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늘은 축구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니, 앞으로 한 달 가까이 축구이야기를 안하면 ‘왕따’당할지 모른다. ‘홍명보’가 오늘 내 앞에 있다. 오랫동안 국가대표 축구팀의 중원을 지키던 영원한 리베로이자 현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나는 아직도 2002년 한국-스페인의 8강전, 마지막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피가 뜨거워진다. 이후에도 기부문화에 앞장서는 그를 보면서 저런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홍명보 감독은 “축구에서 어떤 훌륭한 감독이나 선수도 팀 위에는 있을 수 없다”면서 팀 워크와 신뢰를 강조했다. 김제동은 홍 감독에게 “교수님이나 학자같다”고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홍 감독과 단 10분 만 이야기해보면, 그의 믿음직스러운 표정 뒤에 숨은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을 읽을 수 있다. (김정근 기자)
- 김제동/ 요즘 운동해요. 산에 가고 자전거 타고. 유재석 형이 30대 중반인데 생활은 명예퇴직자같다고. (하하) 만나게 돼 빈말 아니고 영광입니다. 송윤아씨 이후로 처음 눈 맞추겠어요.
- 홍명보/ 네덜란드 다녀왔고, 다음 주 남아공 일주일 갔다가 10일부터 올림픽 훈련 시작해요.
- 김/ 올림픽팀은 23세 이하죠? 그래서 아시안 게임은 21세 위주인가요?
- 홍/ 꼭 이유는 아니고 K리그에서 23세 선수 구성을 찾아봤는데, 그렇게 팀 주축 활약하는 선수가 많지 않았어요. 훈련 시간이 10일밖에 없는데. 훈련 해봐야 어떤 선수인지 아는데. 시간적으로 부족했죠. 이럴 경우 아예 21세 선수들을, 지난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 데리고 나가는 게 효율적이죠. 미래를 준비하는 선수이기에 그렇게 결정했어요. 23세 선수들에게 미안하죠.
- 기자/ 성적 안나오면 부담이 되죠. 23세 선수한테 전화해서 군대 면제 이야기 안하나요?
- 홍/ 23세 선수 중에는 나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선수가 없어요.
- 김/ 선수들이랑 친하죠. 무서울 거 같은데, 되게 형님처럼 지내는 것 같아요.
- 홍/ 친한 편이죠.
- 김/ 어떻게 친한가요? 사실 나이 차이가 없지 않잖아요. 게다가 운동 했으니 위계질서도 상당할 텐데요.
- 홍/ 작년에 처음 감독 되면서 그 부분을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국가대표 코치 생활을 했기에 선수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애들이 초등학생들이고 그래서 선수한테 쉽게 다가오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빨리 깨려고 노력했어요. 편안하게 대해주고 거리감 없이 적극적으로 의사 소통 하고. 그러다보니 선수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구요.
- 김/ 제일 큰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희도 사회생활 하면서 굉장히 힘들거든요.
- 홍/ 어떤 부분을 보면 선수들이 마음 열었다는 것에 대해 정확히 모르긴 해요.
실수는 2가지가 나뉘는데 개인적 실수와 팀 조직적 실수에요. 저는 조직적 실수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개인적 실수는 유럽 A급 선수도 하잖아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했어요. 패스 미스하는데, 자꾸 저를 힐끗 힐끗 쳐다보더라구요. 저는 왜 저를 보는지 알죠.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 않았어요. 실수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게. 그러니 자신감 생기고. 그러면서 선수와 제 관계가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저 감독은 실수를 해도 우리를 믿어주는구나. 그게 선수들에게 기본적으로 있는 듯 해요.
8일 광저우 웨슈산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축구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명보 선수. (김창길기자)
- 김/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느낀 게 투영되는 것 같아요.
- 홍/ 배운 것도 있지만 선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죠.
- 김/ 하다 못해 조기 축구를 해도 흔히 말하는 '개발'이라고 하면서 비난하는데. 그때 실수 해도 되게 눈치 보이고 쥐구멍에 숨고 싶잖아요. 저같은 사람도 위축이 되는데 선수들은 더하겠죠. 근데 그럴 때 감독이 그렇게 봐주면.
- 홍/ 자신감이 생기죠.
- 김/ 나중에 더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겠어요.
- 홍/ 내가 선수들에게 끌어내고 싶은 게 바로 그 부분이에요. 항상 잘못했다고 지적만 하면 선수들이 나중에는 챌린지 하려고 하지 않죠.
- 김/ 시도 자체를 겁내게 되죠.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들어야 하는 건데.
(김정근 기자)
- 김/ 아시안 게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떠십니까. 올림픽도 그렇고요. 사실 후반부에 질문 드리려 했는데 이런 인터뷰는 딱딱하죠. 그리고 이런 인터뷰는 많이 하기도 하구요. 그럼 조기 축구를 하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 홍/ 아마추어 분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보는 눈은 감독 못지 않게 프로페셔널 하시더라구요. 조기 축구에 가면 실수도 많이 하시더라구요. 2가지 정도만 고치면 축구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 김/ 굉장히 중요한 얘기에요.
- 홍/ 골 컨트롤과 패스에요. 축구에서 제일 중요하죠. 운동 삼아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마추어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볼 컨트롤이에요. 상대가 오고 수비가 오면 그 다음 동작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기본 골 콘트롤 안 되니 부상을 당하고 볼을 뺏기게 돼요. 이 2가지만 잘하면 조기 축구회 분들도 잘 할 듯 싶어요.
