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산악인 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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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6) 산악인 엄홍길

사람을 산에 비유한다면 그는 백두산일까, 아니면 너른 한라산일까. 히말라야 영봉(靈峯) 중의 하나일까. 
그의 다리는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설악의 등산로였고, 억센 팔뚝은 풍상을 견딘 지리산 고사목이었다. 그의 눈매는 북한산의 부드러운 능선처럼 푸근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공식적인 14좌와 독립봉으로 인정 받는 2좌를 합한 것)에 오른 한국인, 엄홍길 대장. 이름 자체가 산인 그를 봄꽃이 한창인 남산길에서 4월 20일 만났다. (이 인터뷰는 28일 오은선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이전에 진행됐습니다.)



경향신문 김문석 기자



엄홍길-지금 사는데는 삼각산에서 가깝죠. 집에서 오분 거리라서 매일 갑니다. 그래서 나는 오전엔 약속을 잡지 않아요. 매일 아침 산에 가기 때문에.
김-아이구 죄송합니다. 여기 앉아서 밝은 공기 쐬면서 말씀하시죠. 올해가 유난히 춥습니다.
엄-그래서 올해가 겨울다운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고 두루뭉수리 했는데. 여름인가 싶으면 가을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고. 뭐가 뭔지 몰랐던 날들이었어요. 지구 온난화라니까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올 겨울은 추워서 겨울다웠던 것 가아요.
김-그런데 너무 길었죠?
엄-그동안 겨울의 면모를 못보여주다가 세게 보여준거지.
김-칼날을 너무 세게 세웠어요. 야구가 눈 때문에 취소된 거 처음이래요. 


산 뿐 아니라 물, 수영도 좋아해 

김-등산말고 취미 있으세요?

엄-물, 수영을 좋아해요. 내가 UDT 출신이라 수영 많이 했지.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하러 가고. 수영하지 않으면 산에 가고. 수영은 일반적인 수영이 아니고 25m 레인에 물속으로 잠영해서 가는 거. 나와서 다시 숨 고르고 잠영해서 한번에 숨 안 쉬고 25m 가는 것을10회 정도 왕복해요. 그리고 평형, 자유형, 배영, 접영을 섞어서 1시간 정도 하나?
김-얼핏 보면 박태환 선수 인터뷰하는 줄 알겠어요. 하하. 삼각산은 자주 가세요?
엄- 집이 바로 삼각산 아래니까. 모산은 원도봉산이에요.

내가 3살 때부터 산골짜기에 살았지. 중턱되는 지점에 부모님이 집짓고 생활했어요. 산에 오는 등산객 상대로 매점하면서 음식팔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산에서 자랐지요. 40년을 거기서 살았어요. 산이 고향이고 집이고 놀이터였지. 2000년도 이후에야 평지로 내려왔는데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더라고. 갑갑하고 닭장속에 갇힌 것 같고.

11층에 살았나? 여튼 너무 이상하더라고. 산에 살 때는 문 열고 나가면 아침 공기 너무 좋죠, 그런데 어느 정도 지점 내려오면 코에 매캐한 냄새가 확 느껴져요. 뒷 계곡 샘물에서 물 받아 세수하고 머리 감고. 수도 시설이 안돼 있었거든. 새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면서 자라고. 따로 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김-예전에 어른들이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산삼 썩은 물이라고,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셨어요.
엄-내가 산에서 좋은 물 마시고 살다보니 물맛에 상당히 민감해요. 물맛 잘 알지. 마시면 수돗물이다, 정수기 물이다, 얼마나 됐다, 이런 거 다 알겠더라고요.

김-전 술맛을 너무 잘 아는데 큰일났어요. 그런데 대장님 술도 좀 하시나요?
엄-좀 해요. 분위기 어울리는 정도?
김-좀 한다는 분들은 다 말술이시던데. 소주 몇 병 정도 드세요?
엄-하여튼 전 끝까지 어울려요.
김-끝까지 말씀하시지 않는 것 보니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하. 산에서 살다가 속세에 내려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이 신선인데 신선이 원래 술도 잘 드시죠.

