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라도의 한 해녀가 ‘물질은 목숨을 저승에 갖다두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시인은 ‘바다와 남자는 돌아서면 늘 그립다’(‘해녀’ 중에서)고 노래했지만 해녀들의 물질이 과연 그리 낭만적일까. 그네들에게 바다는 ‘목숨’이었다.
지난해 12월 내 이름을 걸고 시작했던 토크콘서트. 10일 제주에서 끝낸 전국투어 마지막 무대서 나는 끝내 줄줄 울고 말았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를 보러 찾아온 관객들이 고맙고, 고마웠다.
또 게스트로 무대에 서준 정태춘·박은옥, 이경규, 고현정, 윤도현, 유재석, 이하늘, 하하 등등. 그날 밤, 검은 제주바다 앞에서 해녀들이 바다에 목숨 걸듯, 무대에 목숨 걸었는지 자문해봤다.
다음날 제주올레 7코스를 걸었다. 월평포구에서 시작돼 강정, 법환을 지나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코스. 제주시민들이 올레길을 내고, 걷기로 결정한 건 가히 ‘기적’이라 할 만했다. 그 바닷길에서 내가 걸어온, 걸어갈 길을 생각하다가 제주 해녀 고미자씨를 만났다.
제주의 남쪽 바다에 있는 범섬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서귀포 법환동의 법환포구.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강정포구에 이웃한 조그맣고 평화로운 어촌마을의 해녀체험센터에서였다.
37년째 제주 해녀로 살아오신 고미자씨(56)는 오랜 시간 파도와 싸우며 살아온 삶의 흔적을 읽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가녀린 몸과 고운 피부를 가지고 계셨다. 내 손을 잡으며 “멀리 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활짝 웃어 주시는데 엄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고미자씨는 열아홉에 해녀가 돼 올해로 37년째 물질을 하고 있다. 결혼전에는 다른 곳에서, 스물여섯에 결혼한 뒤 법환포구 앞바다에서 30년째 물질이다.
김제동=힘들지는 않나요?
고미자=힘들때도 있지요. 물빠지고 파도가 많이 칠때. 그땐 좀 부대껴요.
김제동=저는 죽어도 물에 못 들어갈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워요.
고미자=안 무서워요. 무서우면 이거 못해.
김제동과 해녀 고미자씨(왼쪽)가 범섬이 보이는 서귀포 법환포구 앞에서 만났다.
파도가 높고 바람도 강해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운 날인데도 고씨는
“이 정도는 양반인 날씨”라며 웃었다. | 김영민 기자
고=옛날부터 안했으니까 안했겠지요. 제주도는 원래 유배지라 선비들이 많이 살았잖아요. 부인들 많이 거느리고 살면서 바다에서 일시키고 밭에서도 일시키고... 그랬던것 같은데요.
김=아니, 그렇단 말이에요? 이런, 선비들부터 물에 넣었어야 했네. 어쨌든 육지에서는 제주도 남자분들은 다 노는 줄 알아요. 안그런가요?
고=아니요. 제주도 남자들은 밭에 일하러 가요. 애들도 보고. 놀지 않아요.
김=요즘은 뭐 따세요
고=해삼 전복 소라 주로 따고 있어요
김=어머니가 물질해서 딸 둘 대학 다 보냈군요. 그래도 그런 경제적 부담을...
고=애들 아버지는 파인애플 농사를 했는데 값이 안나갔지. 밀감도 잘 안 열리고. 결국 내가 벌어 딸 둘 대학시켰어요. 예전엔 바다에 물건도 많았고, 나가 젊었으니까 깊은데도 들어갔고... 소라가격도 그만큼 많이 나갔고. 돈 많이 벌었어요. 지금은 소라도 없고, 물건도 많이 줄고. 가격도 안나가요.
고미자 "해봐야 알지. 장담 못해, 물질하는 것은. 수영 잘 한다고 해도 장담 못해. 파도치는 디서는 내가 더 잘 허지. 나헌테 교육받고 들어가야 해.
김=언제, 어떻게 물질을 시작하셨어요?
고=열아홉에 친정에서 시작했어요.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거야. 아버지가 아파서 중학교 못가고 엄마랑 농사 짓다가 19살부터 물질 시작했지. 다른 게 뭐 할 게 없잖아. 물질밖에. 옛날엔 다 그렇게 살았어요.
김=그럼 37년간 물에서만 사신건데 피부가 어쩜 이리 고우십니까.
고=우리도 물에 들어가면서 선크림 화운데이션 다 발라요. 파도가 워낙 거칠기 때문에.
김=뭐 따는 게 제일 힘드세요?