- 김/ 알죠. (하하) 그게 잘 안되니.
- 홍/ 연습을 해야죠.
- 김/ 지난 월드컵 한국과 스위스 전을 경기장에서 봤거든요. 스위스전 하는 거 보면서 상암에 월드컵 경기장 모인 분들을 보며 이원생중계를 했어요. 전반에 지고 있을 때 방송이 안될 텐데, 관중이 침체 돼 있는 거 같아서요. 1:0으로 지고 있었거든요.
그때 태극기를 들고 운동장을 뛰었어요. 그러고 나서 앞으로 절대 축구 보며 욕하지 말자고 했어요. 두 바퀴 뛰었더니 죽을 거 같더라구요. 보는 사람들은 쉽게 “저걸 씨” 이러잖아요. 선수들을 위해서 변명, 아니 변명이라기보다 '우리 선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차이가 있다'고 말해주신다면?
- 홍/ 실질적으로 축구를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고 에너지 소모도 많아요. 42.195km 마라톤 뛰는 거 정말 힘들죠. 요즘 축구는 굉장히 빨라졌어요. 정말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요하거든요. 그런 건 정말 편안한 상태에서는 잘 할 수 있죠.
하지만 경기 중에 사이드에 있던 선수가 오버래핑해서 60m를 풀 대시하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그게 힘들죠. 계속 뛰는 건 체력적인 면이지만,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 좋은 판단을 하기는 어렵죠. 보자마자 바로 어느 쪽으로 줘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죠.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도 봐야 되고.
- 김/ 플레이만 하는 게 아니라 경고 몇 장 받았는지 표시 해줘야 하고. 축구도 그러고 보면 사람과 비슷한 거 같아요.
- 홍/ 인생의 축소판이에요.
- 김/ 축구가 인생 축소판이라고 하셨는데, 수비수로서 어떤 인생을 사셨나요?
특히 저는 정 중앙 골키퍼 앞에서 경기를 봤죠. 저 역시 경기를 읽는, 우리 팀 상황 어떤지, 어디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생각하면서 경기를 했어요. 선수들의 경기력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수 생활했던 거 같아요.
그런 수비수한테는 인생에서도 빨리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 상황에 무엇이 필요한지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이 부족한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 김/ 말씀을 듣다 보면 개인적 이야기가 거의 없으신 것 같아요. 주로 팀 생활을 어떻게,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하시네요.
- 홍/ 축구는 경기장 안에서 보면 1:1 경기거든요. 하지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팀 힘이 중요해요. 그래서 팀 스포츠죠. 모든 사람이 1:1에 강하면 팀도 강하다. 1:1 경쟁 선수를 묶어 주는 팀의 힘이 있으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축구에서 항상 강한 팀이 이기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이유거든요. 항상 선수들에게도 강조하지만 팀이란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훌륭한 감독이나 선수도 팀 위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 팀 위에서 이뤄지는 거죠. 팀에 대한 걸 늘 강조해요.
- 김/ 이제 자연스럽게 월드컵 이야기로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예전에 박지성 선수도 "개개인 능력은 모르겠지만 팀으로 보면 뒤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한 적 있잖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개개인 능력은 각 팀에 비해 뒤진다. 하지만 팀으로 봤을떄는 뒤지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 홍/ 우리 선수들이 자라온 환경이 많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팀 희생이라는 걸 많이 배우죠. 외국 선수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힘들이 우리 한국 팀의 강점이죠. 거기다 개개의 면 놓고 본다고 해도 우리 선수 기량이 예전만큼 뒤지지 않아요. 좋은 기량을 갖고 있는 데다가 팀의 힘이 더해진다 하면 한국팀이 강한 팀, 무서운 팀이 될 거에요.
- 김/ 이번 축구 어떻게 보시나요?
- 홍/ 흥미롭고 기다려져요. 그동안 저희가 원정 경기에서 아직 16강에 한번도 못 들었는데 이번엔 16강에 들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 김/ 그러면 저는 또 알코올 중독자 수준으로 갈 거 같은데. 알코올 중독 되도 좋으니 갔으면 좋겠어요.
- 김/ 축구는 엄청난 즐거움이잖아요. 거의 세계 전쟁 수준이기도 하구요. 왜 그럴까요? 축구라는 게 가장 강력하게 몰입되는 스포츠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원시적이라 그럴까요? 장성한 사람들이 진짜 공 하나 놓고 달려들고 하니까.
- 홍/ 꼭 애들 싸움처럼...
- 김/ 원시적인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겠죠.
- 홍/ 축구는 각국 전쟁이에요. 특히 월드컵이란 큰 이벤트에서는요. 물론 다른 스포츠도 경기 결과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심지어 일본은 '요미우리 자이언트'가 어제 경기에 졌느냐 이겼느냐에 따라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요.
- 김/ 시민 표정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 홍/ 축구는 세계적 스포츠잖아요. 그런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전쟁은 못하잖아요. 대신에 축구를 통해서 자기 나라의 힘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축구가 갖는 힘이 꽤 크죠. 유럽에서 축구는 하나의 문화에요. 그 사람들은 자기 일, 가정, 그 다음에 축구를 꼽아요.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큰 문화죠. 앞으로도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 김/ 축구 선수들을 보면 요즘 흔히 말하는 '몸짱'이잖아요. 기계로 만든 듯한 인공적 근육보다, 진짜 야생마들의 느낌이에요. 여성분들한테는 섹시한 느낌을 주는 스포츠인 것 같아요. 원초적이고 원시적으로 공 하나 보고 달리고 환호하고. 말 근육은 특별히 만드는 방법 없잖아요. 그냥 뛰는 거죠.