엄-산에 살면서도 산을 모를 때는 거기 사는 것에 대해서 부모님 원망 많이 했어요. 내 자신이 왜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지, 모든게 불평 불만의 대상이 됐지.
친구들 집에 가면 텔레비전, 전기 다 들어오고 전화도 있는데 우리는 호롱불에 아궁이 생활하는게 완전히 다르니까 너무 싫더라고요. 부모님 원망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산이라는 존재가 몸속에 자리잡고. 산에 확 빠져들더라고요.

김-산이 마음으로 걸어들어온 거네요.
엄-그렇죠. 어느 순간.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준 부모님이 선견지명 있다 싶고 감사했어요. 좋은 공기 맑은 물, 적막감이 얼마나 좋은지... 도시 내려와 아파트 생활하니까 매연, 건축자재 냄새에 하루종일 콘크리트 바닥 밟고 다니는게 싫었어요.
그래서 도저히 못살겠다 싶었지요. 기가 다 빠지는 것 같고. 산밑으로 다시 가자 했더니 식구들 다 반대하더라고. 애들도 그렇고. 다들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랬죠. 오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라, 난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고집부려서 갔죠. 어쩌겠어. 식구들도 다 따라와야지.

김-하긴, 저같은 사람들도 산에 가면 내려오기 싫어요. 삼각산에는 저만 아는 쉼터가 있어요. 샛길로 들어가면 삼오바위에서 삼천사인가가 진관사로 넘어가는 쪽에 소나무 하나 보이는데, 아시죠?  거기서 조금만 들어가다 내려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그거 헤치고 들어가면 저 혼자 누울 수 있는 바위가 있습니다.

대장님, 전 거기 누워있으면 내가 왜 저 밑에서 아둥바둥 거리고 살고 있나 싶어요. 새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느껴지고, 너무 좋아요. 와,,,, 말하면서도 너무 좋고 그 기분이 생각나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아요. 저 나중에 거기서 결혼식할까 싶어요. 그런데 하객들 올라오기 힘들겠죠?


엄-카메라만 올라가서 밑에 스크린 설치해놓고 영상으로 보라고 하죠 뭐.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보라고. 기술도 발달했는데. 하하.

김-대장님은 언제부터 소위 말하는 큰 산으로 가기 시작하셨어요?
엄-내가 중 2때 클라이밍을 배웠어요. 산을 좋아하고 산에 미쳐서 운명적 관계를 맺으면서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거에요. 호기심으로 시작한 클라이밍인데 너무 체질이더라고. 잘 맞았지. 산에 사니까 산이 놀이터고, 놀이기구 없이도 나무 기어올라 다니며 계절 따라 머루 다래 잣 밤 따먹고
김-칡도 캐먹고.. 야.... 저도 나무 올라다니다가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만 해도 신나요.
엄-무릎이 하루도 안 까진 날이 없었지. 흙도 뒹굴고 먹고 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 생각과 사고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사건 사고 일어나는 것 보세요. 너무 끔찍하잖아.다 물질 문명이 그렇게 만든 거야. 21세기 대재앙인 인터넷 컴퓨터. 이런 것하고만 친해지다 보니 메말라서는..
김-헉... 대장님.. 사실은 제가 대장님 만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려놨는데... 갑자기 대재앙...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꺼내기가 영 그렇네요.. 하하.
엄-내가 그렇게 살다보니 신체적구조가 좀 달라요. 하체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단련돼서 그런지 평지 다니는 것보다 산에 오르는게 더 편해.지금도 평지 걷는 것은 안 좋아해요. 그래서 차 타고 다니거나 그래요.
김-대장님 다리 좀 만져볼게요. 우와. 이 탄탄함이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엄-산에 빠져드니까 어느순간부터 전국 산을 오르고 빙벽등반, 암벽등반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전문기술을 터득했지. 그렇게 다니면서 내 스스로 생각할 때 국내에 더 이상 어떤 산이든 막히는 게 없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그러다 보니 국내에선 만족을 못 하겠더라고. 해외로 나갔어요. 높은 산을 찾으면서... 히말라야에 간거지. 모든 산악인의 동경. 그렇게 도전하게 됐어요.