고=전복이지. 전복이 제일 안 보여요. 쉬운 것은 소라고. 전복은 깊은데 있기도 하고 또 찾기도 쉽지 않아요.
김=저도 결혼할 여자를 찾고 싶은데 찾기가 쉽지 않아요. 어머님, 어떻게 해야할까요?
고=아이고, 그래도 열심히 찾아야지. 찾으면 보여요.
김=어머님은 어떻게 아버님 만나셨어요?
고=옛날 사람들 다 중매로 만나고 그랬지. 나는요, 결혼하기 전에 외지에서 물질을 했는데 사실 너무 일이 힘드니까 결혼하고 나서는 물질 안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어쩔 수 없이 물질을 하게 되더라고. 정말 하기 싫었는데 가정 형편상 안할 수 없었지요. 환경이나 상황이나 그렇지 않으니까.
김=물질이 그렇게 힘드셨으면 아버님에게 하기 싫다고 이야기해본 적은 없으세요?
고=한번도 없어요. 해야 되니까 굳이 그런 말 하면 뭘 해. 너무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하면 또 즐거워요. 즐겁게 하려고 노력도 하고. 운동도 되고 돈도 벌고. 좋잖아요. 한 달에 많으면 보름 정도 나가요. 일기가 안 좋으면 한 달에 열흘 안쪽으로도 일하러 나가고. 이번 달에는 파도가 많이 쳐서 많이 나가지는 못했어요.
김=그렇게 물질 다녀오시면 아버님이 안마는 안해주시나요? 다리도 주물러주시고..
고=제주도 남자들은 그런거 안해요. 30년 넘게 살아도 그런것 받아본 적은 없어요.
김=아니, 너무하신거 아닙니까?
고=아유, 그러지 마세요. 제주 사는 사람들이 표현을 못해요. 남자들도 다 무뚝뚝한데 인정은 많아요. 사람도 좋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겠지.
김=저도 경상도 남잔데 무뚝뚝하기로는 경상도 남자들도 만만찮습니다. 어쨌거나 불만은 없으셨어요?
고=그냥 팔자다 생각하고 참고 살아오는 거죠. 술먹고 올 때는 속상하기도 한데 그래도 잘해줘요.
김=같이 일하는 분은 몇 분이나 되세요?
고=여기선 61명이 함께 일해요. 동무들 만나서 같이 일하고 이야기하고... 재미있어요. 전복 물어봤는데 잘 안잡혀요. 하루에도 잡을 동 말 동이야. 61명 중에도 잡는 사람이 잘 없으니까.
고미자 "숨참는게 힘들죠. 숨을 오랫동안 참았다가 물위로 와서 ‘휘익’ 하고 길게 숨비소리를 내뿜어요. 1분30초 정도 찾았다가 물건을 다 잡고 올라와서 내는 소린데. 그걸 죽 내쉬면서 고통을 날려버리는 거지. 보통 나오면 5, 6시간정도 작업해요."
김=보통 몇 살까지 하실 수 있나요?
고=여든 넷된 해녀도 있어요. 그런데 일하다보면 숨이 다 돼서 죽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숨을 항상 애껴요. 숨차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거든요. 심장마비로. 몇년전에도 3명이 돌아가셨어요.
김=어떻게 그 연세까지 하는지 놀랍네요. 몸은 아프거나 하지 않으세요?
고=허리에 납을 차니까 허리가 좀 아프지요. 바다에 가서 수영하고 운동하는거니까 오히려 다른 데는 덜 아파요. 남들은 돈주고 운동하는데 우리는 그냥 운동하는거라고 생각하고 물질하죠. 게다가 돈도 벌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김=자식들도 다 키워놓으셨는데 언제까지 하실라고요?
고=힘 닿는 데까지는 해야죠. 안 아프면 계속 하려고. 안 하면 뭐해요. 밭에 있거나 집에 있거나 그런데.
김=그래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나니까 좀 마음은 편해지지 않으셨어요?
고=아무래도 악착은 덜하죠. 공부시킬 때는 한숨이라도 남보다 더 쉬어서 좀 더 벌자고 악착을 떨었는데 지금은 마음 편하게 해요.
김=만일 따님이 물질한다면 어떠시겠어요?
고=아유, 안시켜요. 나 하나로 족해요. 나 하나로 희생하면 돼요. 너무 힘들어.
김=그래도 보람 많으셨잖아요.
고=힘들여 번 돈으로 애들 학비내고 용돈주고. 보람 있죠. 이렇게 자식들이 잘 자라준것도 고맙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돈모아 집사고 밭사고 그런 사람도 많아요.
