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에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에서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해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섬진강과 시인이 만나면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게다가 봄이라면?
가는 길에 평소 김 시인을 좋아하는 DJ 유라 누나(최유라)에게 자랑삼아 전화했다.
“너 그거 알아. 예전에 김 선생 시로 내 남편을 잡았잖니?”
“연애하려고 시를 읽었군요.”
시인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썼으니 마음이야 ‘섬진강 매화꽃’이 아닐까.
“아이들은 뛰놀며 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 김영민 기자
김용택= 오늘아침 신문에서 제동씨가 대안학교 설립하겠다는 계획 밝힌 것 기사 봤어요. 나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런 대안학교 만들고 싶어서 노영심씨와 의논한 적 있어요. 정말 반갑더라고. 우리 집사람이 제동씨 만나러 간다니까 그 기사까지 다시 보여주면서 반가워 하더라구.
김제동= 저야 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여신다면 제가 적극 돕고 싶죠.
"저도 제가 꿈꾸는 대안학교는 15분 수업에 45분 휴식하는 그런 모습이에요. 놀러 학교에 오는 것." (김제동)
김용택= 예전엔 형제들이 많고 여럿이 어울려 자랄 땐 그 속에서 갈등도 생기고 다툼도 있지만 이를 조정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인간성이 길러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가정에 하나 아니면 둘이고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이들이 남을 몰라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
김제동= 저도 예전에 촌에서 자랐습니다. 아이들과 임진왜란 놀이하고 수사반장 놀이했죠. 그런 놀이만 하면 다들 이순신 장군하겠다, 최불암 아저씨 하겠다며 우겨댔던 통에 왜군과 범인 역할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웃고 뛰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놀이였어요.
김용택= 지금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다는 거예요. 자연이 있다면 자연과, 사람이 있다면 사람과 어울리는데 지금 우리 교육은 그걸 다 차단시키고 있지요. 인간 세상이 생태계인데 순환고리들을 다 단절해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인격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접하게 하는 시간이 정말 필요해요.
김제동= 그렇죠. 학원에 모여있다고 해도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갈등을 통한 관계 회복과 치유는 기대할 수 없는 구조지요.
김용택= 우리나라 교육이 정답을 가르쳐주고 이를 외워서 쓰게 하는 거예요. 나라는 인간은 그 속에 없죠. 삶과 사회문제,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는 모습은 사라졌어요.
김제동= 선생님 글 중에서 생각나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1, 2학년 아이들이 저희끼리 싸운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와서 털어놓쟎아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생각하고 깨닫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아이들 모습 보면 너무 예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예은이라는 어린이가 벚꽂 보고 쓴 글인데요. 벚꽃을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이렇게 썼어요. 전 그 표현을 보면서 너무 와닿았고 좋았어요. 이 아이가 이런 표현을 쓸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김용택= 제가 가르쳤던 아이의 글을 보면 참 의미 있고 귀한 것은 아이가 벚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는 거에요. 요즘 보세요. 사람들이 어디 사람이든 사물이든 뭔가를 들여다보는게 없지요. 남편과 아내도 서로 자세히 바라보지 않아요.
김용택= 학교 그만두고 동네에 나갔더니 어느 할머니 한분이 이래요.
‘선생님이 우리 손주놈 가르칠 때는 손주가 집에와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생각도 하며 지냈는데 선생님이 안가르치니까 애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없어졌어요’.
아이들에게 주변을 보게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지요.
김제동=대안학교 아이들의 문집을 종종 받아봅니다. 어떤 아이는 송충이를 징그럽다고 쓰면서 ‘송충이 입장에선 나도 징그럽겠지’라고 쓴 것을 보면 대단합니다. 그림도 그렇고. 아이들의 상상력은 끝없이 무궁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고학년 갈수록 자꾸 상상력이 억압되는 것 같아요.
김용택=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보통 3학년부터 눈치를 보고 계산하는게 시작돼요. 2학년 정도 까지만 인간적이죠.