1985년에 히말라야에 첫 도전했는데 그 당시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도전이었어. 당시 내 생각은 높이의 개념이 없었어요. 설악산이나 한라산이 2000m에 가까우니까 8000m 하면 까짓거 설악산 네 개 정도 겹쳐놓은 건데 그거 못 올라가겠나... 이렇게 생각했지요. 고산병이니 산의 급격한 기후변화니 이런건 아무 개념이 없었던거야. 고작 높이만 갖고 설악산 네 번 오르는 것.. 이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에베레스트f를 목표로 정하고 무모한 도전을 했어요. 당연히 첫 원정은 참담히 실패했어요.


김-높이의 개념이 없다 보니 다른 변수들을 생각 안 하셨군요. 산 자체의 거대함도 느끼셨던 거고.
엄-물론 우리나라 산이 이쁘고 좋긴 해요. 서양 애들한테도 산 자랑 많이 해요. 그런데 히말라야. 스케일이 엄청나잖아. 산 앞에만 서면 정말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대자연 앞에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없더라고. 산에 오르는데. 순간 약간의 바람만 휘몰아쳐도 꼼짝 못하고 . 그래서 1년만에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요. 그것도 겨울에..
김-보통 봄에 많이 가잖습니까?
엄-겁도 없이 부딪힌 거죠. 겨울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는데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까짓거 하고 갔다가 또 실패했어요. 그때는 동료도 죽었어요.그리고 세번째 만에 성공했어요. 1988년이었지.
김- 에베레스트가 세번만에 대장님을 받아준거네요. 어깨에 목말 타는 것을 허락한 것처럼.
그런데 아까 흙만지고 노는 애들 말씀하셨는데 실제 그런 애들이 A형 간염 항체가 생겨서 간염에 안 걸린대요. 닦고 쓸고 이렇게 자란 애들은 면역력이 약하다던데
엄-맞아요. 난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 우레탄 좀 안 깔았으면 좋겠어요. 흙바닥에 뛰어 놀게 해야 하는데 땅의 기를 차단시키잖아.
김-흙의 숨통을 막는거네요.
엄-생각해 봐요. 왜 현대인이 예전에 없던 불행한 병이 생기겠어요. 자연과 단절된 생활을 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자연 때문에 살아가는 건데 땅을 다 파 뒤집고 덮고 하잖아.
내가 1주일 생활하면서 흙을 접할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집 나오면 보도블록, 차타고 사무실 음식점 다니는 것도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흙을 접하질 못해요. 그래서 정신상태도 안좋아지고 면역 떨어지고 아토피도 생기는거에요. 산골 같은데 살면 다 없어지지. 흙을 접하지 못해서. 문명의 이기가 독소가 돼서 발생하는 거에요.


 김-편리한 것이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는 것 같습니다. 더 튼튼해지는 기회도 박탈하고.

엄-학교 과목에서 체육을 없애고 그 시간에 공부시킨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답답해요.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건강하고 의욕이 생겨 자신감 갖고 하는 건데. 아이들이 너무 나약해요.
김-꽃하고 나무는 시험 안보고 성적 평가 안해도 다 잘 자라고 알아서 피잖아요. 어울려 자라고. 나무들은 절대로 서로를 따돌리지 않잖아요.
엄-그거 희한해요. 산에 다니다보면 나무는 수종이 다른데도 서로 자라다가 부딪히면 비켜주고 자연스럽게 양보하면서 어울려 잘 뻗어가요. 그런데 사람은 왜 못그러는지... 땅에서 받은 것 아니까 가을이 되면 나무는 땅으로 다 떨어뜨려주고... 꽃들은 서로 질투하는 법이 없잖아요. 사람들도 그렇게 살면 좋을텐데.