김=돈벌이는 어떠신가요?
고=물건 값이 많이 떨어져서 예전같지 않아요.
김=바다 삶이 고되니까 뭍에 올라오면 어떠세요?
고=시집 와보니까 내가 7남매의 맏며느리였어요. 시어머니도 모시고 작년까지 살다가 11월에 돌아가셨어요. 정말 친정어머니라고 생각했고. 돌아가실 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2달 정도 병원 생활 하다가 가셨는데. 내가 집에만 오면 고생했다, 수고했다, 우리 집에 와서 며느리 네가 고생한다고 하시는데... 지금도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다행인건 밤에 자다가 돌아가셨어.
김=집안 경제 일으키시고 자녀 공부시키고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건사하고... 정말 슈퍼우먼이시네요. 맏며느리면 제사 부담도 많을 텐데.
고=제사가 1년에 8번 있어요. 요즘은 합제해부니까 5번인데 그래도 많지요. 어쩔 수 없잖아요. 큰아들인데. 그래서 애들은 큰아들한테도 시집 안 보내고 싶고 제사 많은 집도 딸들 보내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물건 많이 잡으면 힘든거 잊어버려요.
김=해녀들만 갖고 있는 직업병이 있나요?
고=잠수병이 있어요. 귀가 아프고 지금 한 쪽은 잘 안들려요. 그래서 바다에 갈 때 약을 먹어야 해. 그거 안먹으면 작업 못 해요. 둘 중 하나는 먹으니까.
김=육지서는 사위 오면 닭 잡아주는데 여기는 어떤가요?
고= 똑같이 닭 잡아줘요. 가끔 옥돔도 구워 주고.
김=다시 태어나면 뭐하고 싶으세요
고=제대로 못 배웠으니까 공부하고 싶지요. 그리고 평범한 직장 다녀보고 싶고.
고미자 "우린 반대해요. 평생 일해온 바다인데 여기서 작업도 못하고, 배 왔다갔다 하면 오염도 되고. 바다가 예쁜데 다 버릴 거고. 도청에도 몇 번이나 가서 항의했는데.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고=안타까웠죠. 그거 숨참고 바다에서 고생을 아니까 바다에 빠져 죽은 어린 군인들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요. 안타깝고. 그런데 해군기지 하고 한다니까 속상해. 실종자 가족 보면서 자꾸자꾸 눈물나고.
김=바다는 어때요? 많이 변했나요?
고=너무 오염돼서 안타까워요. 감태가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 오염 안되는 곳에 감태가 자라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예전엔 톳도 수없이 나서 일본에 수출했는데 지금은 톳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불과 5, 6년전 이야기에요.
김=왜 그런가요?
고=생활오수가 많이 버려지면서 바다가 자꾸 오염되나봐요.
김=어떻게 살려야죠?
고=방도가 없죠. 뭍에 사는 사람들이 잘 해야지. 바다에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데 민물이 뭍에서 내려오니까 거기서부터 다 잘해주면 좋겠어요.
김=가족에게 바라고 싶은 거 있으세요? 하고 싶은 말이나.
고=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애들 아버지도 건강이 안 좋은데 술 마시는 것 보면 속상하고. 아이들에게는 바라는 점 없어요. 그저 남한테 싫은 소리 듣지 말고 싫은 이야기 하지 말고. 내가 받기 싫은 거 남한테 하지 말고. 나는 지금까지 56년 살면서 소리 내고 싸워본 적 없어요. 애아버지랑도. 남편한테 큰 소리 한 번도 못 쳤어요. 그냥 가슴 속에 이래저래 새겼지.
김=답답한 건 아디서 푸세요.
고=그냥 바다 오면 다 풀리죠. 그거 아니면 답답하다고 다 푸나요? 참는 거지. 여자니까. 나하나 참고 조용히 하면 주변이 다 편하고 좋더라고. 그런데 뭐 나만 그렇게 살았나요. 다들 그렇게 살았지.
김=어머님한테 바다는 부처님 품이고 부모님 품이었네요.
고=그렇지요. 난 가족들 건강하고 잘 지내고 그것 말고 없어요. 힘은 들지만 가족들이 다 행복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김=좀 일찍 태어나서 어머니같은 분하고 결혼했어야 하는건데. 이게 다 우리 엄마들 마음입니다. 이 시대 살아온 우리 엄마 마음요.
고=제동씨 보니까 좋네. 사람 깐깐해 보이지도 않고.
김=인물이 좋지 않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들 하시더라구요.
고=인물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웃음)
고미자 "없어지면 많이 서운할 테지. 지금은 배우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마지막인데. 나중엔 스쿠버가 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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