하시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이 표정만으로도 변호사님의 순수성에 대한 오해가 다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박-전 좀 더 아름다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거창한 구호보다는 우리는 21세기 실학운동 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 마을, 우리 공동체를 돌보고 더 아름답게 가꾸면서 풀뿌리에서부터 변화를 일궈가는 거죠. 

김-작은 듯 하지만 결코 작지 않습니다. 

박-그렇죠. 확산될 수 있어요. 좋은 모델 하나 만들어두면 삽시간에 퍼집니다. 

내가 2000년에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때만 해도 나눔이란 말은 별로 없었어요. 기부도 그렇고. 기부문화가 들꽃처럼 온 세상에 피어나게 하자는게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어디나 나눔나눔 하고 있잖아요. 
그런면에서 볼 때 너무 완벽한 사회보다는 할 일 많은 세상에 태어난게, 주변에 절망에 빠져 있는 분들이 계시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그분들이 변하고 바뀌는 것이 눈에 보이거든요.

내가 75년 학교 잘리고 80년에 복학하라는 통지를 받았어요. 5년간 방치됐죠. 
나랑 김준규 검찰총장이랑 고교 동창인데 내가 그때 감옥에 안 갔으면 검찰총장 됐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지금 쯤 스폰서 검찰 됐겠죠? 하하. 얼마나 행복해요. 난 그런 게 싫어서 나왔는데. 
사람들은 검찰총장이 좋다고 하겠지만 전 제 자리와 바꾸기 싫습니다. 

김-그 쪽도 안 바꿔주지 않을까요? 하하. 
저도 제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항상 고민하는데 제가 꿈꾸는 대안학교를 만들고 좋은 모델을 만들어 그게 널리 퍼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때 꼭 도와주세요. 

박-제이미 올리브라고 세계적인 요리사가 있죠. 그가 소년원에서 나온 친구들을 대상으로 요리를 가르치고 쉐프를 배출해요. 정말 멋있더군요. 그것도 일종의 대안학교일 수 있는데, 제동씨가 어떤 대안학교를 꿈꾸는지는 모르지만 제동씨가 가진 명망과 인덕을 생각하면 많은 분들이 도와줄 것 같아요. 

김-제가 며칠 전에 곰곰이 생각한건데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 있잖습니까. 제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해요. 경북 영천 촌에서, 몇 가구 안되는 촌에서 TV에 나오는 사람이 나왔다고 그런 말씀들 하셨죠. 

그런데 요즘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시대라고 하는데 전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사리로 남아서 함께 연대해 개천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죠. 
용을 배출했다는 것 외에 그 개천은 뭡니까. 모든 송사리가 용을 꿈꾸면 그 개천은 뭐가 되나요.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다면 그게 송사리가 되어, 서로 어깨동무하며 개천을 지키는 거죠.


 박-역시 김제동씨다운 이야기를 하시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니 오래도록 국민에게 사랑 받으실 거에요. 사람들이 기대고 의지할데가 없잖아요. 혼자 용 빼는 재주 갖고 하늘로 올라가면 뭐합니까. 하늘은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김-변호사님 같은 분들을 보면서 제가 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박-오해가 좀 있는 것도 좋습니다. 세상에 아무 비난과 비판 안 받으려면 아무 것도 안 하면 돼요. 뭘 하든 항상 비판자도 생기고, 그래서 관용도 생기죠. 나 비판받을 일 안 했는데 왜 미워하지, 하면서 그들을 미워했는데 저런 분들도 계셔야 나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어요. 스스로 편해졌죠. 


관련 글: 이고은 기자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고 오는 길>


김-훌륭한 분들은 다 통하네요. 파올로 코엘료가 트위터에 올려놓은 것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면 이상한거다. 반드시 너에게 경고를 주고 너를 깨우는 원수 한 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맥상통한 말씀이죠. 전  관용을 배울 시점이 안 되어서 화도 나고 대상도 나고 울컥울컥합니다. 왜 저런 여자는 TV안에만 있지 이렇게 울컥할 때가... 
미의 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남녀를 불문하고 끌리는 사람은 있지요. 

김-갑자기 말을 더듬으시네요. 하하

박-하하. 특정인이 아니라 참 예쁘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 향기가 있는 사람들. 참 좋아요.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사진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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