엄청난 죽음과 삶의 사선을 보고 생사가 오가는 것을 많이 봤어요. 인간이 거대한 자연을 오르면서 내 능력, 기술, 체력, 정신력은 한계가 있더라고. 그 다음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지 않아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이지.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8000m라는 것은... 물론 5000, 6000, 7000m 산이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8000m. 거기서부터는 신의 영역인 것 같아요. 산이 나를 받아줘야 하지만 올라가는 것은 내가 올라가는 건데 뭔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기운이 나를 밀어주고 끌어주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는 것이거든. 수많은 실패와 좌절 사고, 희생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김-모든 산은 위대하죠. 그곳에서 치유를 얻고, 지인들과 함께 산에 갈 때는 산에 엎히러 간다고 농담 삼아서 말해요. 산이 우리보다 나이도 많고 할머니 같아서. 산이 그래야 산이죠. 하하.
그런데 산에서 본 여러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느끼신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엄-지금도 생각나는 처참한 죽음이 있어요. 동료의 흔적은 봤는데 시신은 못 찾았어요. 86년 등반 때였으니까. 거대한 암벽을 어느 정도 올라갔는데 무전기로 연락이 왔어요. 우리를 도와주던 셰르파가 사고가 났다고. 내가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오던 친구였는데.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빙벽을 내려왔죠.
내려오다 보니까 흔적이 있어요. 그 친구 배낭이 바위에 걸려 있고 또 내려오니까 빙벽에 옷가지가 찢겨서 걸쳐져 있고 어디 쯤에는 신발도 벗겨져 있는 거예요.
절벽 어딘가 바위틈이었어요. 흔적이 보이더라고. 그런데 고산에 오르는 등산화는 웬만해서는 벗겨지지 않는 등산화거든. 발목이 함께 잘려나가지 않고서야. 그 신발을 보는데 소름이 끼치면서 공포감이 밀려오더라고.
그래도 봐야지. 이 틈 어딘가 이 친구가 있을까 싶어서. 새하얀 눈 곳곳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고 독수리만큼 사납고 큰 까마귀떼가 까악까악 거리면서 몰려드는데. 정말 겁나고 공포심으로 얼어붙었지만 동료의 시신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바위 틈에 핏자국이 있는 걸 보고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되겠다고 목표한 지점까지 왔더니 결국 크레바스 사이로 그 친구가 빠져 버려 찾지도 못하는 지경이 됐어요.
그때 얼마나 기가 막히고 겁나던지. 인간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삶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대면하던 친구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원망스럽고 저주스럽고... 산이 그랬어요. 두번 다시 너는 쳐다보기도 싫다. 내 인생에 이것으로 에베레스트는 끝이다. 눈물 흘리면서 짐싸서 뒤도 안보고 돌아왔죠.

그런데 죽은 친구 마을이 에베레스트 올라가는 그 마을이에요. 어차피 지나가야 할 길인데 내려왔더니 그 친구 어머니와, 결혼한지 3개월 된 부인이 달려와 울면서 난리가 났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내가 거기서 도대체 뭘 하겠나 싶고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이 들고. 마음의 고통을 말로 할 수 없었어요.

그때는 내가 워낙 어렵고 힘들게 등반을 갔기 때문에 제대로 보상도 못해주고 마무리하고 산을 내려왔어요. 이를 악물고 눈물 흘리면서 왔죠. 한동안 그 친구 모습과 흔적이 떠올라서 정말 힘들었어요.


 김-그런데 다시 산이 어떻게 부르던가요.

엄-세월이 지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어요. 산을 잊으려고 일상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데 산이 자꾸 뒤에서 끌어당기는 거예요. 당겼다 놨다, 당겼다 놨다. 난 발버둥치고 도망가고 싶은데. 산이 계속 말해요. 야, 엄홍길. 니가 나를 떠날 수 있을것 같아? 이렇게 호통치면 난 이렇게 나혼잣말을 했어요. 절대 안간다. 나 끌어당기지 마라.

김-잊으려고 해도 계속 끌어당긴다... 음.. 저한테는 송윤아씨 같은 존재군요. 우하하 . 농담입니다.

엄-안간다, 안간다 하다가 결국 다시 갔어요. 그 친구가 거기 잠들어 있고 그 친구도 정상 올라가려다 죽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 올라가자. 그런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3번째 도전에 성공했어요. 