김제동= 지금 교육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지요?
김용택= 뭘 어떻게 건드려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방대하고 사회전체적 이야기랑 맞물려 있으니까 그건 놔두고...
우선적으로 우리 교육에서 실시해야 하는 것은 교장과 교감이 되는 승진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승진제도를 유지해놓고 교육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어요. 교사가 관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교육자체가 뒤로갈 수 밖에 없는거에요. 부조리 부정문제도 모두 여기서 일어나요.
김제동= 뒷돈 받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글을 통해 꾸짖으신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김용택=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개인적인 양심도 중요한데 우선 교장, 교감 개방해야 해요. 교사집단에서만 되게하는 것이 아니라 교장이라는 관리자는 사회에서 데려오는게 좋아요. 그런 제도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교 교육도 변할 수 있어요.
승진하려고 마음 먹으면 승진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의 어떤 조직과도 같아져요. 물불 안 가리는거지. 그것 안 하면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그것만 바꿔도 교직사회 변할 수 있어요. 또 교사를 교육시키는 교대, 사대의 교육내용과 구조도 바뀌어야 해요.
김제동=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몇사람만의 힘으로는 안되는 일이죠.
김용택= 사회변혁이 필요해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는데 10년 계획 세워놓고 계획대로 따른 적 있나요? 정권은 5년이니까 교육제도는 5년마다 바뀌어요.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육계획 연구기관이 필요해요. 교육정책은 국가권력과 상관없어야 해요.
김제동=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교육을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네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게 영어예요. 그런데 이거 어려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점점 격차가 심해지잖아요. 워낙에 어른들이 만든 격차 때문에요. 빈부격차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의 책임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없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 됐어요. 이게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어요. 그걸 극복할 방법은 교육인데 지금은 불가능하죠. 고착화됐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요.
김용택= 제일 심각한 문제에요. 있는 집 없는 집을 떠나 교육정책과 배려예요. 강연을 다녀보면 잘 사는 지역에서 할 때 그 지역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도 이뤄지고 아이들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도 조성되고 교육도 받지요. 부모의 헌신도 많고. 그런데 그렇지 못한 지역 아이들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요.
일단 학습에 집중할 수 있기엔 거리가 먼 환경들이고 먹고살기 바쁜 부모가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를 하기도 부족하잖아요. 교육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정서적 혜택도 부족해요.
난 그게 두렵고 무서워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가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부모가 가난하니 자녀도 가난하고 교육도 혜택도 부족한 것이 대물림 되는 세상이에요. 정말 무섭고 끔찍한 일이죠.
그런데 없는 집, 있는 집 아이들 사이의 간격이 내 아이의 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 아이들과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아이들인데.
나중에 이들이 자라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그 때 그 현상들을 극복하고 감당하려면 얼마나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치러야할까요. 결국 모두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지요. 이를 좁혀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제동=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투자가 중요한 거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불행을 지금 미리 해결하는 것 역시 지금 투자하고 교육하는 것 밖엔 없는 것 같습니다.
김용택= 제가 가르쳤던 아이 중 대대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있어요. 시골서 자라다 도시로 갔는데 가진 것도 없고 기반도 없다보니 몇년 만에 도시 빈민으로 밀려났어요. 결국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되자 이혼한 뒤 그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아들을 내가 가르치게 됐지요.
대대로 가난한 농부. 그리고 그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 꿈을 갖고 서울로 갔지만 도시에 적응하고 발붙일 수 없어 밀려나는 모습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김제동= 피아노가 너무 너무 치고 싶었던 아이인데 가정은 피아노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됐어요. 도시빈민이었으니까. 그 아이가 양철판에 자기 마음대로 건반을 만들어놓고 이리저리 손을 대며 소리를 내가면서 쳐보더라고요.
정말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는데(눈 주변이 좀 빨개짐) 그런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본 게 대안학교에요. 미래 사회 비용에 비해 지금 투자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시급한 일이에요. 아이의 현재를 위해서도 최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하는 것이 교육이에요. 급식문제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자꾸 아이들에 대한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들까요?