-홍/ 축구 선수들의 상체는 그렇게 좋지 않아요. 다리도 그렇게 두껍지도 않구요. 다리가 두꺼우면 물론 힘 있어 보이지만 실제 축구에는 별로 좋은 형태가 아니거든요. 우리 선수들을 보면 다리가 얇고 잘 빠진 선수들이 축구도 잘해요. 그건 어릴 때부터 계속 단련돼서 그런 거죠. 말 뒷다리 보면 쫙쫙 갈라졌잖아요.선수들 다리도 그런 형태에요.
- 김/ 어떤 분 칼럼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구요. "다져진, 만들어진 근육보다 원초적으로 오로지 공 하나만 보고 달리는 선수들 다리를 보면 행복해진다."
- 홍/ 선수들이 웨이트 운동 하는 게 보강훈련이에요. 특별히 다리 근육을 불리기 위해서는 훈련 안해요. 축구에는 별 영향을 못 주니까요.
(김정근 기자)
- 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국민이 가장 원하는 차기 감독님이시잖아요.
- 홍/ 일단 2012년까지는 개인적으로는 일 할 거예요. 그 다음 계획에 대해 조금씩 생각 하고 있어요. 월드컵 대표팀은 개인적으로 전혀 생각 않고 있어요. 잘해서 될 수도 있겠지만 2012년까지 하면 거의 7~8년 동안 대표팀에 있는 거잖아요. 사실 저한테도 필요한 게 있는데,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축구 최고봉 자리잖아요. 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에 맞는 능력을 비롯한 모든 게 갖춰져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하고 있어요. 2012년 올림픽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요.
- 김/ 말씀 들어보니 교수님이나 학자같아요. 왜 그럴까요?
- 홍/ 하하.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 김/ 사람들이 보는 이미지도 그렇고 스캔들이나 그런 것도 없었고. 사실 이승엽 선수가 운동 그만둔 후에 되고픈 역할 모델이시거든요. 어떠세요? 본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본인과 일치한다 보시나요? 어떨 때는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 홍/ 부담스러운 거라면?
- 김/ 예를 들어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웃긴데 못 웃는다든가. 저는 산에 가면 헉헉 거리면서도 못 쉬어요. 사람들이 산 잘탄다 하니까요. 쉬고 있다가도 "산 잘 탄다면서요" 하면 또 걷고.
- 김/ "굉장히 '저거'해요"라는 표현에서 많은 게 느껴지네요.
- 홍/ 골프장에서 캐디 2~3명만 봐도 신경 쓰여요.
- 김/ 작은 공간인데.
- 홍/ 내성적이니까요. 즐거울 때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죠. 성격적으로.
- 김/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생각 안해보셨나요?
- 홍/ 그런 건 전혀.
- 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세요? 무릎팍 도사나 이런 데요.
- 홍/ 그런 데 나가면 기쁨을 줘야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재미 없게 할 수도 있으니. 서로 피해를 주는 거잖아요. 방송 시청률도 그렇고...
- 김/ 내성적이라는 거 상상도 못 했는데, 말씀 하시면서 뭘 뜯으실 줄 몰랐어요. 굉장히 매력적인데요. 전 무대위에서 마이크 잡을 때는 괜찮은데 3~4명 있는 자리에서는 적응이 힘들어요. 팔자라는 게 있나봐요.
- 홍/ 축구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고.
- 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아니고, 왜 클라크가 슈퍼맨 옷 입었을 때 같은 느낌인가 봐요. 내성적인 성격도 없어지고 축구선수로 몰입하는...
- 홍/ 축구 안 했으면 어떤 사람 됐을까 궁금해요.
- 김/ 어떤 사람 되셨을 것 같아요?
- 홍/ 그런 생각 한번도 안 해봤어요. 성격상 운동 안했으면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 김/ 여성적인 면도 많은 거 같아요. 되게 섬세하시고.
- 홍/ 축구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꼼꼼해요. 다른 건 그렇지 않지만. 축구를 통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점도 많이 배웠고, 지금도 그걸 바탕으로 살아요.
조직적으로 된 걸 좋아해요. 아이들과 선수들에게도 '이 시간에 뭘 해야 하는지'와 같은 시간 개념에 대해서 많이 강조해요. 축구를 통해서 많은 덕도 받지만, 어려서부터 축구를 통해서 배워왔던 걸 가정이나 사회생활, 지금 역할에 적용하곤 해요. 지금은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 홍/ 큰일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제가 그런 일 함으로써 누군가 고마운 걸 느끼면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많이 사랑도 받았고, 팬들의 환호도 받았기에. 이걸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지금은 축구 선수가 아니니까 사회 환원하는 거죠. 지금 감독 역할을 잘하는 것도 환원이지만, 사회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생각해요.
-김/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배웠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감독님은 어렸을 때 축구 외에 아무 것도 생각 안해봤다 하셨지만. 축구를 통해서 인생 활력소를 찾으려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축구를 통해 아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게 있다면?