“대장님, 북한산에서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괜히 비온다는 일기예보만 듣고 겁먹었어요.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허허. 원래 내가 산에 가면 오던 비도 그쳐요.”
방송인 김제동과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남산길에서 만난 두 시간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다음엔 북한산에서 만나 막걸리에 파전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경향신문 김문석 기자



김-갑자기 생각나는게 있는데 좀 다릅니다만... 저희들 술 많이 먹으면 다음날 이러잖아요. 내가 다시 술먹으면 개다... 그런데 또 해떨어지면 어디선가 술생각나고... 죄송합니다. 이건 완전 다른 비유인데. 대장님 말씀을 듣다보니 산과 대장님 사이에 인연이 보이지 않는 끈을 묶어둔 것 같습니다.
엄-맞아요. 산에서 얼마나 모진 시련과 고통을 겪었는지 내 나이가 50인데 2배 이상 많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인생 속세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다 겪었어요. 가장 공포스러운 경험도 했고. 그럴수록, 산이 밀쳐내고 거부할수록 거기에 빨려들어가요. 정말 산과 나 사이에 뭔가 자를 수 없는게 있는 것 같아요. 전생에 내가 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산 아니면 바위나 나무나...

김-저도 그런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까 대장님 다리 만져봤잖아요. 흙이 뭉쳐진 오래된 산의 한 부분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 삶이 힘드니까 신이 산의 한 조각을 보내주신 것 같네요. 저 관상은 모르지만 눈 보니까 눈 주름에서 시작하는 모습이 산 능선과 닮아 있습니다. (과연 그랬다. 산을 닮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설레네요. 저희들한테 산하고 자연을 소중하게 알고 살라고 산의 한 부분을 보내주신 것 같네요.


 엄-전에는 어느 정도 능력만 있고 준비하고 도전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많은 결과와 실패를 보면서 이것은 인간의 영역에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런데도 내가 산에 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연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아까 21세기 문명의 대재앙이라고 하셔서 못 꺼냈는데... 사실 제가 트위터를 하는데 오기전에 물어봤거든요. 대장님 뵙는다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질문을 올려주셨어요. 여러가지 질문이 왔어요. 그런데 그중 몇 가지만 여쭤볼 게요. 늘 궁금한게 정상에서 찍는 사진은 누가 찍어주나요.. 라는 질문이 왔네요.

엄-셰르파들이 찍어주거나 동료대원들이 찍어줘요. 그렇지 않을 때 혼자 올라가더라도 에베레스트에 한국팀만 오르는 경우는 드물어요. 최소 다른 나라팀들까지 대여섯 팀은 되거든. 좋은 날짜와 기상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거의 그날 다 같이 올라와요. 며칠전부터 올라오는 팀들이 기상, 풍속, 온도를 점검하다보면 결국 가장 상태가 좋은 날은 한날이니까 그날 다 몰리는 거지. 그러면 서로 찍어주고 그래요. 

김-쌍춘년에 결혼 많이 하는 것 하고 비슷하네요. 길일에 다 몰리는거니까.
엄-그렇죠. 오르는 팀들이 많은데 다들 그렇게 해요. 그래야 성공률도 높고. 그런것 보면 옛날과 비교해 등반도 첨단이 됐죠. 쓸데 없는 체력소모도 안하고. 예전엔 다 짐작으로 했어요. 어깨 결리는데 날씨 별로 안 좋겠다. 야 , 쉬자. 하늘 보니까 눈오겠다, 철수하자... 이런 식이었죠.
김-그래도 낭만은 그 때가 더 있었네요.
엄-그렇죠.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순수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과 교감만 있었죠.
김-대장님 말씀하시는데 얼굴을 보니까 그 때 그시절을 추억하시는게 완전히 낭만에 빠져있는 모습이셔서. 많이 그리우신 표정이에요. 사실 우리 날씨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아이고 야야, 오늘 새가 낮게 난다. 빨래 걷어라. 개미들 집에 들어간다 비 오겠다. 이게 정확성은 모르겠지만 그게 인간적이고 따뜻하고 낭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의 소중함과 위대함도 느끼고 경외심도 갖게 되고.

엄-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지금은 자연을 무시하고 훼손하고 파괴하는거죠. 요즘 기상이야 경제적인 것과도 연결되니까 편하긴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욕심같아서는 산에 들어가서 묻혀 살고 싶어요.
김-같이 가시죠 대장님. 저도 묻혀 살고 싶습니다.
엄-산나물 뜯어 된장에 무쳐 먹고 곰취, 냉이, 두릅...
김-조미료도 필요없죠. 아우 맛있겠다. 그냥 침이 돕니다.
엄-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연줄을 끊지 못해서 그래요. 힘들지... 