김용택= 그게 정치적인 우선순위죠. 표로 연결되지 않으니까.
김제동= 애들이 투표권이 없어서 그래요. 5, 6세에게도 투표권 줘야해요. 인조 잔디? 좋아요. 그런데 있으면 뭐합니까. 놀 시간이 없는데.
김용택= 시설 좋은 학교를 지나다녀도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어요.
김제동= 심한 말이지만 전 학교 보면 수용소 시설 보는 것 같아요.
김용택= 도시 빈민가정 아이들 중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아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학부모에게 전화하면 먹고 살기 바빠 그런지 몰라도 아들 없는셈 친다고 대답해요. 애한테 빼앗길 정신이 없다는거지. 정말 문제예요.
김제동= 결코 아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닐텐데. 삶과 생활의 무게가 너무 짓눌러오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부모의 손길과 관심이 덜해지니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그게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겠네요.
김용택= 어쨌든 아까 김제동씨가 대안학교 이야기했는데 제동씨처럼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분들이 중심이 되어 힘을 모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제동= 아이고 선생님. 제가 무슨 영향력이 있다구요. 어차피 저도 그런 학교에 대한 관심은 많았는데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어차피 교장은 개방형 공모제로 뽑을 거니까 선생님 지원하실거죠? 저랑 교장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셔야 합니다. 우하하.
김용택= 뭔가의 계기가 있기만 하다면 관심있는 분들은 정말 많아요. 노영심씨랑도 이미 얘기해왔던 거고. 이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김제동= 음.. 저는 15분간은 수업하고 45분 놀고., 45분 노는 동안 책들고 있거나 공부에 관한 것 하면 야단치고. 그런데 애들은 금지된 것을 갈구하잖아요. 나무 뒤에서 책읽다 걸려 야단맞는 애들도 나오고... 이런 분위기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어도 원어민 강사가 와서 애들하고 노는거에요. 그럼 놀면서 애들이 그 원어민에게 한글을 가르치도록 하는거죠.
김용택= 계획 세워지면 교사가 절실히 필요하죠. 좋은 선생님들 많으니까 그 선생님 모집하고 같이할 분도 모으고. 대안학교에 대해 뜻을 갖는 부모님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교육환경에 염증 느끼는 분들..
김제동= 그런데 한번 충격받았던 적이 있어요. 대안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자신들의 학교를 대안학교로 부르는게 싫다고. 우리는 우수하게 뽑힌 학생들인데 대안학교라는 이름에는 꼭 자퇴하고 정학당한 부적응 아이들을 모아 놓은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요즘 생기는 대안학교 중에서는 있는 집 아이들만 가는 곳들도 생겨나요.
김용택=일단 한번 캠프형식으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교육을 해야하니까. 조금씩 힘이 쌓이면 사회를 추동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교육이념은 사실 서울대잖아요. 모든 부모가 서울대를 원해요. 그런데 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그걸 찾아주면 열심히 해요. 그러면 잘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평생 늙어죽을 때까지 할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행복한 거에요. 우리 사회는 행복과 상관없이 출세만 가르치지요.
김제동= 다른 사람이 재단하고 규정한 틀이 아니라 자기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네요. 흔히 말하는 엘리트코스에 맞춰 프로그램화 시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40대 직장인 중 자기 직장을 자신의 삶과 인생으로 가꾸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겠죠.
김용택= 직장에 있는 시간이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이 되는 그런 직장이 필요하죠.
김제동= 그런데 대안학교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김용택=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 교육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 이루면서 사는 거에요. 어릴 때 아이들에겐 자연을 줘야 해요. 자연은 위대한 선생님이거든. 그런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삶의 안목을 만들어줘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신과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얻는 감성은 오랜 세월 동안 가지요. 어릴 때 가졌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커가면서 힘을 얻고 재창조되거든요.