- 홍/ 요즘 애들은 형제가 적어서 자기밖에 모르죠. 그리고 부모들이 그렇게 만들어요. "너만 해야 돼."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이기주의가 많이 배어있는데, 어떻게 보면 어른들 잘못이죠. 아이들이 축구 하면서 나 말고 내 옆 친구에 대해 알기를 바라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늘 협동심에 대해 이야기해요. 성인이 돼 축구를 하든 않든, 회사를 다니든 아니든 그 안에서 중요한 건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협동심으로 나 말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축구는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팀 스포츠잖아요. 축구를 잘하라는 이야기은 아이들에게 안해요.
- 김/ 졌을 때는?
- 홍/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라고 하죠. 어떤 아이들은 인정 않고 싶어해요. "오늘은 지는 게임 아닌데 졌다."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 김/ 깨끗이 받아들여야 나중에 또...
- 홍/ 쉬운 일이 아닌 거 같다.
2009년 12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의 자선경기 '셰어 더 드림 풋볼매치 2009(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09)'에서 희망팀 선수들이 김민우의 골이 터지자 '엉덩이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김/ 축구 선수 시절 '이 경기는 정말 뼈아프다. 이 경기만큼은 지고난 뒤 정말 힘들었다.' 그런 게 있나요?
- 홍/ 93년 카타르에서 일본한테 1:0으로 진 거요. 그것도 그렇고 아시안컵 때 6:2로 이란한테 진 것도요. 그 경기는 참 너무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어이 없게 졌거든요. 정말 최선을 다했을 때 지면 괜찮은데 아무 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진 건 참 찜찜해요. 여러 게임을 많이 했지만 제가 진 경기 중에 가장 머리 속에 남아요.
- 김/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 홍/ 월드컵 예선은 일본에게 1:0으로 져서 자력으로 나갈 상황 아니었기에 침체됐죠. 아시안컵 경우도 6:2로 참패 해서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당시에는 빠져 나올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세월이 약인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 잊혀지고 마음도 원 상태로 돌아오고.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
- 김/ 특별히 패배에 대한 자세가 있을까요? 오로지 세월. 그게 사실 제일이죠. 그것 밖에 없는 거 같아요.
- 홍/ 감독이기에 지금은 무엇이 부족해서 패배했는지를 분석하겠죠.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 생각도 할 거구요.
- 김/ 선수, 감독 어떠신 거 같나요?
- 홍/ 선수일 때가 좋은 거 같아요.
- 김/ 감독으로 "야, 야, 이거 하고 해." 하면 멋있고 편할 거 같아요. 멋있어 보이고 그런 게 있잖아요.
- 홍/ 감독 돼 가장 좋은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결정을 내가 내리잖아요. 물론 책임이 따르지만요. 그게 제일 좋아요. 감독해서 좋은 건 그것 말고는 없는 거 같아요. 선수 때가 좋은 거 같아요. 감독 돼서는 선수 눈치도 봐야 하고, 기분 어떤가, 어떤 생각하나 알려고 노력도 좀 해야 하잖아요. 작년 청소년 대회 나가면서 한국 걸그룹들 노래 맨날 듣고 있었어요.
- 김/ 허허. 어린 선수와 호흡 맞추기 위해서?
- 홍/ 맨 처음엔 '얘들이 누구냐' 했었는데 요즘 다 알죠.
- 김/ 감독님 좋아서 들은 거 아니고요?
- 홍/ 자꾸 들으니 좋더라고요.
- 김/ 누구?
- 홍/ 2NE1 노래 작년에 많이 들었죠.
- 김/ 우리 축구할 때, 흔히 이런 말을 하잖아요. "야, 요즘 다르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린 선수들 대하면서 요즘 어린 선수들이 어떤 것 같으세요? 요즘 젊은이들. 축구 선수든 인생 선배로서든.
- 홍/ 글쎄 뭐 저희와 가장 다른 점은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스로를 어필하려고 하고 안될 경우에는 뭔가 대화를 통해서 하려고 하구요.
예전에 운동할 땐 감독과 이야기하는 거 싫어했거든요. 요즘 선수들 방으로 직접 찾아 와서 "이런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된다" 하면서 말해요. 자기가 뭔가 보여주고픈데 시간이 부족하다든지 그러면 서슴없이 이야기해요. 나이든 분들이 보면 건방지다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좋아해요. "니가 몰라? 그럼 알려 줄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죠.
- 김/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겠어요. 대견하면서도.
- 홍/ 처음에 조금. 사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라고 시작했기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나에게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고, 어려우면 코치에게 물어봐라. 항상 코치에게 물어보라고 이야기 했거든요. 당황스럽고 그런 건 별로 없었다.
- 김/ 수직적 리더십보다는
- 홍/ 수평적인 리더십이죠. 팀 안에 모든 게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훌륭한 선수도 팀 위에 있을 수 없어요. 좋은 방법이 아니죠. 팀 안에서 방법을 찾는 게 좋아요.
- 김/ 밖에서 보면 아직도 팀 주장 같아요.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고, 감독님이지만 주장 같은. 그런 리더십을 바라는 거죠. 개인적으로 바라는 리더십은?
- 홍/ 개인적으로 바라는 감독 역할은 지장, 덕장, 맹장 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 갖추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축구장 앞에서 덕장이라고 하면 이야기만 잘 해주고 제일 중요한 축구를 안 가르치면 안돼요.