김-또 있는데요. 산악인들은 어떻게 생활을 영위하시나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직업이 산에 오르는건데 도대체 뭘 먹고 사냐는거죠.
엄-그래요. 고충이 많았지. 그런데 일편단심 이렇게 살다보니 물질적인 것도 따라오더라고요. 사람들의 시각과 관심도 달라지면서 기업들의 후원도 생겨났지요.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여유가 생기고 웰빙문화가 발달하다보니까 이제사 사람들이 자연과 원시를 찾잖아요. 그러면서 등산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고 아웃도어 산업도 팽창하고.
이런 때 나같은 사람은 그런 업계에서 홍보나 마케팅에 도움을 주면서 윈윈하는거죠. 나도 현장에서만 살았으니까 제품 개발에 대한 조언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산악인 중 그렇게 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수입도 생기고 안정적인 등반을 할 수 있게 됐죠.

김-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결국 산이 좋아서 빠지다보니 그렇게 된 거네요. 너 100억원 줄테니 에베레스트 올라갔다와라 그런다고 해서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목숨 걸어놓고 해야하는 건데. 결국 좋으니까 하는 것 같아요. 그 시절에 대부분 산 좋은 거 하나에 목숨걸고 다니셨잖아요.
엄-그렇죠. 돈 찾고 이런거 저런거 따지다보면 이도저도 안돼요. 초심 잃지 말고 좋아하는 것 하다 보니 모든 게 따라온거죠.
김-대장님. 그럼 네팔에 학교 짓고 이런 활동하시는 것이 산과 산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보답, 보상, 미안한 마음 이런 것 때문이신 건가요?
엄-그렇죠. 히말라야 16좌를 올라가면서 막바지에 가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요.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내가 전문가라고 하니 쉽지 않겠나, 하지만 자연은 그게 아니거든. 알면 알수록 공포감이 커져요. 난 그 속의 모습이 다 보이거든. 저 눈덩어리, 얼음덩어리 분명히 떨어진다...이런 예감이 오면 다 들어맞아요. 단 그 시각은 모르는 거지. 그거 알면서 그 밑을 지나가고 그 속으로 지나가는데 말 그대로 복불복이에요. 내가 지나갈 때 쏟아지냐, 아니면 지나가고 나서냐 그 차이니까.

김-모르고 가면 안 무서운데 다 보이니까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그 길 알면서 지나가야 할 수밖에 없고. 으아... 너무 무섭습니다 대장님.
엄-그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제가 산과 약속했어요. 히말라야의 신이시여. 제가 16좌를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살아서 산을 내려가기만 하면 살아남은 자로서 어떻게 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산간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아이들이 커가는데 가난이 대물림되요. 힘들게 살죠.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배고프다고 빵만 주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시설을 짓고 의료시설을 지원하기로 한거죠. 그리고 등반을 통해 현장에서 깨달았던 것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 정말 나약하고 기게문명의 노예가 돼가고 있어요. 사람들과의 교감도 없고.


김-가슴 아파요. 요즘 아이들 배려심 양보심 이해심 이런게 없어져요. 동료애도 그렇고, 상대방 아픔에 자기를 이입하는 것을 못해요. 상대방이 아픈 것을 알아야 나도 안때리게 되는데.
엄-애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부분을 깨닫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연 밖에 없어요. 혼자서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자연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내가 도와주고 싶어요. 함께 산에 오르고 도우면서 얼마나 좋은 부분이 많은데요. 인성이 발달하고 도전, 개척정신, 자기극복력 생기고 . 난 그걸 도와주고 북돋우고 싶어요. 유가족 지원사업도 그래서 해요. 10명의 동료를 히말라야에서 잃었어요. 유가족 자녀 학비, 생활비를 지원해요.