김제동= 전 어릴 때 촌에서 자랐잖습니까. 그 기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랑 만나면 저는 10년 이상 세대차이가 나요. 쉰 넘으신 아버님과 만나면 대화가 되죠.
칡뿌리 캐러 다니고 봄에 얼음 녹을 때 대나무 작대기로 얼음배 타고... 이런 대화는 쉰 이상 된 분들과 되거든요. 제가 지금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나를 추스립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지난 5월 영화 <시>에 카메오로 출연한 김 시인. 오른쪽은 황병승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용택= 시골 아이들은 돌밭을 엄청 잘 뛰어놀아요. 돌에 걸리지 않죠. 도시 아이들 시골에 갖다놓으면 끊임없이 넘어져요. 몸과 자연이 교감하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아요.
체험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독서와 체험을 통해 경험을 길러주면 어떤 위기에 부딪혀도 극복할 힘을 가지는거에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 보세요. 앞에 뭐가 걸리면 좌절하고 엄한 짓 해요. 외우면 끝나는 공부니까 내가 없죠. 내 주장도 인생에 대한 고민도. 오직 고민이 있다면 내 점수가 왜 낮을까. 이거 뿐이에요.
내 인생, 내이웃의 가난한 사람, 내 친구, 부모...그들에 대해서는 고민안해봐요. 너무 단순하죠.
김제동= 살아있는 생명들과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닐까요?
김용택= 부모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인데 부모와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잖아요.그것을 공교육이 글어안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대안교육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거죠.
김제동= 사람에게 맞는 교육제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만들면 정권마다 교육제도 바뀌는 일은 없을 건데요. 어쨋든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게 좀 서글픕니다.
김용택= 시도 중요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중요해요. 나는 시를 쓰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시보다는 선생으로 삶을 만족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초등학교 교사 하면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아들딸까지 가르쳤으니까. 그곳에서 살았던 내 삶은 만족해요. 어느 날 교육에 대해 열정을 갖게 되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선생 하다가 환갑되면 그만 둬야지 했는데 마침내 그렇게 되고. 얼마나 복이에요.
김제동= 1년 반이죠? 떠나신지. 어떠십니까.
김용택= 어쨌든 오래 몸담은 곳에서 그만두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퇴임 3~4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왔었어요. 그만두는 때까지 괜찮았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 같으면 내일 학교 가야하는데 오늘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내일 학교를 가지 않는다.그게 너무 두렵다... 이런 생각했어요.
그 생각하느라 밤새 뒤척거리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마 그날이 8월31일이었을거에요. 그런 생각으로 잠자는 둥 마는둥 하다가 9월1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가 늦잠을 잔 거에요. 시계가 8시30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죠. 지각했다고.
그런데 바로 아, 나 학교 그만뒀지. 안가도 되는구나...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죠.
"한 번도 없어요. 학교도 가본 적 없고. 다시 가려니 마음이 묘하더라고. 그리고 아이들이 하루만 안 봐도 금방 잊어버리더라구요. 지난 토요일날 전주에서 내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갔는데 거기서 내가 제일 예뻐했던 녀석이 걸어오더라구요. 난 안사람이랑 너무 반가와서 달려가면서 이름을 크게 부르는데 이 녀석 그냥 덤덤하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가버려요.
아이구 참 섭섭하데... 2학년 아이들 잊어버리는 수준이 붕어야. 그게 좋은 거지. 잘 잊어야 하는데 못 잊어서 괴롭거든. 괜히 나혼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밥 먹으면서 녀석, 저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휭 가버리나 싶고. 괜히 예뻐했어. 괜히 아이스크림 사줬어 이러면서... 하하. 많이 늙었나봐요." (김용택)
김제동= 선생님 글도 좋지만 아이들 글이 정말 좋았어요
김용택= 아이들 글을 넣을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 애들 글을 읽다보면 내 글이 정말 죽거든.
김제동= 아하하. 경쟁하셨구나.