중요한 것은 축구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죠. 좋은 걸 가르치기 위해서는 지장이 돼야 해요. 밖에서는 좋은 관계를 위해 덕장이 돼야하죠. 시합 나가서는 감독이 보는 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맹장돼야 하는 거고. 그런게 욕심이에요. 이왕이면 감독 역할 위해 갖췄으면 해요.
- 김/ 다 갖춘 거 같으신데요?
- 홍/ 아직 시작이니까요. 그런 거 갖췄다고 하기에는 무리고요. 노력해야죠.
- 김/ 걸그룹 노래 듣는 건 덕장 면모 위한 거죠?
- 홍/ 그렇죠. 서로 머릿 속으로만 말하면 잘 모르니까. 그런 걸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화 공통점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다못해 넌 요즘 누가 좋냐. 난 누가 좋다. 이런 얘기라도.
- 김/ 선수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 홍/ 코치들 이야기 들어보면 많이 놀라는 듯 해요. "감독님 그런 노래도 아세요?" 하면서. 감독님도 CD갖고 다닌다 하니까.
- 김/ 원래 좋아하는 노래는 뭐예요? 소통 위해 배운 거 말고요.
- 홍/ 발라드 좋아해요.
- 김/ 누구?
- 홍/ 누구라고 특별히 말하기 보다는.
- 김/ 곡목이라도.
- 홍/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 김/ 센스 있는 선수들이라면 감독님에게 와서 "감독님 때문에 이거 들었어요." 하면서 자기들도 그런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 홍/ 저는 옛날 노래 좋아해요.
- 김/ 저는 김광석 노래요.
- 홍/저도. 서른 즈음에. (아이폰에는 먼지가 되어, 사랑인걸(모세), 미스터투 노래 등등이 수록돼 있었다.) 요즘 노래 잘 몰라요. 옛날에는 해외 원정 가면 노래 많이 들었어요. 당시 워크맨 CD플레이어 썼는데 축구화 하나 덜 챙겨가도 음악 하나 더 챙겨 갔어요.
- 김/ 실제로 경기에 도움되죠. 박태환 선수 봐도 버스에서 음악 많이 듣고.
- 홍/ 마인드컨트롤 하죠.
- 김/ 경기 직전 듣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홍/ 경기장 들어갈 때 꽂고 가던 세대가 아니라 방에서만 들었는데. 자기의 리듬 찾는 거 같아요. 오늘 어떻게 해야겠다는 기본적 생각도 들고. 좋은 상태로 가기 위해서 자기 리듬 찾는 거라 생각했어요. 적극적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홍명보 선수. (서성일 기자)
- 김/ 2002년 월드컵 전날, 되게 많이 떨렸을 거 같아요.
한번도 이겨 본 경험이 없는데, 한국에서 열리고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이겨야겠다' 하는 생각보다는 '지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어요. 우리가 여기서 지면 큰일난다는 게 심적으로 압박이었어요. 여기서 지면 큰일나는데. 그래서 굉장히 고통스러웠죠. 2002년 월드컵, 개막 며칠 남겨뒀을 때는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됐어요.
- 김/ 저도 공연, 콘서트 이런 거 있으면 정말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엄청난 압박감이 오더라구요.
- 홍/ 특히 2002년에는 심했어요.
- 김/ 어떻게 견뎠나요?
- 홍/ 글쎄 견뎌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머릿 속엔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죠. 긍정적으로 생각 해야 하지만, 실제로 긍정적인 생각이 힘들었어요.
"이길 수 있어 이겨야 돼." 이런 생각도 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더 힘들었죠. 그 당시에는 방도 맨날 혼자 썼어요. 훈련 시간 외에는 혼자였죠. 그런 거 참고 넘기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때 35살이었거든요. 나이도 많고. 더 중요한 건 경기력이 좋아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됐죠. 팀 주장으로서 팀원도 콘트롤 해야 하고. 2002년 끝나고 나서는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하기 전에 고통의 시간이었죠.
- 김/ 외로웠겠어요.
- 홍/ 외로웠죠. 그때 할 수 있는 게 와이프하고나 이야기하는 것 정도? 선수들하고 한다고 하지만, 하나의 선수로 나가야 하는데.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어요.
- 김/ 축구 대표 주장이 아니라 전 국민의 주장이었겠어요, 그때는. 압박감이 외로움이 돼서 오고. 그때 마음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었던 선수, 도움된 선수가 있다면?
- 홍/ 그때는 내게 이런 도움이 됐다 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었어요. 사실 저는 경기 못 나간 선수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축구라는 게 팀 스포츠고, 월드컵 팀은 제일 잘하는 23명 뽑아 놓은 건데 11명만 뛰잖아요. 나머지는 밖에 있고.
이 선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릴 때부터 봐왔고, 팀이 잘못됐을 때에는 이런 원인 있구나 하고 알았기 때문에 그 선수들을 많이 챙겼죠. 김병지, 이민성, 이런 친구들이요. 그 선수들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이해도 해주고 다독거리기도 하구요. 그 선수들 있었기에 저 또한 그런 역할 하면서 보내다 보니 서로 좋았어요. 경기 나간 선수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하는 거죠.
- 김/ 항상 뒤에 계시는 분들, 더 힘든 분들에게 신경 써주는 것.
- 홍/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김/ 그러면서 본인이 더 치유를 받는 것 같아요.
- 홍/ 같이 공유하는 거죠.
- 김/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겠죠.