내가 85년부터 20년 넘게 올랐지만 히말라야가 해를 거듭할수록 무서운 속도로 파괴되고 훼손되고 있어요. 이젠 3000미터까지 차가 들어가요. 에전에 10일 걸어갔던 길이 이제 몇 시간만에 차로 가는거지. 온난화도 너무 심하고 빙하가 녹으면서 암벽도 상하고. 휴먼재단을 설립한 것도 이런 목적의 사업을 하자는거에요. 내 인생의 목적이죠.

김-산에서 입은 은혜를 산에 돌려주는 작업이시네요.
엄-그렇죠. 에베레스트에서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젠 되돌려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 산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김-소비하고 공해를 만드는 것은 우리들인데 자연에 순응하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가장 큰 피해를 가장 먼저 보네요. 아이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피해를 입게 만든 것은 결국 어른들의 잘못이잖아요.
엄-당연하죠.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아이들을 로보트로 만들잖아요.
김- 얼마전 만난 김용택시인도 그런말씀 하시더라구요. 제가 트위터에 글 올렸더니 어느 네티즌이 저더러 수학여행 간다고 농담을 해요. 왜요? 그랬더니 국보 만나러 가는 거라면서.
엄-김시인과 저도 천왕봉 올라간 적 있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들은 시소니 미끄럼이니 이런것 다 필요없고 그저 물하고 진흙 가지고 놀라고만 해도 잘 놀아요. 괜히 그런 기구 만드니까 올라갔다 떨어지고 다치고 하는거죠. 애들이 꽃피고 나무 자라는 것 보면서 자연과 어울려 자라게 해야하는데.
확실히 학교 강의를 나가면 아이들 데리고 산을 갔다 왔을 때가 그 전과 확연히 달라요.
가기 전에는 다들 오만상에 찌그러져 있지. 언제 돌아와요, 얼마나 걸려요. 얼마나 쉬어요.. 이러면서 징징대거든.

김-맞아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다 돼간다.. 다돼간다. 이러시잖아요. 그래서 애들이 그 말엔 잘 안속더라구요.
엄-같이 올라가다가 손끌어주고. 다같이 힘드니까. 다같이 힘드고. 절대 혼자 가는게 아니고 어울려 다같이 가는거다. 함께 하면서 올라간다. 시작하면서 함께 간다. 시작하면서 함께 하는 거다. 내가 힘들어도 동료 있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노력하고 동료애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돼요.
선생님이 앉혀 놓고 희생정신 이런 거 교실에서 가르쳐 봐야 느끼겠냐고. 와닿지 않아. 현장에사 직접 가르쳐줘야 자연스레 깨닫게 돼요. 장애인들 불편하고 힘들어도 함께 산에 올라갔다 왔더니 목메면서 울더라고요. 감동 복받쳐서. 자신이 확 변한 것을 느끼면서 자신감을 갖고 살아요.

김-아, 대장님., 막걸리랑 파전 생각납니다. 하하. 애들에게 경주가 아니라 함께 가는, 어깨동무하고 연대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같이 가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친구를 앞서라'가 아니라 '친구를 내 옆에 두자'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요.
엄-누군가의 슬픔을 딛고 행복하면 본인도 행복한게 아니에요. 같이 행복해야지.
김-대장님 앞에서 말하려니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것 같아서... 참 .. 저도 산악회 대장입니다. 이름이 나무 손잡고 더불어 숲, 그리고 하늘로..... 좀 길죠? 술먹고 지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 글귀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전에 개방산에 눈왔을 때 능선따라 올라가는데 정말 하늘로 올라가는것 같았어요. 아... 산에 가고 싶습니다. 언제 저 좀 데리고 가주세요.

엄-제동씨, 해장산은 자주 안가요? 술먹고 다음날 올라가는 산.
김-해장산 잘가죠. 거기 김치도 묻어놨어요. 하하하. 대장님 뵙고 보니 정말 땀 한방울도 안흘리고 좋은 산에 올라간 기분입니다.


엄 대장과 조만간 ‘해장산’에 가기로 했다. 술 먹고 다음날 올라가는 산. 올라가서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엄 대장이 모시는 산신령과 알현해야겠다. 혹시 아나? 산신령께서 “옛다, 네 각시다”라면서 송윤아 닮은 신붓감이라도 하사하실지…. 에구, 속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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