"아이 글 보다가 내 글 보면 참 창피해요. 애들은 계산을 안하는데 나는 참 억지가 많이 들어가 있어. 내 생각을 그대로 쓰면 되는데 우리가 요구하고 따지는게 너무 많아. 아이들 글은 그런 것 모두 배제하고 삶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리하쟎아요. 애들이 뭔가를 오래 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하는거지. 우린 꽃구경 가도 사람구경하지 꽃의 생김새 본적 없잖아요. 애들은 깨끗한 풀잎, 꽃 같아요." (김용택)
김제동= 그래서 번뇌를 못버리고 삽니다.
김용택= 김선생 아침에 <환상의 짝궁> 하잖아. 서울의 어떤 어른이 보라고 전화 왔어. 몇 주 봤다. 안사람이랑. 그 앞에 앉아서 해결책 이야기해주는 아이. 아니 어쩜 그렇게 김제동 선생보다 훨씬 나아.
김제동= 저도 그아이 견제 많이 했습니다. 훨씬 재미있으니까. 면접 보러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사실은 아이들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카가 9명이기 때문에.
사실 이 프로그램 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 생각 많이 했습니다. 버릇없는 것도 아이의 잘못이 아니더군요. 어른들을 그대로 보고 배운 것일 뿐인데.
김용택= 대단한 깨달음이에요.
김제동= 오로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죠. 어른과 현상의 잘못.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게 이것까지이기 때문에 누구하나 미워할 수 없더라구요. 울어도 이유가 있고,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해요. 녹화중 삐져도, 선물 못 탄다고 옆의 어른 짝꿍을 발로 차도 분명 정당한 이유들이 있어요. 나쁜 여덟 살, 착한 여덟 살은 없고 그냥 여덟 살 아이만 있는 거죠.
김용택=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으로 넘어왔어요. 학교는 인격성숙 교육 도우는 곳 아니다. 그런데 가정으로 넘어왔는데 양극화 문제 때문에 더 어려워져요. 인격 성적 인성 모두 가정이 책임져야 하는데, 가정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인거죠. 어디서도 아이감당할 곳이 없어요. 그래서 대안학교도 필요하고.
김용택= 교육제도를 전체적으로 수술한 적 없어요. 어떤 정치세력도. 기득권 갖고 있는 세력이 너무 방대하고 크기 때문에 교육개혁이 안 이뤄졌지.
김제동= 학벌중심 사회. 이런 게 타파되기 힘들겠죠?
김용택= 우리는 조폭사회야. 학벌사회라기보다. 조폭사회보다 더 음흉하고 노골적이죠. 학벌타파 이런 거 다 헛소리.
김제동= 자기들끼리 앉아서 무슨 위원회 어쩌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뭘 바꾸겠습니까.
김제동= 라디오시대 진행하는 최유라누님이 남편에게 연애편지할 때 선생님 시를 요긴하게 썼대요
김용택= 내가 맺어준 사람도 많아요. 근데 내 시 때문에 헤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최유라씨한테는 내가 책도 보내준 적 있어요. 퇴근길 때마다 그 프로를 들어서 그런지 최유라씨가 남 같지 않고 식구 같더라구요.
김제동= 전화 통화 한번 해보시죠.
2008년, 40여년간 몸 담아온 교단을 떠나던 때의 김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용택= 우리사회 기성세대들이 아주 낡은 틀을 갖고 있어요. 시대적인 사명을 다해버린 아주 낡은 틀과 이념을 갖고 있다. 좌니 우니 이런거. 넌더리가 나.
김제동= 너무 싫죠
김용택= 너무 싫어.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데. 사람이 우리 백성을 뭘로 아는거야. 아직도 우리가 해방전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거지.
김제동= 백성을 계몽과 선도에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10년 후만 되면 지구촌이란 말이 더욱 실감날텐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한국 땅에, 지역 개념에 얽매여 살지 않을 텐데. 이런 아이들이 사는 땅을 구태의연한 이념 속에 묶고 가두고 살고 있어요. 국민을 빵꾸똥꾸로 보는 것이지. (김용택)
김제동= 개개인의 상상과 판단. 상상할 수 있는 자유. 어떤 언어로 표현하는 자유. 이런 것들이 크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잖아요.