- 홍/ 예. 예를 들어 작년 청소년 대회 나가기 전에 파주 센터에 매일 청소해주는 아주머니, 일 해주는 아저씨들, 사우나 고치는 아저씨들 다 불러서 인사했어요. 선수들 떠나기 전에 제가 대표로 "여기 있는 동안 너무 큰 도움 받고 갑니다. 즐거웠고 고맙습니다." 선수들이 인사 드리니까 아주머니들이 깜짝 놀라셨어요. 지금까지 대표팀 많이 들어왔지만, 그런 팀이 없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청소년 대회를 나가는데 우리를 성원해주는 가족도 있고 축구팬도 있지만, 진심으로 우리를 성원해 주는 사람이 누구냐. 너희가 인사를 하고 와서 그분들은 그런 걸 처음 받아 봤기에 그분들은 어떤 분보다 대표팀을 성원해줬을 것이다. 뒤에 계신 분들이 어떤 마음 갖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줬어요. 팀에서 궂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하죠.
- 김/ 마음이...
- 홍/ 마음이죠. 다 사람이 하는 건데 어떤 마음 갖고 하느냐가 중요해요.
- 김/ 일해주는 분들은 뭐라셨나요?
- 홍/ 놀라시고 지금도 가면 항상 따뜻하게 해주세요. 특히 20세 선수들에게 애정이 있어요. 맨날 선수들 보는데 선수들 예절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세상에서 가장 가르치기 쉬운 게 예절이에요. 인사 하라 하면 하죠. 하지만 어려운 것도 예절이죠.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라. 정중하게 존경심 갖고 대하라고 선수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그런 것들이 선수 성원해주는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이상훈 기자)
- 김/ 굉장히 멋있어요. 인터뷰 내내 드는 생각이 남자인 제가 봐도 매력적인데, 결혼 하셨지만 여성 팬들이-
- 홍/ 요즘은 별로 그렇게. 관심갖는 사람이 없어요.
- 김/ 서운한가요?
- 홍/ 그렇지 않아요. 선수들이 여친이나 팬들에게 선물 받아 오고 하는 거 보면 보기 좋아요.
- 김/ 월드컵 난리났죠.
- 홍/ 그때는 많이...
- 김/ 경기 때 승부차기 하고 난 후에 처음으로 온 국민이 환하게 웃는 모습 봤다고 하잖아요. 세상 다 가진 거 같은 표정으로.
- 홍/ 솔직한 심정은, 내 앞에 4명 있는데, 한놈만 못 넣어라. 같이 죽자. (허허)
- 김/ 솔직한 심정으로.
- 홍/ 4명 다 넣고 나만 못 넣어서 진다면 이민 가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페널티킥 성공하고서는 4강 진출 생각 못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압박감 벗어났구나 생각에 기뻤어요. 이겼기에 좋았던 것도 있었고.
- 김/ 생애 최고 압박감을 좋게 벗어난 거잖아요. 이민 안 가도 되겠구나... 저는 못할 거 같아요.
- 홍/ 감독님한테 "왜 나를 5번 써놨냐고..."
- 김/ 뭐라시던가요?
- 홍/ 경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어떨 때는 경험 없는 게 좋은 거 같기도 해요.
- 김/ 아유, 저는 뭐 생각하니... 인터뷰 막바지네요. 감독님이 축구 팬들에게 고마운 게 있다면? 우리 팀, 우리 선수들, 젊은 선수들을 이렇게 해달라, 격려해달라 이런 게 있다면?
- 홍/ 그 점에 있어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축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거예요. 선수들이 외국 가고 하는데, 현실성 있게 축구 관련 분야에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팬들에게는 관심 가져달라고 이야기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렵죠. 선수들이 나설 때 경기장 많이 찾아오라는 말을 해요. 우리 몫은 찾아 오게 만드는 것이죠. 서로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가야죠.
- 김/ 앞부분 말씀은 조금 더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홍/ 축구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외국 나가는데 드래프트 말도 많이 나오잖아요. 행정도 좀 더 발전적인 형태로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부분은 아직 미비하니까요. 이 연령대 선수들 고민도 들어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뛰고픈데 조건 자체가 안돼 외국 나가서 뛰잖아요. 대안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김보경, 이승렬 이런 선수들이 한국에서 뛰면 얼마나 많은 팬이 축구장에 오겠어요. 우리 선수들이 쟤가 누군지 궁금할 거 아니에요. 잘 뛸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김/ 그 제도를 위해서는 팬들 뒷받침이 절대적인 거 같아요. 그런 선수 오면 축구 팬도 늘 거고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행정, 감독, 선수와의 유대관계. 한국 축구의 고리고리마다 감독님 없는 걸 상상 못하겠어요.
- 홍/ 그렇진 않고요
- 김/ 아이 그렇다고 하세요. 하하.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전화번호 혹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꾹꾹 눌러줬다.) 괜찮으시면 제가 가끔 전화 드려도... 트위터 올라오는 거 보니까 국가대표 감독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많던데요. 해설 계획 없으시냐는 말도 많고.
- 홍/ 제의는 많이 받았는데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 김/ 깜짝이라도. 지금은 그럴 시간 없잖아요. (트위터 보면서)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아저씨라 불러야 하나.
- 홍/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요.
- 김/ 어떻게?
- 홍/ 30대 후반이면 오빠라 불러야 하지 않겠어요?
- 김/ 이 질문은 좀 그런 거 같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듣고픈 것이죠. 월드컵 성적은?
- 홍/ 16강 진출 예상하고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지 또...
- 김/ 그렇게 될 거 같아요. 그렇게 돼서 저도 좀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보도 전제로 하면 어떻게 보나요?
- 홍/ 50:50이라고 봐요. 저희 월드컵 나갔을 때 당시에는 언론에서는 할 수 있다 했지만 실질적으로 갭이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 갭 자체가 줄었어요.
수비가 관건이라 생각해요. 우리 공격진 같은 경우 충분히 찬스를 만들 수 있어요. 수비에서 어이 없는 실점하거나 그렇게 하면 힘들 거예요. 그리고 첫 경기가 중요하죠. 이게 2002부터 달라진 거예요. 그 전에는 우리가 플레이를 못해서 졌었는데 이후부터는 역할들을 잘 하고 있죠. 당시에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뛰는 거였어요. 상대보다 무조건 많이 뛰자. 근데 축구가 뛰기만 하면 뭐해요. 볼이 많이 움직이게끔 해야죠. 그런데도 당시 우리는 볼보다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중요시 했어요.
-김/ 진짜 마지막 부탁인데요. 선수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걸그룹 노래도 듣고 하시는 것처럼 젊은 세대들이 형님처럼 듣고픈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감독님이 아닌, 선배로서 위로라면 위로고,격려라면 격려로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 김/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없는 쪽을 택한다.
- 홍/ 그렇죠. 쉽지 않지만, 거기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다면. 젊을 때 도전하고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는 그게 삶의 큰 활력소가 되고 경험이 될 거예요.
- 김/ 감독님의 축구 스타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창의적이고, 실수하더라도.
- 홍/ 선수들에게 제일 요구하는 게 그런 거예요. 어느 누구도 대신 판단해 줄 수 없다. 니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 김/ 격려 해주는 감독님처럼 사회 분위기도 그렇게 돼야겠죠. 격려 해주고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게 뒷받침해줄 수 있고.
- 홍/ 제일 중요한 거죠.
- 김/ 요즘은 실수하면 윽박당하고... 아까 말처럼 벤치 선수도 일원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는 것 같아요.
- 김/ 전 야구 좋아해요. 안 좋아하시나요?
- 홍/ 어렸을 때 야구했는데, 축구 하고부터는 안해요.
- 김/ 일요일에는 야구하고, 수요일은 중학교 잔디 깔린 데서.
- 홍/ 야구의 어떤 게 제일 좋아요? 치는 묘미? 느낌?
- 김/ 비유를 이렇게 하면 안되지만, 개랑 놀 때 공 던지고 물어오면 재밌잖아요. 개도 아니고 사람들이 우루루 가면 통쾌해요. 내가 친 공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쫓아가고. 사회인 야구에서도 9회 이사만루 들어가면 죽을 거 같아요.
제가 야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축구도 그렇지만 정해진 룰을 돌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삼세번. 삼회씩 9회. 삼연전. 공 3개면 아웃. 그리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놈이 하는 거니까. 승엽이...
- 홍/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는 건 좋은 거죠.
- 김/ 팔에 승엽이 보호대를 차요. 원래 정강이에 차고 하는 건데 승엽이 꺼라서 무릎까지 와요. (ㅎㅎ)
- 홍/ 일본 요미우리 보고나서 느낀 건데 야구는 극적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극적 스토리. 축구는 90분 경기 끝나기 전에 한 골 들어가고 이겼다, 끝냈다가 다인데 야구는 그런게 많이 있는 거 같아요.
- 김/ 승엽이에게 해주고픈 말은?
- 홍/ 글쎄, 지금 이승엽이란 선수는 참 힘든 시간이죠. 아껴둔 상황에서 나이도.
- 김/ 76년생. 35살.
- 홍/ 앞으로 향후 몇년 후 은퇴도 생각하게 될 거예요. 지금 많은 생각 할 거 같아요. 지금 일본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입증 돼 있잖아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한 텀을 주는 거 같아요. 지금 현역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지금 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저도 승엽이랑... 일주일에 3~4번 통화해요. 베이징 올림픽 갔더니 기억하더라구요.)
- 김/ 애가 착해요. 순하게 생겼잖아요. 순둥이.
(스타인데 기자들에게 편하게 대하는 선수 잘 없다. 승엽이는 굉장히 잘 한다던데. 홍감독님도 기자 초청해서 밥도 사먹이고 하시던데요?)
- 홍/ 일본은 그런 게 잘 안돼요. 근데 나한테 뭘 알고파 하면 적극 이야기 해주죠. 시간 남으면 해주고요. 개인이나 구단의 홍보가 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 김/ 사람에 대한 배려죠. 기본적으로. 감독님이 제일 강조하는 거죠. 너무 영광이다. 술 잘 안하죠?
- 홍/ 잘... 집에서 캔 맥주하는 거 좋아해요.
- 김/ 50분 코스로 산에 올라 가서 막걸리 꽝꽝 얼린 거 갖고 가면 막걸리에 살얼음이 있고. 캬.
- 홍/ 건강을 위해 산에 가는 건가, 막걸리 맛있게 먹기 위해 가는 건가요? (웃음) 산에 가는 사람 반은 술맛 좋게 하기 위해서 가는 사람 많은 것 같아요.
- 김/ 인터뷰 후반부터 상황 역전됐다. (ㅎㅎ) 많이는 안 먹으니까요. 그때 거기서 먹는 맛은... 산에 가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아요. 생각하러 가는 게 아니라. 요즘 어디 들어갈까 생각도 하고 있다. 산에 갈까, 그랬더니 제 후배가 그러더라구요. 정곡 찔러요. 산에 들어갈까 심난하다. “형, 산에 들어가도 일이 많아. 심난한 건 똑같애”라더라구요.