김용택= 그거 상식선에서 자기가 하는 건데 왜 국가가 간섭하는지 모르겠어요. 인류의 영원한 가치인 자유문제를 국가가 관리하려고 하잖아.
김제동= 아무 생각 없는거죠. 잉여인력이 많은 모양이에요. 생각까지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해.
김용택= 너무 국민을 생각해준 나머지. 배려가 참 깊어. 다 관리를 하려고 들잖아. 저 밑에 이장 노릇까지 하려고 들어.
난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해.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국가가 변해. 교육감의 생각에 따라 그 도의 교육이 변해. 부모의 생각에 따라 가정이 변해. 내 생각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은 것도 우리의 생각이고, 생각이 중요합니다.
김제동= 스님이 머리를 왼쪽만 미신 것도 아니고 다 미셨는데... 불도에 정진하는 분들에게 좌파 스님이 어디있으며 좌파 교육이 어디있습니까. 학교 일선에서 선생님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가르쳐오셨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대의 아이를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좌파 교육 했다고 할 수 없잖습니까.
김용택= 정말 정권은 계속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국민이 바꿔야 하죠. 자꾸 권력을 바꿔야 사회가 균형을 맞춰 올라가는데 우린 너무 장기적으로 해방 이후에 보수적인 권력 밑에 있어왔기 때문에 그 훈련이 안 돼있는 겁니다. 너무 독재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정권 바꾸는 훈련이 안 돼있고 교육이 안 된 것이죠. 그것도 가르치고 이것도 가르쳐야 하는데 왜 한 가지만 가르치는지. 좌, 우, 없어져야 하고 보수와 진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제동= 사회가 너무 지그재그로 가려고 하는 거죠. 시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듯이. 서로가 갈등이 있으면 화해하고 상승해서 성숙해야 하는데 하여튼 어느 쪽을 말살하려고 하는 그게 문제죠.
김용택= 다 흩어 놓고 다시 시작해야 해요.
김제동= 아이들이 개구리 집 짓듯이 말이죠?
김용택=좀 있으면 섬진강변에 어마어마하게 벚꽃이 피어요. 한번 오세요. 주말엔 말고. 움직이려다 죽어요. 사람에 치여서. 내가 4월에는 주로 지리산에 있거든. 연곡사라고 화개장터 위에. 피아골 녹차밭에서 나도 녹차 만들어요. 잘 아는 분인데 집에 잘 방도 있고 좋아요.
김제동= 저도 녹차 만드는 하구라는 다원 원장님 잘압니다. 근처 흙집 펜션도 좋고 활 공장 올라가는 길 중간에 널찍한 집도 있어요. 청소해 주면 하룻밤 묵어갈 수 있고.
김용택= 안사람이 제동 선생 만난다니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둘이 이야기 잘 통하는 것 있겠다고.
김제동= 저야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정말 좋죠. 좀 끼워주세요. 가끔 열리는 학교 좀 가끔 열어보게요.
아이고 비가 오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 고을에 소낙비가 내리는거지. 그런데 세계적으로 바쁜 그 친구가 시간이 될까? 그런 뜻을 보태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김용택)
김제동= 제가 좀 집에 불러다가 조인트도 까고 매도 좀 때리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려가겠지요. 안 그래도 등산하자고 했는데 지리산에 한번 가려구요. 갈 사람 많습니다. 뜻 모아 줄 사람도 많고.
김용택= 꼭 와요. 지리산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암자 하나 있는데 길가는 사람들도 몰라서 안 들어가요. 기막혀. 정말 좋은 덴데.
오늘 정말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 깨닫고 배우고 가네. 유익한 동무를 만나서 너무 좋고.
김제동=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얼굴이 아이같으셔요. 웃음소리도 그렇고.
김용택= 내가 평생 애들이랑 놀아서 철이 없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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