- 김/ 오히려 30대 초반엔 괜찮았는데 30대 후반되면서 언저리에서 어떤... <환상의 짝꿍> 보니까 부모랑 8살짜리 애들이 나오는데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고, 학부모니까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비슷해요. 지금. 어제는 녹화했는데, 학부모가 31살이더라구요. 그러니까 나는 뭐했지 나는 이런 생각 들죠. 애들 보면 귀여운 차원을 넘어서서 내 새끼였으면 좋겠다 싶어요. 미치겠어요. 결혼... 해야 되죠?
- 홍/ 해야죠. 애도 낳아야 되고. 인생의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고비가 오는데 30살 넘어가고 하면 결혼이라는 걸 해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야죠.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결혼하는 게 좋은 거 같다. 소개팅 많이 안하나?
- 김/ 경쟁이 싫었어요. 지는 게 두려워서 심판이라는 자리에서 뭔가 방어벽을 쳤던 거 같아요. 다른 애들은 썰매 보면 칼날 같은 걸로 만들어오는데 저는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서 암만 보고 낑낑거리고 흉내를 내도 자세가 안 나오더라구요.
그때부터 경쟁이라는 걸 무서워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는 게 두려워서 승부 자체에 뛰어들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해요. 소개팅도 항상 주선자에요. 차이면 너무 아플까봐 항상 주선자.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하고요. 잘생긴 감독님은 모를 거야. 뭘 알겠어요. 감독님이...
- 홍/ 난 여자를 2~3번밖에 안 만나봤어요. 관심도 별로 없었고. 나도 못 만날 줄 알았어요. 포항 촌구석에서 어떻게 장가 가냐고.
- 김/ 어딜 가야 되지.
- 홍/ 산엔 없어요.
- 김/ 산에 가니까 중독되는 거 같아요. 자꾸 거기가 아른거리고. 옛날에 예쁜 여자 봤을 때 느낌. 우연히 봤는데, 이름 없는 산인데 너무 예쁜 거 있잖아요. 되게 예쁜 여자분과 부딛혀서 책 떨어진 거 같아요.
- 홍/ 나도 산 좋아해요. 산에 가면 내 몸을 혹사시켜 힘들잖아요. 혹사시키는 게 재밌어요. 그게 좋은 거죠. 어렸을 때 극한 상황까지 운동했으니까. 운동장 가서 운동하라면 싫은데 산에 가면 그 힘든 걸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나중에 시간 되면 에베레스트 산 한번 가 봐요. 난 재작년에 가봤어요. 베이스캠프까지는 못 가고 4100m까지 올라갔다 왔어요. 올림픽 끝나고 첫째 애하고 갔죠.
- 김/ 제 꿈을 미리 하셨어...
- 홍/ 참 좋은 거 같아요. 산에 가면 첫째로 겸손. 절대 산에 대해서 내가 산을 정복했다 이런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산이 나를 허락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 김/ 하다못해 동네 산에 가도 진짜 날마다 달라요. 봄 여름... 저는 그래서 친구들끼리 산악회... 4명 모여서 이제, 우리끼리라도 산 타러 가요. 산에 업히러 가는 거죠. 겸손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산이 주는 그런 느낌 있는 거 같아요. 감독님도 보면 산이시죠. 본인 학대할 거 아니에요. 감독님처럼 되려고.
- 홍/ 요즘 선수들 다 열심히 해요.
- 김/ 저하고 산에서 누가 더 빠른지. 혹시...
- 홍/ 산 근육은 또 틀려요.
- 김/ 어렸을 때 축구하면 욕 많이 먹었어요. 최전방 공격수 한번 시켜줬을 때... 운동 잘하는 친구가 그랬어요. "저 앞에서 흙먼지 일으켜서 골키퍼 못 보게 해." 말 시키라고. 군대 있을 때는 축구 잘하는 사람이 사격 잘하는 사람보다 더 최고죠. 너무 스트레스 줬어요. 순발력도 없고요. 가장 100m 빨리 뛴게 16.8초.
- 홍/ 여자 스피드네.
- 김/ 그렇죠. 그만큼 순발력 없고. 오래 달리기는 좀 했는데... 아예 축구는 지금도 야구 하잖아요. "저 새끼는 베이스를 오르막으로 해야 돼. 산에 갈 때는 참 잘 가는데 평지는 왜.", "쟤 뒤에 누가 엎혀있는지 보라고." 제가 초등학교 여자 근력이래요. 2루타 한번 치는 게 소원이에요.
- 홍/ 나 홈런치면 2루타만 해줘라, 하지.
- 김/ 운동에 재질 없어서 운동하는 분들이 부러워요. 운동하는 분 너무 힘들겠지만... 부럽죠.
(올해 자선경기 하세요. 한번 선수들 한번 뛰죠. 승엽이랑 같이)
- 김/ 수비는 좀 해요. 좀 늘어서... 제가 저번에 할 때 3골인가 넣었는데...
- 홍/ 3골 넣었으면 뭐...
- 김/ 그날 되게 스트레스 풀려고. 후배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비키라고 했다. 너, 나와 이 자식아... 군대 있으면 대대장이 골 제일 많이 넣으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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